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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Oct 22. 2023

다시 잇는 이야기,
독립서점 <Kuo's Astral>

@ Kuo's Astral Bookshop 郭怡美書店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친구에게 줄 선물을 챙겨 다시 거리로 나섰다. 몇 년 전 숙소 호스트로 처음 만난 친구 위리가 연 서점이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에 찍힌 위치에 가닿아 고개를 든 나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고풍스러운 석조 건축물에 서점 <Kuo’s Astral Bookshop>이 따스한 기운을 뿜으며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와 당신, 도시와 세상의 이야기


‘친구가 이런 책방을 열다니! 굉장해!’ 


자랑스러운 마음에 서점 밖에서 요란하게 사진을 찍던 나는, 벅찬 마음을 숨기고 조용하고 태연하게 서점에 들어섰다. 독립 서점이라곤 하지만 한눈에 보아도 많은 장서를 갖춘 서점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친구를 찾는 것도 잊은 채 책장으로 달려들어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몇몇 책장을 살펴본 나는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책장이 인문서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1층은 대만과 타이베이에 대한 책으로 가득했다. 여행서뿐 아니라 도시과 지역의 역사,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룬 책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타이베이라는 도시를 넘어, 어쩌면 대만이라는 나라가 시작된 다다오청 지역(Dadaocheng, 大稻埕)에 있는 서점인 만큼,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자, 1층과는 다른 형태의 책장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들 나라와 지역별로 구분되어 있었다. 특히 중국과 일본, 미국에 대한 책이 많았는데, 장서의 수만 보아도 해당 국가와의 관계나 문화적 친밀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낡은 계단과 옥상, 중정을 지나는 통로를 거쳐 3층까지 마련된 서가를 모두 둘러보고 나니, 문득 1층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이베이라는 도시와 그 밖의 세상, 도시의 과거와 미래,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와 당신. 이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우리 그 거대한 흐름 속에 함께 있다는 것…. 수십 개의 책장에 꽂힌 수만 권의 책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시 잇다


서가를 모두 둘러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오자, 분주하게 짐을 옮기고 있는 위리가 보였다. 책장 너머로 이름을 부르자, 위리가 나를 알아보고 반가운 듯 웃어 보였다.


“나, 네 얼굴을 거의 잊을 뻔했어!”


코비드 시기를 보내고 몇 년 만에 만난 위리였다. 위리는 서점 뒤편에 있는 카페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차와 커피를 한 잔씩 놓고, 그간 밀린 소식을 주고받았다. 호텔 운영을 그만두고 서점을 연 친구. 그 커다란 변화 속에 녹아있을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다오청 지역의 많은 건물들이 그러하듯, 서점이 자리한 건물도 100년이 넘은 석조 빌딩. 이 빌딩은 원래 다다오청 일대에서 유명한 가문의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몰아치던 근대사의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가세가 크게 기울었고, 빌딩의 소유자도 바뀌게 되었다고. 그 후 여러 차례 주인을 바꿔가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어느새 빌딩은 텅 빈 채로 잊혀 갔다. 하지만 이 낡은 빌딩의 옛 모습을 아직 기억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유명 가문의 손자이자 대만 출판계의 큰손 Kuo 선생.


이 빌딩에서 유년기를 보낸 Kuo 선생은 여전히 옛집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보란 듯이 잃어버린 집을 되찾았다. 그리고 뜻이 맞는 친구 위리를 만나 이곳에 독립 서점 <Kuo’s Astral Bookshop>을 열게 된 것.


찰-칵, 찰칵!


위리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던 나를 셔터 소리가 깨웠다. 내가 두리번거리자, 건축 유산으로써 이 빌딩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며 위리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두 사람은 서점을 준비하면서 빌딩 보수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Kuo 선생의 유년이 담긴 각별한 빌딩인 만큼, 옛 모습을 되살리는 것 또한 중요한 작업이었다. 나는 공사 과정을 기록한 사진과 자료가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것을 보며, 이곳을 부지런히 쓸고 닦았을 그 마음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이 타일 바닥을 밟으며 뛰놀고 석조 계단을 오르내리며 유년기를 보낸 아이가, 주름진 얼굴로 다시 돌아와 추억을 되찾기 위해 애썼다고 생각하니 조금 뭉클해졌다.


두 사람이 살뜰하게 마음을 쏟은 끝에 빌딩은 다시 반짝임을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옛이야기를 발견하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품에 안고 떠난다. 그렇게 끊어졌던 이야기의 맥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나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은 위리를 남겨두고 서점을 나오면서, 미리 봐둔 책을 한 권 구입했다. 표지에 또우장 가게 사진이 있는 타이베이 여행서였다. 나는 잠시 서가 옆에서 책장을 들추어 보았다. 책 속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 내일은 여기 나온 이 만둣가게에 찾아가 볼까?’

‘우와, 이 멋진 찻집은 또 뭐야…?’


이렇게 나의 여행 이야기도 다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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