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9(화)
아내는 나에게 자주 묻곤 한다.
“여보. 오늘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 대답은 거의 항상 비슷하다.
“나? 없는데. 아무거나 다 좋은데”
말과 행동이 다르지는 않다. ‘아무거나’라고 해 놓고 반찬투정을 한다거나 그러지 않는다. 진짜 ‘아무거나’ 나와도 엄청 맛있게 먹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나에게 물어봤고 난 같은 대답을 했다.
집에 갔더니 아내는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배추전이었다. 결혼하고 집에서는 처음 보는 요리였다. 배추에 반죽을 묻혀서 열심히 부치고 있었다. 저녁이 준비될 때까지 소윤이, 시윤이와 놀기도 하고 서윤이도 봤다.
“다 됐다. 밥 먹자”
반찬은 배추전과 된장두부(된장찌개처럼 보이지만 훨씬 걸쭉해서 밥에 얹어 덮밥처럼 먹는), 그리고 김치였다.
“배추전이 잘 안된 거 같아”
아내는 미리 얘기했고, 난 배추 하나를 집어서 먹었다. 맛은 있었다. 아내가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 듯했지만, 맛은 있었다.
“어때? 별로지?”
“아니 맛있는데? 괜찮은데?”
아내와 나의 대화에 소윤이가 합류했다.
“엄마. 배추전 같지가 않고 그냥 배추 같아여”
이런 묵직한 팩트 폭격기 같으니라고. 내가 배추전을 많이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배추전 자체가 다른 ‘전’과는 느낌이 많이 다를 거다. 그런 걸 감안해도 소윤이의 평가가 과한 건 아니었다. 소윤이에게 배추전이라는 음식의 특성상 보통 우리가 먹는 ‘전’류 음식과는 다르다는 걸 설명했다. 아내가 두 번째로 가지고 온 배추전은 조금 더 밀가루의 폭신한 촉감이 느껴졌다.
“이건 좀 전 느낌이네”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소윤이의 평가였다. 옆에서 시윤이는 누나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거들었다. 그래도 정말 맛은 있었다. 나, 소윤이, 시윤이 모두 아내가 전을 갖다 놓기가 무섭게 먹어 치웠다. 물론 난 아이들의 속도를 보고는 젓가락질을 멈췄다.
“엄마, 오늘은 반찬이 하나네여?”
“뭐가 하나야. 김치도 있고 여기 밥에 두부도 있잖아”
“아니 그렇기는 한데 김치나 이런 거는 맨날 있는 거니까 이거 빼고 두부랑 된장은 밥에 비벼 먹는 거잖아여. 그러니까 배추전 하나라는 말이져”
아내는 두 번째 팩트 폭격을 당하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언젠가는 알게 될 거다. 이 배추전이 얼마나 고심 끝에, 엄마가 나름대로 어떻게든 식탁의 질을 높여 보려고 애를 쓴 흔적인지. 그렇다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투정을 부리거나 불평을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느낌을 악의 없이 진술한 건데, 아내와 나는 그게 웃겼다. 소윤이는 왜 웃냐고 물어보는데, 이 감성을 뭐라고 설멍해야 할까.
오늘도 밤에 잠시 운동을 나갔다 왔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던 아내는 무사히 깨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아내 앞에 뭔가 놓여 있었다.
“여보. 그건 뭐야?”
대충 뭔지는 알았다. 커피는 확실히 보였고, 또 뭔가 있었다. 물론 그게 빵일 거라고 짐작도 했다.
“배달 시켰어. 이디야에서”
원래 진짜 먹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는데 빵도 비싸고 배달비도 비싸서, ‘양심상’ 더 저렴한 곳으로 선회했다고 했다. 저렴한 걸로 치면 ‘배달의 남편’을 따라오기 힘들지.
아내는 오늘도 ‘빵을 다 먹는 건 너무 질린다’라고 얘기했지만, 결국 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