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갈까? 나갔다 올래?

21.03.22(월)

by 어깨아빠

오전에 통화하고 내내 연락을 못하다가 오후 늦게 연락을 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아니요. 힘겹게 보내고 있습니다”

“왜?”

“그냥 내가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마음이 좁아졌네”


서윤이가 자주 깨는 건 일상이 되었지만, 지난밤에는 유독 심했다. 잠결에도 서윤이가 자주 깬다는 게 느껴졌다. 아내가 그것 때문에 매우 괴로워하는 것도 느껴졌고. 잠결을 핑계로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는 나 자신도 느껴졌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내 의지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내에게 미안하긴 했다.


수면 부족은 여러모로 안 좋은 과정과 결과를 초래한다. 나야 뭐 스스로의 피곤함만 다스리면 되지만, 아내는 ‘관계’ 속에서 사투를 벌여야 한다. 아내 말처럼, 좁아진 마음은 평소에는 너끈히 받아내던 것들에도 쉽게 자극을 받는다. 아내가 그랬나 보다. 자세한 상황을 묻지는 않았지만.


통화도 했는데 역시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아니, 의욕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통화를 마치고 혼자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는 게 아내에게 가장 힘을 불어 넣는 걸까. 수유가 불가능한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1) 애들 재우고 나갔다 오라고 하기


서윤이만 아니었으면 ‘애들은 내가 재울 테니 퇴근하자마자 나가라고 하기’로 바꾸는 게 가능했을 텐데. 아쉬웠다. 그나마 내가 아내에게 내밀 최선의 방안은 ‘혹시 마지막 수유 후에도 서윤이가 잠들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일단 나가라’라는 것이었다.


2) 퇴근해서 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올 테니 그동안 혼자 좀 쉬라고 하기


뭐 잠깐의 쉼을 위해서는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게 언제가 됐든 ‘돌아올’ 아이들을 기다려야만 하는 신세가 된다는 거다. 쉬고 와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거랑 ‘자야 하는’ 아이들을 보는 건 전혀 다른 상황이다.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여보. 이따 내가 애들 데리고 나갔다 올까? 그동안 여보는 집에서 좀 쉬고”

“아니”

“왜? 별로야? 집에서 쉬는 건 좀 별로지?”

“어”

“그래. 그럼 여보가 나갔다 와. 애들 빨리 재우고. 서윤이만 빨리 재우고, 소윤이랑 시윤이는 내가 재우면 되니까”

“서윤이가 잠이 들어야 말이지”

“뭐 잠 안 들면 내가 재우면 되지. 수유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러기로 했다. 퇴근하기 전에 카톡을 한 번 더 보냈다.


“여보. 저녁도 사갈까?”

“ㅠㅠㅠㅠ”

“왜?”

“지금 저녁 뭐 먹지 생각 중이었는데. 감동이라”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좋은 결과였다. 난 이런 쪽으로는 운을 타고났나 보다. 아니면 아내가 감동 기준이 낮은 사람이거나.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더니 소윤이는 치즈돈까스, 시윤이는 탕수육을 골랐다고 했다. 둘 다 양보할 생각이 없고 자기 먹고 싶은 걸 얘기한다고, 아내가 전해줬다.


“여보. 그럼 그냥 집에 가서 계란밥 해 준다고 해”


아내는 통화를 끊고 아이들에게 나의 뜻을 전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서로 양보하겠다는데요?”

“그래? 그럼 둘이 얘기해서 정하라고 해 줘”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치즈돈까스로 정했대요”

“그래, 알았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쓸데없이 뜻을 굽히지 않고 양보를 하지 않으면, 누구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하고 오히려 둘 다 썩 기쁘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걸 가르칠 의도였다. 치즈돈까스든 탕수육이든 자기들의 수고는 하나도 보태지 않고 은혜롭게 거저로 얻은 보너스라는 걸 알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본격 육아인으로 전환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다행히(?) 서윤이는 낮잠을 한 번밖에 안 잤다고 했다. 아마 수유를 하면 바로 자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소윤이, 시윤이와 저녁을 먹었고 아내는 우리가 저녁을 다 먹어갈 무렵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수유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가 나간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지만, 더 직접적으로 얘기했다.


“엄마도 쉬어야지. 서윤이 때문에 잠도 못 주무시고 하루 종일 너희 돌보시느라 피곤하시잖아. 엄마도 쉬어야 돼. 안 그러면 쓰러지셔”


씻기고 책까지 다 읽어주고 마지막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와 인사를 나누고 나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군대에서 훈련할 때보다 더 철저한 조심과 정숙을 요구했다.


“소윤아, 시윤아. 들어가기 전에 인사도 다 했으니까 들어가면 절대 소리 내면 안 돼. 들어가면 바로 누워서 자야 돼. 서윤이 깨면 안 돼”


그건 전쟁보다 더 한 일이거든.


고맙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용히 누워서 금방 잠들었다. 서윤이도 깨지 않았고. 다시 거실로 나와서 정리와 설거지를 했다. 부족하겠지만 최대한 들어와서 할 일이 없도록.


중간에 서윤이가 깨서 울었다. 엄청 이른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주변을 정리했는데, 소리가 옅어졌다.


‘뭐지? 다시 자나? 설마’


이 생각을 열네 번쯤 반복했더니, 완전히 조용해졌다. 지난번에 보니, 일단 깨면 엄마가 등장하지 않고서는 누워서 자지 않는다. 내가 계속 안고 있으면 모를까. 아무튼 정말 다행이었다. 생명이 연장된 느낌이었다.


아내가 얼마나 회복하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뭘 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앉아서 다이어리 좀 끄적였다고 했다.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하면서. 나도 아쉬웠다.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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