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9(월)
“엄마. 엄마. 아빠가 아직도 회사를 안 가셨어여”
“그래? 늦잠 자셨나 보다. 소윤이가 깨워 봐”
“아빠. 아빠”
“응”
“일어나여. 회사 가야져”
“어, 알았어”
“아빠. 일어나라니까여”
“응”
“아빠. 지금 엄청 환해여”
“어, 일어날게”
“아빠. 일어나여. 얼른”
“소윤아. 사실 아빠 휴가지롱”
소윤이는 이게 웬 횡재냐는 표정으로 날 보며 웃었다.
“아빠 오늘 회사 안 간다구여어?”
“어, 시윤아”
“아빠는 왜 이렇게 장난꾸러기에여어?”
오늘 연차를 낸 건 당연히 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소윤이 자전거 태워 주려고 그런 것도 있었다. 주말 내내 비가 오고 날이 흐리다는 예보를 미리 확인하고, 그럼 월요일에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휴가를 낸 거다. 다음 주는 서윤이 돌이라 시간이 없으니.
“여보. 대박이야”
“뭐가?”
“미세먼지. 완전 최악이래”
“진짜?”
아내가 수치를 이야기해 줬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아내의 설명으로는 지금까지 이 정도로 나쁜 걸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보통 애플리케이션에서 측정하는 범위에서도 한참 벗어난, 아무튼 밖에 나가서 자전거 타기가 힘든 정도였다.
“소윤아. 아쉽다”
“그러게여. 아이 진짜”
“아빠가 일부러 오늘 휴가 낸 건데”
“그래여? 진짜 아쉽다”
“그러게. 아빠도 아쉽다”
“아빠. 그냥 오늘은 집에서 재밌게 놀자여”
“그래. 그러자”
“아, 우리 시윤이도 두발 자전거 타는 거 알려주려고 했는데”
“아아, 아쉽다여어”
정말 내가 다 아쉬웠다. 휴가 운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누군가 아프거나 비가 오거나, 거기에 황사까지 더해지다니. 소윤이 말대로 집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했다.
아침 먹고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함께 잠들었는지 나오지 않았다.
“소윤아. 서윤이 잘 때 보드게임할까? 방해받지 않고?”
“그러자여”
도블, 할리갈리, 우노, 스트림스를 다 했다. 도블이나 우노는 최선을 다해도 애들이 이길 때도 많다. 특히 우노는 시윤이가 이길 때도 있다. 할리갈리는 마음만 먹으면 애들이 종을 한 번도 못 치게 만들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도 해 봤다. 오늘은 적당히 조절을 했다. 아빠는 봐 줘도, 누나는 봐 주지 않으니 이기기가 너무 힘든 시윤이는, 할리갈리 할 때는 빠지기도 했다.
아내와 서윤이는 꽤 한참 잤다. 집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너무 아쉬우니까 오후에는 스타필드에 다녀오기로 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을 테니. 아내와 서윤이가 자는 동안 미리 옷도 갈아입히고 준비를 다 했다.
냉장고에 딸기가 있었다.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길래 씻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딸기 먹자”
절반 정도를 꺼내서 씻었다. 씻으면서 한두 개 먹어봤는데 아주 신선하고 맛있었다. 아직 한 입에 넣기 힘든 시윤이를 위해 반으로 쪼개서 그릇에 담았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난 뒤였기 때문에, 혹시라도 딸기 얼룩이 묻을까 봐 내가 먹여줬다.
“아빠. 그런데 왜 갑자기 딸기를 먹자고 했어여?”
“그냥. 아빠가 먹고 싶어서”
“그런데 왜 아빠는 안 먹어여?”
“아빠도 먹었어. 너네 많이 먹어”
“아닌데. 안 먹은 거 같은데”
다 먹고 마지막 조각이 남았을 때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이건 아빠 먹어여”
“아니야. 소윤이랑 시윤이 먹어. 아빠는 많이 먹었다니까”
“아니잖아여. 아빠 먹어여”
“아빠 진짜 괜찮아. 소윤이랑 시윤이 먹어. 얼른”
마지막 한 조각을 건네는 그 마음이 참 어여쁘다.
아내와 서윤이가 깼고 스타필드로 갔다. 가는 길에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샀다. 김밥은 들어가기 전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먹었다. 잘리지 않은 꼬마 김밥이라 먹이기가 좀 번거로웠지만, 마음은 편했다.
대형 쇼핑몰에 가면 뭔가 정신이 없고 묘하게 기운이 빠진다. 특히 오늘처럼 목적 없이 왔을 때는 더 그렇다. 밖에는 못 나가고, 집에만 있기에는 아쉬웠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오락 한 판씩 할래?”
“진짜여? 좋아여”
자전거 못 탄 게 내 잘못도 아니었는데, 뭔가 소윤이와 시윤이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 주고 싶었나 보다. 내가 먼저 나서서 오락을 제안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진짜 물이 나오는 총으로 화면 속 좀비를 쏘는 게임을 한판씩 했다. 단판은 너무 아쉬우니 다른 게임도 하나 더 고르라고 했다. 소윤이는 오토바이 게임을 골랐고, 내가 함께 올라타서 했다. 시윤이도 똑같은 걸 골랐고, 난 또 탔다.
“아빠. 그런데 왜 갑자기 오락을 하자고 한 거에여?”
“그냥. 소윤이랑 시윤이 신나라고”
“자전거 못 타니까 아쉬워서?”
“응”
아내는 자주 가는 옷 가게에 가서 서윤이 양말을 산다고 했다. 사는 건 양말이지만, 구경은 쓸어 담을 듯 신중하게, 오래 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들의 옷이어도, 쇼핑이 길어지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총알을 두둑이 챙겨 가서 마음에 드는 걸 탁탁 사면 모를까, 한발 남은 총으로 어딜 맞출까 고민하는 건 나에게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마트를 한 바퀴 돌고 스타필드 나들이를 마쳤다.
“아빠. 지금 몇 시에여?”
“지금? 4시 조금 안 됐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갔다니. 아빠 우리 집에 빨리 가자여”
“왜?”
“집에 가서도 아빠랑 놀게여”
소윤이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집에 가면 같이 레고를 하자고 했다. 지난번에 필사 선물로 받은 레고를 만들었다 부쉈다 만들었다 부쉈다 하고 있다. 너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오늘도 만들면서
“이걸 산 건 정말 잘 한 거 같아여”
라고 얘기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즐겁게 레고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 흐뭇한 일이기도 하지만, 너무 졸리기도 했다. 꾸벅꾸벅 졸았다. 소파에 앉은 아내를 보니 아내도 나랑 똑같았다. 그 시간이 고비인가 보다. 졸렸지만 최선을 다해, 엉뚱한 조립으로 소윤이와 시윤이를 웃겼다. 아빠랑 있을 때 많이 웃고 즐거웠다는 평가(?)를 받는 게 또 다른 나의 작은 바람이다. 아직까지는 나의 유머와 개그가 가족들에게 먹혀서 다행이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동물 파스타(동물 모양 면)를 만들어 주고, 아내와 나는 나물 반찬을 넣은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의 파스타에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꽤 양이 많았는데 싹싹 비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육아인의 사명을 다했고,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다가 푹 자고 나왔다. 한때 잠들면 깨지 못하고 아침까지 자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라즈베리 바게트를 먹는 아내를 보며, 빵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밤에 먹으려고 산, 가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빵을 먹어야 한다는 의지가 아내를 깨우는 건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