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위험해 처해지는 경우는 내부 요인과 외부요인이 있다. 하지만 조직이 붕괴되는 원인은 외부요인보다는 내부 요인에 의한 경우가 더 많다.
세계 역사를 보더라도 국가의 운명은 외부요인보다는 내부 요인에 의해 붕괴된 경우가 많았다. 로마제국의 멸망도 게르만족의 이동보다는 자체 내부 요인에 의해 붕괴된 것이고, 중국도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에서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환관과 간신들이 조정을 위태롭게 한 내부 문제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
우리나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전설이 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서도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는 바람에 멸망하였고,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도 자체 내부 붕괴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고구려 또한 연개소문 사후 내부 분열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조선도 일제에 의해 멸망하였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내부 당파싸움으로 인한 폐해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국가보다는 당리 당파와 양반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외부 요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 원인은 바로 외부보다는 내부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
이건 비단 나라뿐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외부 요인보다는 내부 요인에 의해 조직이 붕괴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리먼 브라더스의 경우도 내부에서 이미 수차례 위기 상황을 감지했음에도 리스크 관리 원칙을 무시했으며, 경영진의 오만함이 결국 파산이라는 결과를 낳게 했다.
최근 벌어진 박근혜 정부의 탄핵 또한 외부 요인보다는 내부 요인에 의해 촉발되어 이뤄졌듯이 조직의 붕괴는 외부요인보다는 내부 요인에 의해서 그 운명이 좌우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고인물이 썩는다'라고 관리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이기주의와 무사 안일주의, 대중 영합 정치 행위 등으로 국론을 분열시켜 결국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부 요인에 의해 국가와 조직이 위험해질 때까지 조직원들은 무엇을 했다는 것일까? 리더는 무엇을 했으며, 리더를 보좌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했다는 것일까?
이 경우 대부분 리더는 눈과 귀가 차단되어 바른 정보를 들을 수 없을뿐더러 왜곡된 정보 전달로 인해 잘 못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리더는 그런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현혹적인 말에 넘어가 결정을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몰락을 예견하지 못하고 그 턱 밑까지 왔을 때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임진왜란 전 통신사로 일본을 방문했던 황윤길과 김성일은 같은 것을 보고 다른 시각에서 선조에게 보고를 하였다. 황윤길은 전란이 있을 수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했고, 김성일은 큰일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둘은 동인과 서인으로 한창 당파싸움으로 인해 나라의 국익은 뒷전이고 오직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결국 외침에 대비하지 않음으로써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왕이 몽진까지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싸움을 하더라도 그 비수는 밖을 향해야 하는데 조직이 붕괴될 때는 그 비수가 내부를 향하게 되고 내부에 서로가 서로를 겨누는 형국이 된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내부에서 서로 싸움을 하니 잘 될 일이 있을까?
어찌 됐건 이 모든 상황에서 리더는 블라인드 리더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참모들의 잘못된 정보와 조언은 리더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따라서 블라인드 리더는 정확한 정세분석과 내부 상황과 외부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판단, 그리고 이를 토대로 조직에서 실현 가능한 전략 수립을 통해 위기를 벗어날 방안을 리더에게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역사 사건 속에서 달리 대체했던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마감한 후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명나라 정벌을 내걸었으며 그 중간 단계로 조선 침공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일본은 전쟁을 멈출 명분이 없었다.
조선은 외교적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대응전략을 세우던지 아니면 전쟁을 대비한 군사력 증강이 필요했다. 이이의 십만 양병설이 이러한 근거에 의해 제기되었으나 이 또한 묵살되었다.
하지만 대신들은 당파싸움에만 열을 올렸을 뿐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앞날에는 아무런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결국 아무런 대비 없이 1592년 일본의 침략을 받아들였으며, 20여 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는 치욕을 당했던 것이다.
이는 1597년 정유재란,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 때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반세기 동안 4번의 큰 외침을 당하고도 조선의 신하들은 변하지 않았으며, 결국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반대로 이순신은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고 수군을 정비하고 거북선이라는 새로운 함선 개발에도 주력하였다. 또한 적의 상황과 조선의 지형을 이용하여 가장 최적의 장소에서 적과 싸우는 전략을 발휘했기에 23전 23승이라는 불멸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특히 12척의 배로 330척의 배를 상대했던 명량해전은 '산즉 생 생즉사'의 의지로 내부 조직을 강화시키면서 일본의 자만심을 극대화하고, 진도 앞바다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3가지 요소가 모두 결합하여 나타난 승리였다.
조직은 항상 대내외의 위협에 처해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해 나갈 것인가는 리더와 블라인드 리더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리더가 딴마음을 갖거나 자기 살겠다고 조직을 버리거나 오직 정략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간다면 조직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블라인드 리더는 리더를 보좌하여 조직을 이끌며, 내부의 적대행위 금지와 외부요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 조직에 대한 객관적 진단, 그리고 이를 통해 위기 상황 극복 방안을 수립하여 조직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S : 이순신이 아니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