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9(금)
아내와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아내가 사무실 근처에 나올 일이 있었다. 어제 미리 정하고 아이들한테도 말을 했다. 소윤이가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했다.
“엄마. 우리가 이틀 동안 아빠랑 제대로 저녁을 못 먹어서 하나님이 선물을 주셨나?”
누군가 나와 밥 먹는 걸 선물로 생각해 준다니, 참 뿌듯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게 내 아이들의 고백이라니.
소윤이는 미리 음식도 정했다. 뭐가 먹고 싶냐고 했더니 멕시코 음식을 골랐다. 지난번에 한 번 먹었던 적이 있는데 맛있었나 보다. 미리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5인 가족인데 입장이 가능한지. 다행히 된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시간을 맞춰서 사무실로 왔다. 퇴근하고 사무실 근처에서 밥 먹은 적은 있어도 낮에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이었다. 새롭기도 했고 더 반가웠다. 심지어 서윤이까지 날 보며 웃어줬다.
한정된 시간이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식당에서도 부지런히 먹었다. 보통의 점심시간보다는 조금 일찍 가서, 다른 손님이 없었다. 덕분에 아주 한적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었다. 식당이 아무리 조용하고 차분해도 서윤이가 엇나가기 시작하면 도리가 없는데, 다행히 오늘은 잘 앉아 있었다. 아내가 싸 온 고구마를 먹였는데 아주 기분 좋게 잘 먹었다. 아내가 집에서 나오기 전에 수유를 하고 나온 것도 크게 한 목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썩 잘 먹지는 않았다. 사실 멕시코 음식이 애들 먹기 좋은 음식은 아니긴 했다. 평일 대낮에 같이 만나 밥을 먹는다는 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밥 먹고 커피 한 잔씩 사서 헤어졌다. 1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후 업무에 큰 활력을 제공하는 시간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좀 이따 또 만나자”
아내는 나와 헤어지고 서윤이를 아기띠로 2시간 정도 안았다고 했다. 당연히 허리가 아프다고 했고. 나는 당연히 아내의 허리만 걱정했다.
퇴근하고 집에 갔을 때 아내는 아직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꽤 시간이 걸렸다. 저녁에 교회에 가야 했기 때문에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시윤이는 밥 먹는 태도가 너무 좋지 않아서 식사를 강제 중단 당했다. 아마 한 숟가락도 채 뜨기 전이었던 것 같다.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소윤이나 시윤이나 장난치느라 좀 느리게 먹을 때가 많아서 그렇지 편식도 없고, 끝까지 다 먹는다. 요즘 들어 시윤이의 ‘까불거림’이 무르익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선을 넘을 때도 종종 있었다. 따끔하게 주의를 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건 이렇게 해도 무작정 짜증 내거나 드러눕지 않는다. 기특하다.
교회에 다녀오자마자 시윤이는 어땠는지 물어봤다. 역시나 금방 좋아져서 멀쩡하게 잤다고 했다. 시윤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가 심상치 않았다. 허리만 아픈 게 아니었다. 아까 퇴근했을 때 머리가 조금씩 아프다고 했는데 집에 오니 여전히 두통도 심했을 뿐만 아니라 몸 상태 자체가 안 좋았다. 아내의 말로는 체한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체기를 잘 느낀다. 약 한 알을 먹어도 그게 어디쯤 걸려서 안 내려가고 있는지가 느껴진다고 했다. 아내의 표정은 매우 안 좋았고, 주저앉아서 시원치 않은 트림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화장실로 뛰쳐 들어갔는데 헛구역질만 하다 나왔다.
속이 안 좋으면 들어가서 자는 게 낫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굉장히 날카롭게 '속이 안 좋아서 누울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아프면 나도 엄청 다정스럽게 말을 하는 편은 아니다. 걱정을 하다 보니 어찌 보면 좀 차갑게 ‘쉬어라’, ‘자라’ 하는 편이긴 하다. 아내는 아프면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누구나 그렇듯, 꽤 짜증이 섞인 예민한 반응. 또 하나는 울음. 오늘은 두 가지 다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아내에게 갔더니 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다. 왜 우냐고 물었더니 나한테 미안해서 그렇다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아내의 눈물은 주로 근거 없고 쓸 데 없는 자책을 동반할 때가 많다.
아내의 등을 좀 두드려줬다. 한 10분 정도 두드리고 나니 아내가 다시 한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번에는 다 게워냈다.
“여보. 다 토했어? 아니면 물만?”
“다 넘겼어”
“점심에 먹은 것도?”
“응 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탈이 나긴 한 것 같았다. 그나마 시원하게(?) 한 번 토하고 났더니 좀 낫다며, 그제서야 자러 들어갔다. ‘이번 주말은 또 병마와의 싸움인가’하는 생각을 하며 미리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