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1(주일)
같이 자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 떠날 텐데 아예 다른 방에서 따로 잤으니 아예 부담이 없었다.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렇다고 밤이 편했던 건 아니었다. 물론 나는 잘 잤는데 아내는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칼같이 깨서 우는 서윤이 때문에 고생을 했다. 난 가장 늦게 나온 건 물론이고 아주 늦게까지 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아침부터 놀이터에 갔다고 했다.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키우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놀이터를 갔던 적이 있나 싶다. 아마 없을 거다. 어디 놀러 가서 산책하러 나가고 그런 건 몰라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목이 빠지도록 고모 집에 가는 걸 기다릴 만하다.
소윤이는 어제 자기 전에 할머니에게 사주(?)를 했다.
“할머니가 아빠한테 저 필사랑 성경 통독하지 말라고 얘기 좀 해 봐여”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기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 힘든’ 걸 해야 하는 게 안쓰러운가 보다. 내가 보기에 하기 싫기는 해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오늘은 할머니의 입김을 이용해 면제받았다.
다 함께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서윤이는 예배 시작할 때쯤 재워서 방에 눕혔다. 설교 말씀이 참 좋았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오늘도 궁금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오늘 설교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과한 바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예배를 드리고 나서 또 나갔다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가고 나서 TV를 켰다. 사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어른들 아침 먹는 동안 TV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예배도 드리기 전에 보여주는 게 싫어서 잘 설득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보자고 했다. 시윤이는 ‘예배 끝나면 TV 꼭 보여 줄거져?’라고 여러 번 물어봤다.
“시윤아. 아빠가 왜 영상 안 보여주는지 알겠지? 집에서는 영상 안 봐도 잘 놀면서 영상 한 번 보여주니까 계속 그 생각만 하잖아”
사실 아빠도 TV 좋아해. 그래서 집에 TV를 안 놓은 거야. 애들 나간 틈을 이용해 사심을 채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갔다 와서 보드게임도 하고, TV도 보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야 하는 순간을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서윤이는 ‘안돼 공포증’에 걸렸다. 누가 됐든 ‘안 돼’라고 얘기만 하면 입을 삐죽거리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증상이다. 오늘도 바나나를 먹다가 (내) 엄마가
“어, 서윤아. 거기는 잡으면 안 돼”
라고 그냥 일상의 언어로 얘기했다. 오히려 다정하게. 그랬는데 서윤이는 먹던 바나나를 거부하더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너무 서럽나 보다. 누가 자기한테 안 된다고 하는 게. 딸기를 먹이니 울음을 멈췄다. 다시 바나나를 들이밀었더니 울고. 바나나를 치우면 멈췄다가 다시 내밀면 울고. 기분 상했다는 걸 티 내는 건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셋 아니 넷 다 잤다. 소윤이는 오늘도 잠들지 않겠다는 듯 어떻게든 잠을 쫓아내려고 하는 게 보였지만, 결국 잠들었다.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나만 집에 올라갔다 왔다. 바로 축구장에 가야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둘 다 가고 싶어 했다. 사실 안 간다고 하면 그것도 걱정이긴 하지만. 집에 가서 애들 입을 패딩을 가지고 왔다. 아내와 서윤이는 집으로 올라가고 나랑 소윤이, 시윤이는 바로 축구장으로 향했다.
축구를 하며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노나 보는데 둘이 너무 심심해 보였다. 둘이 우두커니 앉아서 어른들이 축구하는 걸 보고 있는 모습에, 괜히 미안했다. 첫 경기가 끝나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옆에 있는 놀이터에 갔다. 축구하러 나온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내가 빠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해 미안함을 무릅쓰고 그렇게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신이 났다. 그네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고, 얼음땡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그다음 경기에는 들어가서 뛰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또 의자에 멀뚱하니 앉아 있었다. 다른 날은 굉장히 잘 놀던데 오늘은 유독 그랬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소윤이가 나를 불렀다.
“아빠아”
“어어. 왜에?”
“시윤이가아 집에에 가고 싶대여어”
“왜에?”
“몰라여어”
“알았어어. 조금만 기다려어어”
경기가 끝나고 나서 다시 물어봤다.
“시윤아. 집에 가고 싶어?”
“네”
“그래, 알았어. 가자”
애들 데리고 축구하러 온 이래로 끝나기 전에 나온 건 처음이었다. 기껏 놀이터까지 데리고 가서 놀아줬는데 다 소용없었다는 생각에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나 즐겁자고 하는 축구에 끌고 왔으면서 이게 무슨 생각인가 싶기도 하다가, 다음 주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 그랬다. 따라 나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가자고 할 수도 없고. 아무튼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시윤이는 아빠의 속도 모르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나한테도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냥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왠지 소윤이는 평상시와 다른 나의 모습은 물론이고 아빠가 왜 저러는지도 눈치를 챘을 것 같다.
집에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와 계셨다. 잠깐 들르셨다고 했다. 소윤이는 아차 싶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있을걸”
“소윤아, 할머니 할아버지 잠깐 오신 거야”
정말 잠깐 계시다 가셨다.
저녁은 간단히 먹였다. 계란밥으로.
“여보. 우리는?”
“우리는 애들 재우고 먹으려고 했지”
“아, 그래. 그러자”
시윤이와 서윤이가 꽤 오래 걸렸다. 당연히 아내도 좀 늦게 나왔고. 건강과 체중에는 악영향일지 몰라도 그 시간에 만만한 건 라면이었다. 배불리 먹었다. 배불리 먹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여보. 이틀 동안 잘 쉬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잠을 못 자서 그렇지 뭐”
“그런가”
수유를 좀 끝내야 제대로 쉬지. 지금은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