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근현대의 정치사를 다루면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3김 시대의 한 사람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2인자로 살아가면서 김형욱, 이후락 등 정권의 실세들이 사라지거나 몰락할 때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오랜 기간 박정희 정권의 실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도 여러 번 실각과 재기에 성공하며 붙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박정희 정권에서 권력의 2인자로서 자리를 유지하였다.
또한 박정희 사후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차기 유력 대선주자였지만 신군부에 의해 망명길에 오르는 비운의 정치 역정도 있었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돈다고 했던가, 마치 성경에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라고 5.16 군사 쿠데타처럼 12.12. 쿠데타로 등장한 전두환 정권에 의해 그의 정치적 삶도 종말을 고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87년 민주 항쟁을 계기로 한국 정치사에 다시 등장하였으며, 이후 20여 년간 다시 2인자로서 한국 정치 무대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인생은 박정희 정권 시기와 87년 민주 항쟁 이후 시기로 나눌 수 있다.
5.16.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그가 아니었으면 박정희 정권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쿠데타 이후 그의 주도하에 중앙정보부 창설과 민주공화당이 창당되었고 이것을 발판으로 정권 유지와 인권탄압, 그리고 장기집권이 가능했다. 이처럼 한일 국교정상화와 유신 체제 등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그가 항상 있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서 박정희 정권 창출을 기획하고 박정희 정권이 해야 할 일들을 실행에 옮기는 일을 직접 하였다. 이런 연유로 그는 경계의 대상이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항상 일정 정도 지분을 갖고 있는 2인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 이후 대안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독이 되었다.
조직 내에 두 개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듯이 박정희는 끊임없이 김종필을 경계하였다. 결국 견제세력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이란 말을 남기고 외유를 떠나기도 했다. 이러한 부침은 박정희 정권 내내 계속 유지되었다. 이후 3선 개헌과 유신에 대해 찬성하면서 그는 다시 화려하게 2인자로 복귀하였으며, 5년 6개월 동안 국무총리를 지냈다.
박정희 사후 공화당 총재로 선출되고 80년 서울의 봄 때는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부정축재자로 몰리면서 정계에서 은퇴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그가 신군부에 의해 감금되었을 당시 2인자로서의 삶에 대한 일화가 있다. 노태우 수경사령관이 방문했는데 이때 노태우가 김종필이를 깍듯이 예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종필이 노태우에게 2인자에 대한 처세술을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신에게 예우를 해준 노태우에게 전두환 밑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태우는 전두환의 밑에서 2인자로서 후계수업을 받으며 무난히(?) 대통령을 이어받았다.
87년 민주 항쟁 이후 그는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충청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 창당을 주도하였으며 집권 여당인 민자당 최고위원으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며 다시 2인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3당 합당 당시의 약속을 저버리자 민자당을 나와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여 다시 홀로서기에 나선다.
이후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돕고 국민의 정부 공동정권의 2인자로 초대 국무총리에 오른다. 하지만 내각제 개헌이 무산되자 김대중 정부와 결별하고 다시 독자노선을 걷는다. 그리고 그는 2004년 총선에서 사상 초유의 10선 고지를 노렸으나 결국 실패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어찌 보면 김영삼과 김대중 모두 내각제를 할 의향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과 손잡은 것은 2인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명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즉, 87년 이후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나름 자기 기반을 다지기는 했지만 스스로 1인자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김종필은 직감적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가 일정 지분을 유지하면서 권력을 나눠갖기 위해서는 1인자의 모습보다는 2인자로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김영삼과 김대중의 협력자의 역할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계산이었을 수 있다.
정치생명이 끝이 났다고 생각할 때쯤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어느 순간 권력의 2인자로 살아왔던 인물로 그의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풍운아'라는 이름 이외에 본인은 싫어할지 모르지만 '영원한 2인자'라는 수식어는 부침이 많은 정치사에서 꿋꿋이 살아남아 자신만의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지 않나 싶다. 물론 본인이 이루고자 했던 마지막 정치 결실로 내각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정말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본 그에게 50여 년간 한결같이 최고 권력자의 주변에서 살아온 인물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며, 2인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 가져봐야 할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절대 권력자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본인을 권력에서 밀어냈을 때도 서운한 표현을 안 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얼굴 표정과 말과 행동에 조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일정 정도 내려놓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몇 년도 아니고 정치인생 50년 기간 동안 그런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기 절제와 처세술, 현실과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라고 한 그의 말에서 2인자로서의 처세가 그대로 드러나듯이 그는 항상 자신을 높이지 않았으며, 1인자를 위협하려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러기에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때에도 직접 맞서 싸우지 않고 스스로 먼저 떠나는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말년에 '정치는 허업이다.'라는 말로 주변 정치인들에게 정치의 무상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때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정치적 야망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결국 대통령 빼고 이룰 거 다 이뤄본 2인자에게서 나온 정치 메시지는 허업이었다.
비록 그에 대한 여러 공과가 있지만 기업이나 조직, 정치권력의 틈바구니에서 2인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처세는 귀감이 될 수 있다 할 것이다.
ps : 리더에게 불만이나 서운한 감정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