소소한 주말의 행복들

21.02.06(토)

by 어깨아빠

아침 먹고 일찍부터 한살림에 다녀왔다. 오늘 애들이랑 동물 다큐 한 편을 보기로 했는데 그때 먹을 팝콘을 사야 했다. 소윤이는 처음에 집에 있겠다고 하더니, 시윤이가 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가겠다고 했다. 진짜 한살림만 다녀올 거라 짧은 시간일 테지만, 서윤이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애들 옷을 입히면서 아내에게 물어봤다.


“여보. 아니면 여보도 바람 쐴 겸 나갔다 올래?”

“아니”


짧아도 자유는 자유라고, 아내는 그게 더 좋았나 보다. 쌓인 재활용 쓰레기가 많아서 나가는 길에 버리려고 했는데 손이 부족했다. 서윤이가 탄 유모차를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끌어 달라고 했다. 집에서 엘리베이터,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까지 가는 짧은 길이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의 손은 큰 도움이 됐다. 유모차도 제법 안정적으로 잘 끌었다. 서윤이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 수유를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와서 그런지 오고 가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살림에 가서 팝콘 하나와 떠먹는 아이스크림 작은 걸 하나 샀다.


집에 와서 바로 노트북을 켜고 동물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예전에 넷플릭스에서 ‘우리의 지구’라는 걸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재밌게 봤었다. 얼마 전에 그때 얘기를 하길래 오늘 보기로 한 거다. 둘 다 영상을 거의 안 봐서 그런지 만화나 영화는 조금만 무서운 장면이 나와도 못 본다. 얼마 전에 외할머니 집에 가서 아기공룡 둘리를 보다가도 무서워서 껐다고 했다. 그런 녀석들이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는 아주 재밌어한다.


넷플릭스는 구독하는 계정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아내가 친구와 함께 나눠 쓰기로 했다고 했다. 오늘 같은 날, 가끔씩 애들한테 유익한 영상 보여주고 싶을 때 엎으니까 아쉽다는 게 아내의 명분이었다. 로그인 한 아내의 계정에는 이미 최신 드라마 한 편이 골라져 있었다.


오늘은 저번에 봤던 시리즈가 아닌 다른 영상을 봤다. 약간 지루했다. 별 내용이 없고 뭐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동물을 고르는 주제로, 여러 동물의 새끼들의 모습이 나오는 거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재밌어했다. 게다가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팝콘과 과자를 먹으며 영상을 보는 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니, 그 자체로 재밌었던 것 같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서 졸았다.


서윤이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큰 방해를 하지 않았다. 언니와 오빠가 들고 있는 과자 그릇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달려들었지만, 현미 쌀튀밥을 적절히 유인하고 격리시켰다. 내가 쌀튀밥을 줬는데, 나한테 어찌나 매달리는지. 기분이 좋았다. 다큐에 나오는 새끼 동물들이 아무리 귀엽다고 한들, 서윤이가 옆에 있으니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점심 먹고 오후에는 다 함께 나갔다 왔다. 애들한테 미리 말했다.


“소윤아, 시윤아. 엄마랑 아빠 맛있는 커피 한 잔 사러 갈 거야”


시윤이가 대답했다.


“아빠아. 그러며언 우리 공원 같은데에 잠깐 이따 올까여어?”

“그래, 그러자”


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었다. 날씨가 좀 흐려서 놀 맛이 안 나긴 했다. 원래 커피를 산 카페 근처의 공터에서 좀 놀려고 했는데 뭔가 별로였다.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곳이 딱 떠오르지도 않았다. 차를 대고 짧게 고민하다가 집 근처에 있는 하천가의 작은 공원(은 아니고 운동기구들이 몇 개 있는 곳)에 가기로 했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곳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갔을 때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있었다.


서윤이는 계속 잤고, 사실 아내도 커피 살 때부터 잤다. 아내와 서윤이는 차에 두고 나와 소윤이, 시윤이만 내렸다.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여러 운동기구도 했다. 한 10분 했더니 할 게 없었다.


“아빠아. 여기 뭐가아 별로오 없네에?”


애나 어른이나 느끼는 건 똑같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산책할까?”

“아빠아. 산짹이 뭐에여어?”

“산책? 걷는 거. 여기 길 따라서 쭉 걷는 거”


하천을 따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걷기 시작했는데, 꽤 재밌었다. 가는 길에 하천을 건너는 돌다리도 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그걸 굉장히 재밌어했다. 둘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꽤 한참 걸었다. 왕복 시간으로 따지면 30분 가까이 걸었다.


“소윤아, 시윤아. 안 힘들어?”

“조금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재밌어여”

“아빠아. 우리이 다리가아 엄쩡 뜬뜬하져어?”

“그러게. 많이 걸어도 안 힘든가 보네”


다시 운동기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도 또 놀았다. 아내와 서윤이는 여전히 차에서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아직 자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가 먼저 차로 돌아갔다. 아내와 서윤이는 그때 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큰 기대 없었던 외출에서 생각보다 큰 만족을 얻은 듯, 아내에게 산책 무용담을 신나게 읊었다.


“아빠아. 내일은 주일이에여어?”

“응. 주일이지”

“아빠 내일 쭐근 안 하져어?”

“어, 내일은 안 하지. 그리고 다음 주도 3일만 출근하면 돼”

“왜여어?”

“설 연휴라서”


주말의 하루가 벌써 끝나 아쉬워하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설 연휴로 달래며 방으로 들여보냈다. 애들과 함께 들어갔던 아내는 바로 나오지는 못했다. 아내는 빨랫감을 정리하고, 친구랑 통화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난 일기를 썼다. 각자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때 영화를 볼까 했다.


“영화라도 한 편 봐야 되는데”

“그럴까? 뭐 보지? 그때 여보가 말한 제리 맥과이어?”

“그럴까? 아니면 뭐 다른 거 볼까?”


뭐가 됐든 영화는 보기로 결정된 분위기였다.


‘서윤이가 안 깨야 될 텐데’


이 말을 아내에게 하려고 거의 목 끝까지 올렸을 때, 기가 막히게 안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 상황에는 초연해진 아내와 나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헤어졌다. 아내는 방으로, 나는 거실에. 아내는 살짝 잠들었다가 다시 나왔다.


영화는 물 건너갔다. 다른 여느 밤처럼, 아내는 다시 깨서 엄마를 부르는 서윤이의 울음소리에 영원히 퇴장했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