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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새는 나무를 가려 둥지를 튼다(잘못된 선택)

조명받는 블라인드 리더란

by 미운오리새끼 민

반면 리더를 잘 못 선택하여 자신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으로 간 블라인드 리더도 있다.

괴통은 한신을 도와 천하삼분을 하고 한신을 황제로 만들려고 했었지만, 한신의 우유부단함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적었기에 괴통을 말을 듣지 않았다. 괴통은 한신이 장군으로서의 능력이 출중하고 공명심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여 그가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인물로 판단했던 거 같다. 괴통에게서 천하삼분론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신은 황제보다는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그가 저잣거리에서 시정잡배의 굴욕을 이겨내며 가랑이 사이를 지나간 것도 그들을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대업을 이루면 이들이 자신을 알아줄 거라 생각하는 마음에서였다.


권력을 쥐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권력을 얘기해봤자 소귀에 경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괴통은 한신의 그릇을 알아보고 그를 떠나 미친척하고 살아가지만 그 말로는 좋지 않았다. 괴통이 한신을 만나지 않고 바로 유방을 만났다면 그의 인생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항우의 책사 범증 또한 수많은 계책과 고언을 항우에게 하였지만 결국 항우가 말을 듣지 않았으며, 마지막에는 자신마저 의심하자 그와 결별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범증의 계책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항우는 초반 우세했던 전력을 지켜내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범증 또한 항우와 결별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범증이 항우를 만난 건 70살이 넘어서였다. 항우의 숙부 항량을 섬기다가 항랑이 죽자 자연스레 항우의 책사가 된 것이다. 만약 범증이 항량이 죽고 난 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범증은 항량에게서 보지 못한 비범함을 항우에게서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항량보다는 항우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인물로 판단했을 수 있다. 당시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고 칭할 만큼 그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항우의 기세가 너무 세다 보니 범증의 계책 없이도 전투에서 이기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런 자만이 범증의 계책을 따르지 않게 하였다. 결국 범증도 항우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과욕이 앞섰던 것이고 항우 또한 그런 자신만 믿고 범증의 고언을 새겨듣지 않은 실수를 범하게 된 것이다.


범증이 항우의 강점만을 바라보고 그의 약점을 간과한 점이나, 자신이 그 강점을 더 살릴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했었더라면 둘 다 모두 좋은 결과를 이뤄내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다른 리더를 선택했지만 결국 똑같은 결말을 맞이한 사람도 있다.

한나라 말기 진궁은 처음에는 조조의 의협심에 감복하여 그와 의기투합하여 큰일을 도모하려 하였으나 조조가 은혜도 모르고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를 살해하자 그를 떠나 여포에게로 갔다. 이것은 조조의 성품이 진궁 자신의 성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주군을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여포 또한 진궁에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여포가 진궁의 계책을 듣지 않는 바람에 조조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진궁을 회유하고 끝까지 그를 살려주려 하였으나 그는 의(義)를 앞세워 죽음을 자청하였다.

진궁이 조조가 회유하였을 때라도 다시 마음을 잡고 조조의 휘하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마지막에는 진궁도 조조나 여포 모두 같다고 생각했을 거 같다. 진궁이 조조의 청을 거부한 것은 언젠가 조조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을 수 있다. 그럴 바에 지금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대신 그는 그의 부모와 자식들이 무사히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으니 마지막에는 현명한 선택을 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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