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0(토)
(내) 동생 집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며칠 전에 미리 말해줬다. 그때부터 어찌나 손꼽아 기다리는지, 오늘도 아침부터 ‘대체 고모 집에 언제 가는 거냐’면서 난리였다. 평소에는 신발 신으라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밍기적거리던 시윤이도, 오늘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아빠아. 이제 신발 신으까여어?”
라고 몇 번을 물어봤다. 고작 하룻밤 자고 오는 거지만 애가 셋인데다가 뭐라도 빠뜨리면 안 될 거 같은 서윤이 짐까지 꼼꼼하게 싸다 보면, 금방 한 보따리가 된다. 물론 짐은 아내가 싼다. 내가 싼다고 해도 일일이 아내에게 물어봐야 한다.
차에 타자마자 노래를 틀어 달라고 했던 시윤이는, 채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잠들었다. 소윤이는 물론 잠들지 않았다. 오늘도 늦게 잘 테니 잠이 오면 참지 말고 자라는 아내와 나의 권유에도 소윤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말이라 차가 많이 막혔다.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에 한 번씩 다녀왔는데도 또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둘 다. 소윤이는 참을 수 있다고 했지만, 시윤이는 못 참겠다고 했다. 꽉 막힌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남아 있던 커피를 급히 다 마신 뒤, 그걸 가지고 뒷자리로 갔다. 꽤 많이 참았는지 소리가 시원스러웠다. 양도 많았고.
서윤이는 가는 내내 깨어 있다가 도착하기 조금 전에 잠이 들었다. 어설프게 잠들었다가 깨서 그랬는지, 익숙하지 않은 고모 집이라 그랬는지 처음에는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울었다. 한참 동안 내 품에 안겨 있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나에게 그렇게 기대듯 안기는 건. 낯가림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흥분했다. 평소에 자주 와 볼 일이 없는 고모 집이어서 그렇기도 했고, 좋아하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다 모여서 그렇기도 했다. 아무튼 내내 붕붕 떠 있었다. 저녁 먹기 전에 잠깐 시장에 다녀왔는데, 소윤이는 고모랑 집에 있겠다고 했다. 시윤이는 따라나서겠다고 했고. 소윤이는 요즘 이럴 때가 많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밖에 나간다고 하면 열 일을 제쳐두고라도 따라나섰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옷 갈아입는 게 너무 귀찮다고 했다. 잠깐이나마 엄마와 아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좋은 건가 싶기도 하다.
덕분에 시윤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꽤 많이 걸어야 해서 다리가 아팠을 텐데(실제로 다리가 아파서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끝까지 기분 좋게 걸어 다녔다. 서윤이도 계속 유모차에 앉아 있어서, 아내와 내가 힘들지 않았다. 정말로 소윤이 키울 때는 아기띠를 아무리 오래 해도 별로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 힘들더라도 그 순간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아기띠 오래 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다. 나도 아내도. 아무튼 오늘은 계속 유모차에서 잘 놀았다. 올 때는 잠이 들었고 집에 도착해서도 깨지 않아서 그대로 현관에 좀 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너무 신이 나서 가끔씩 선을 넘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뭐 대체로 괜찮았다. 꽤 늦은 시간까지 놀게 뒀다. 다 놀고 자러 들어가서도 한참 동안 떠들었다. 오늘도 할머니하고 같이 자겠다면서 들어갔는데, 거의 1시간을 넘게 안 잤다. 아내가 중간에 ‘적당히 제지 좀 하고 올까?’라고 물었는데, 그냥 두라고 했다. 오죽 신났으면 그랬을까 싶어서. 그냥 뒀더니 아예 잘 생각을 안 하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결국 아내가 한참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한마디 했다. 그러고 나서는 금방 잠들었고, (내) 엄마도 방에서 나왔다. 하루 종일 소윤이와 시윤이가 참 즐거워 보였다. 물론 우리끼리 집에 있을 때도 행복해 보이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덕분에 내가 제일 편했다. 아내는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사정거리 안에 있어야만 하는 서윤이 때문에 완전한 자유가 아니었다. 난 거의 한량이었다. 아내는 개미였고. 아내도 매 끼니 고민을 안 해도 된다는 큰 짐을 덜기는 했다.
서윤이도 제법 일찍 재웠다. 아내는 거기서도 이유식을 만드느라 고생이었다. 한 시간 동안 서서 재료를 다졌다. 난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이 장면만 보면 천하의 몹쓸 놈인데, 누누이 말하지만 아내와 나 사이에는 깊은 교감이 있다. 아내가 나한테 먼저 앉아서 같이 이야기 좀 나누라고 했다. 아내가 이유식을 만드느라 힘든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도와주지 않아서 속상한 건 또 아닐 거다. 아무튼 그렇다. 아내와 나는 사이가 좋다.
서윤이는 고모 집이라고 해서, 깜빡 잊고 통잠을 잔다거나 그러지 않았다. 집에서처럼 정확히 자정 무렵에 깨서 울었다. 아내는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못했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긴 했다.
난 조금 더 놀다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