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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새는 나무를 가려 둥지를 튼다(최고의 선택)

조명받는 블라인드 리더란

by 미운오리새끼 민

"한 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

이 말은 정도전이 한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뒤웅박은 박을 반으로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에 구멍만 뚫고 둥근 모양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것을 과거 부잣집에서는 쌀을 담는 데 사용하였으며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는 데 사용하였기에 그 쓰임새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었다. 즉 애초에 뭘 담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영원히 결정되는 것처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양금택목(良禽擇木)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춘추좌씨전 애공 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공문자가 찾아와 전쟁에 대해 물어보고 난 후 위나라를 떠나려 하자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묻자 한 말이다. 어진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고 훌륭한 신하는 현명한 군주를 가려서 모셔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블라인드 리더에게 리더의 선택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역사상 순간의 선택을 잘못하여 성공한 블라인드 리더가 있는 반면에 실패하여 자신까지 죽음을 맞이한 이도 수없이 많다.

장량, 소하의 경우 유방이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수하로 들어가 리더를 이끌고 보좌하며 결국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신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처럼 리더를 볼 줄 아는 능력과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도전 또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인물로 이성계를 선택하여 그를 도와 결국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 정치를 펼치기도 했다. 만약 이성계가 정도전이란 블라인드 리더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본인의 야망이 있고 그의 아들 이방원의 야심만으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정도전이 장량 소하처럼 아름다운 결말을 맺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조선왕조 500여 년 기간 동안 그가 기초한 국가 틀이 계속 유지되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할 것이다.


그 외에도 김춘추라는 인물을 알아보고 그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김춘추를 왕으로 세웠고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의 기초를 다지며 죽을 때까지 왕과 같은 지위를 누렸던 김유신과 자신의 능력보다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고 기꺼이 자신보다 아래였던 마오쩌둥의 밑으로 들어간 저우언라이의 선택이 있었기에 마오쩌둥이 있을 수 있었으며 오늘날 중국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김유신이나 저우언라이가 김춘추와 마오쩌둥을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대립하였다면 이들 모두는 오늘날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관계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려 서로 상생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사례가 크라이슬러의 로버트 이튼과 로버트 러츠,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이다.


로버트 러츠와 로버트 이튼은 서로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칫 서로 대립하고 어느 한 사람이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로버트 이튼은 로버트 러츠를 포용하였으며 그에게 많은 권한 위임을 통해 로버트 러츠가 자신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로버트 러츠 또한 로버트 이튼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기에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그를 도와 크라이슬러를 다시 회생할 수 있었다.


힐러리 클린턴 또한 빌 클린턴의 자질을 알아보고 자신의 졸업을 늦춰가며 빌 클린턴을 잡는 집념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 혼자서 여성 대통령이 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그 다리 역할로 빌 클린턴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퍼스트레이디로 만족하지 않고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대내외의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정책을 이끌어 가기도 했다. 비록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지금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임에 틀림없다.

반면 새로운 인물을 찾아 나서 성공한 사람도 있다. 타이거 우즈를 떠나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킨 스티브 윌리엄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타이거 우즈와 결별을 하고 골프 신예 아담 스콧의 캐디로 활동하며 그를 세계 1위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다. 훌륭한 블라인드 리더는 어느 위치, 누구와 함께 해도 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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