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5(금)
오늘 저녁에 교회까지 갔으면 이번 주는 정말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없었을 텐데, 다행히(?) 오늘은 교회에 가지 않게 됐다. 아내는 어제, 내일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사서 삶아 먹거나 오븐으로 구워 먹자고 했다. 야채파 아내가 먼저 고기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한살림에 가서 장을 보다가 보쌈용 무김치가 할인을 하길래 샀는데, 그걸 보니 고기 생각이 났다는 거다.
마침 교회도 가지 않게 되어서 시간도 넉넉했다. 아내는 오늘 나가서 고기를 사 오겠다고 했었다. 퇴근할 때가 거의 다 되었을 때, 아내가 전화를 했다.
“어, 여보. 우리는 이제 준비해서 나가려고”
“아, 그래? 늦었네?”
“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괜찮겠어? 너무 늦지 않겠어?”
“늦으려나?”
“늦긴 하지”
“그래? 지금 나가면 6시쯤 돌아올 거 같은데”
“6시? 지금 5시 30분인데? 자연드림 가면 6시겠다”
“그런가? 그럼 6시 30분?”
“그래, 그건 말이 되지”
아직도 한 번씩, 아내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그냥 차에 탄 채로 찍고 오는 것만 해도 20분이 넘게 걸릴 텐데.
난 거의 7시쯤 집에 도착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들어가기 직전에 도착했다고 했다. 6시를 꿈꾼 아내가 귀여웠다. 엄마에게서 떨어지는 걸 용납하지 않고 우는 서윤이 덕분에 아내가 서윤이를 맡았고, 내가 저녁 준비를 했다. 아내가 알려주는 대로 압력밥솥에 돼지고기 넣고 물 넣고 양파 넣고 삶기 시작했다. 어제랑 비교해 보면 다 씻겨서 방에 재우러 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간에, 여전히 저녁을 준비하는 셈이었다. 괜찮다. 금요일이니까.
잘 하면 남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고기를 샀는데, 남기는커녕 싹싹 다 먹었다. 먹으면서 계속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고 말하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니,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먹는 것만 봐도 배 부르니 얼른 먹으라고 말하던 옛 어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배가 부른 게 아니라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거다. 그래도 오늘은 고기가 넉넉해서 애들은 물론이고 아내도 나도 모두 배불리 먹었다.
“여보. 이건 서윤이도 줘도 되지 않나?”
“아, 아직 돼지고기는 안 돼요. 소고기랑 닭고기만”
서윤아, 안 된대. 아내와 내가 앉은 의자에 매달려 나와 아내를 툭툭 건드리며 자기도 먹을 걸 달라고 하는 서윤이에게는, 아기과자를 줬다.
“소윤아, 시윤아. 내일 주말이니까 아빠랑 또 재밌게 놀자?”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일은 뭐 하고 놀지 기대가 잔뜩이었다. 나와의 시간을 기다리며 설레하는 아이들을 보는 건 언제나 큰 기쁨이다. 내 자존감의 견고한 지지대는 가족이다.
“여보 오늘은 커피 안 마시고 싶어?”
“오늘? 마시고 싶지. 왜 사다 주게?”
“아니. 이 시간에 문 연 데도 없잖아”
“윌 가면 되지”
“윌? 너무 먼데”
아내와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고 소파에 앉아 10분 정도 고민했다. 조금 귀찮았다.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늦기도 했고. 그래도 금요일이니 봉사 정신을 발휘해 집을 나섰다. 금요일이니 내 커피도 한 잔 샀다. 커피를 사서 막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도 그때 나왔다.
“여보. 어디 갔다 왔어?”
“커피 사러 갔다 왔지”
“아 진짜? 뭐 샀어?”
“아이스 아이리시 라떼”
“오 대박”
아내는 매우 만족하며 마셨다. 참 사 줄 맛이 나는 사람이다. 아내는 오늘도, 내가 사 준 커피와 낮에 사 온 빵으로 밤을 채웠다. 아내도 아까 분명히, 돼지고기를 배불리 먹었다고 했는데. 아무튼 애들이 먹는 걸 볼 때처럼, 아내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렀다.
(이건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위에 여전히 고기가 가득해서 배가 부른 상태였다. 게다가 아내가 먹고 있는 빵은 생버터가 가득 발린, 내가 좋아하지 않는 빵이었다. 그래서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