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30(화)
소윤이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서윤이를 데리고 거실에 나갔다고 했다. 무려 7시 30분에. 5분도 귀한 그 아침에, 서윤이를 데리고 나가서 시간을 확보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소윤이도 소윤이지만 언니랑 나가면 한동안 괜찮은 서윤이도 웃기다. 애들은 다 안다. 누가 자기를 예뻐하고 사랑하는지. 누구랑 있으면 자기가 안전한지.
밤에는 잘 못 잤다고 했다. 난 별로 안 깨서 몰랐는데 한 2-3시간에 한 번씩 두어 번 깼다고 했다. 사실 어제 서윤이를 아내와 나 사이에서 재웠다. 우리가 막 들어갔을 때 깼길래 아내가 수유를 하고 우리 사이에 눕혔다. 혹시나 나한테 깔리지 않을까 걱정은 좀 됐지만(실제로 영아 사망 원인 1위가 질식사라고 했다) 서윤이의 손과 발을 잡고 자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자다 살짝 깼을 때도 여전히 내 옆에 있길래, 또 손을 잡고 잠들었다.
서윤이는 오늘도 퇴근하는 나를 보며 아주 환하게 웃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격렬한 몸짓을 보이며 반가워했다. 소윤이, 시윤이 때도 그랬지만 그거 보려고 퇴근한다. 서윤이를 번쩍 안고 반강제로 볼을 비비며 인사를 했다. 서윤이의 반가움은 딱 3초였다. 뽀뽀도 하고 안고 있으려고 했는데 다시 내려가고 싶다면서 몸을 비틀었다. 내려놨더니 언니, 오빠 따라다니면서 놀겠다고 부지런히 기어 다녔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밥을 부지런히 먹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거라도 안 해 놓으면, 아내가 애들 재우고 나와서 또 설거지를 해야 하니까. 소윤이와 시윤이가 밥을 먹는 동안, 목장 모임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했다.
목장 모임을 막 시작했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도 밥을 다 먹었다. 잠깐 내 옆에서 목장 모임 하는 걸 구경(?)했는데,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언니와 오빠가 선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자기 나름대로 엄청 애를 썼다. 사소한 순간이지만 서윤이의 남다른 투지가 보일 때가 있다. 소윤이, 시윤이를 키울 때는 보지 못했던, 비슷한 듯하지만 생소한 막내 특유의 당당함이랄까.
아이들은 아내와 함께 잘 준비를 하러 나갔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아내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낮에는 어떤지 모르지만 나랑 같이 있을 때는 아내가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나랑 함께 있으면 주로 내가 그 역할을 자처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평소보다 훨씬 더 크고 높은 목소리로 아이들을 꾸짖는 소리가 꽤 오래 들렸다. 나가서 아내를 좀 도울까 하다가 (아내의 백 마디 말보다 나의 10초 등장이 더 효과적이라고, 아내가 얘기했다) 그냥 있었다. 굉장히 신경이 쓰여서 잠시 목장 모임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자세한 상황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내는 스스로 분노에 찼었다고 표현했다. 뭐 말 안 듣고 자꾸 장난쳤겠지.
오늘 밤에는 아내랑 시윤이 어릴 때 사진과 영상을 한참 봤다. 한 세 살 때쯤, 말을 굉장히 어눌하게 할 때의 모습이었다. 시윤이도 우리 집의 주인공이었던 때가 있었다. 소윤이랑 실컷 씨름하고 상처 난 마음을 시윤이에게 위로받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시윤이도 요즘 부쩍 컸다. 무엇보다 언어 구사력이 월등히 성장했다. 선택하는 단어의 수준도 높아졌고.
내 앞에서 서슴없이 옷을 갈아입고 함께 화장실에 들어갈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소윤이를 볼 때마다, 시윤이가 든든하다. 내가 선택한 건 아니지만 아들도 한 명 낳기를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