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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같은 명성을 가졌지만 삼국지에서 저평가된 방통

불운한 참모

by 미운오리새끼 민

방통은 유비가 수경선생 사마휘로부터

"복룡과 봉추 둘 중 하나만 얻어도 가히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삼국시대 제갈량과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실제 삼국지에서는 그의 명성보다는 저평가되었다. 또한 그렇게 제갈량과 겨룰 정도의 사람이었는데도 조조, 손권 모두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으며, 유비조차도 수경선생에게 그런 말을 듣고도 방통이 스스로 찾아왔음에도 그를 높이 중용하지 않고 시골 동네의 현령으로 발령을 내었다.

제갈량을 삼고초려하며 어렵게 모셔온 것과는 너무 대조되는 장면이다. 유비의 입장에서는 제갈량을 얻었기에 이미 천하를 자신이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방통이 손권이나 조조의 수하에 들어갔었다면 이 또한 유비 입장에서는 결코 이로운 일이 아님에도 그는 방통을 너무 가볍게 대했다.

어찌 됐건 유비에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방통이 뇌향현 현령으로 발령을 받는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유비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삼국지연의에서도 손권을 떠나면서 노숙에게 이미 마음은 유비에게 가 있는 상태를 은근히 내비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당시 후한 말의 상황에서는 어떤 인재를 자신의 휘하에 두느냐에 따라 명운이 엇갈리는 상황이었다. 특히 조조의 경우에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재를 얻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수경선생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어 그의 노모를 볼모로 하여 자신이 보호하고 있다는 핑계로 그를 부른 일이나, 사마의가 한사코 관료 자리를 사양할 때에도 그를 겁박하여 자신의 수하에 들인 일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방통만은 예외였다. 그의 명성이 제갈량과 같았음에도 왜 그를 천거하지 않았을까? 삼국지연의에서는 대체적으로 그 이유가 그의 외모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도 외모지상주의를 문제 삼지만 그 당시에도 외모가 인재 등용에 중요한 요소였나 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실제 방통의 외모가 못생겼다는 역사적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어찌 됐건 방통이 제갈량에 비해서는 볼품이 없었나 보다. 제갈량이 훤칠한 키에 호남형의 얼굴이었던 반면 방통은 첫인상부터 호감을 주지 못하니 그와 대면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수 있으며, 그가 어떤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좋은 묘책을 내논다 할지라도

'니까 짖게 뭘 안다고...'

하는 식으로 치부했을 수도 있다.

방통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고을 현령의 자리에서 유방의 군사로 발탁되고 난 후였다. 방통이 제갈량만큼 뛰어난 지는 그의 삶이 너무 짧게 끝나서 비교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단지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비가 촉땅을 얻어 천하삼분의 지형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방통의 별호는 봉추(鳳雛)였는데, 봉황의 새끼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학식도 뛰어났으며, 정세를 바라보는 혜안 또한 뛰어나 일찍이 제왕을 모실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사실 천하삼분론을 주장한 것은 제갈량이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겨 결실을 맺게 한 인물은 방통이었다. 방통이 익주를 얻을 것을 유비에게 제안하여 유비가 익주를 얻음으로써 명실공히 삼국의 틀을 갖출 수 있었다.

방통과 제갈량은 어려 면에서 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제갈량이 교과서적인 전략과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지녔던 반면 방통은 이와 달리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전략 수립을 통해 싸움을 이끌었다. 어찌 보면 변화무쌍한 전략과 전술의 달인이라 할 수 있었다. 즉, 제갈량이 지피지기 전법으로 상대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통해 작전을 수립하고 싸움을 전개했다면 방통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식의 전술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계책을 수립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방통이 즉흥적이지는 않았다. 그가 익주를 얻을 때 유비에게 상, 중, 하의 계책을 내세웠던 것은 그가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줄 아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한 가지 계책을 갖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대방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계책 중 가장 합리적이며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여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정석적인 제갈량의 전략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통의 전략은 서로 대조되었다. 사실 제갈량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계획안에 상대가 따라오지 않으면 진전이 없었다. 그 예가 유비 사후 유선에게 출사표를 던지고 북벌을 위해 싸움에 나갔지만 사마의와의 전투에서 번번이 수성만 하는 그를 물리치지 못한 것이다. 만약 방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신의 계획을 수정하여 새로운 전략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았을까? 마치 익주를 탈환할 때 유비에게 제시한 3가지 계책처럼 다양한 전술을 부리며 그 상황을 돌파하지 않았을까?

제갈량이 큰 그림을 그린다면 방통을 그 그림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마치 장량이 큰 그림을 그리고 한신이 이를 실행에 옮겼던 한나라 건국 초기와 다를 바 없었다. 방통이 조금 더 오래 살면서 제갈량과 전략적으로 서로 결합하여 유비를 도왔다면 마지막 패자는 유비가 되었을 수 있다. 제갈량과 방통의 결합은 천하를 얻기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방통이 죽은 이유가 삼국지에서는 자만심과 제갈량에게 공을 빼앗길까 봐 서두르다 변을 당했다고 하지만 실제 방통이 죽은 곳은 낙봉파가 아니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기며 걸어가는 제갈량의 성품과 달리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통의 성격상 죽음의 위험요소는 더 많이 있었던 거 같다.

주군의 마음을 헤아리고 제왕과 비책을 논하는 등 때론 유화적이며, 변화무쌍한 전술로 상대를 농락했던 방통이지만 이른 나이에 죽음으로써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블라인드 리더로서 보여준 삶은 요즘 시대를 살아갈 때 임기응변식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만 자신마저 위험한 상황으로 모는 일은 피해야 할 거 같다.

PS : 순발력 있게 위기 상황을 모면한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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