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강태석 소장은 황정민 박사를 혼자 남겨 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악령들이 쫓아오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녀만 놓고 가기에는 위험할 수 있었다.
“얼떨결에 저도 함께 가게 됐네요.”
그녀가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먼저 말했다. 강태석 소장은 아무 말 없이 운전을 했다. 대간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람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어디로 가는 거죠?”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차 안은 여전히 침묵만 흘렀다.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듯 어둠이 점차 내리고 있었다.
차는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직 이곳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일상적인 생활을 평온하게 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봄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바다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봄철 밤바다는 겨울이 다시 찾아온 느낌마저 들었다. 대간과 하람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지만 강태석 소장과 황정민 박사는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하람은 자연의 추위 앞에 나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날도 춥고 밤도 됐는데 내일 일찍 시작하면 어떨까요?”
강태석 소장이 대간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시죠.”
“쉴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강태석 소장이 잠 잘 곳을 찾아 나섰다. 황정민 박사도 그를 따라갔다.
“여기까지는 아직 다이몬이 찾지 못한 거죠?”
하람이 대간을 보며 물었다.
“그래도 언제 우리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해.”
그때 강태석 소장과 황정민 박사가 돌아왔다.
“근처에 펜션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하룻밤 지내야 할 듯합니다.”
강태석 소장이 말했다.
넷은 차를 타고 근처 펜션으로 이동했다. 평일이라 펜션은 한산했다. 펜션 내부는 넓은 거실과 방이 두 개 딸려 있었다. 방 하나는 황정민 박사가, 그리고 나머지 방은 강태석 소장이 자는 것으로 하고 하람과 대간은 거실에 있는 것으로 했다. 강태석 소장은 황정민 박사에게 받은 자료들과 안경 속 컴퓨터에 복사한 자료들을 정리했다. 안경 너머로 모든 자료들이 홀로그램으로 비치고 있었다. 그 자료들은 강태석 소장의 손짓에 서로 합쳐지기도 하고 분리되어 각각의 파일에 옮겨지고 있었으며, 서로 중복되는 것들은 정리가 되고 새로운 자료들이 업데이트되면서 순차적으로 배열되었다. 과거 고문헌의 그림문양들도 새로 스캔되어 컴퓨터에 저장되었다. 그림문양들은 기존 자료들과 중복 여부 및 일치 여부를 확인하여 스스로 문양과 그림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황정민 박사가 먹을 것을 갖고 왔다.
“이것 좀 먹고 하세요. 집 알아보면서 샌드위치를 샀어요.”
사실 셋 모두 오늘 밥다운 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강태석 소장이 샌드위치를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대간과 하람도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뭐하는 분이세요? 그리고 이곳에는 왜 온 거죠?”
황정민 박사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대간과 하람에게 물었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면 믿을 수 있나요?”
대간이 황정민 박사를 보면서 말했다. 그녀는 뜬금없다는 듯 강태석 소장을 바라봤다. 강태석 소장도 대간의 얼굴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간이 강태석 소장을 바라봤다. 강태석 소장이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 이야기는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그녀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때로는 신기해하며 대간과 하람을 바라보았다.
3월 15일 금요일(춘분 5일 전)
숨 가빴던 어제와 달리 오늘 아침은 평온했다. 황정민 박사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대간과 하람은 거실 소파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일찍 일어났네요? 소장님은 안 일어났나요?”
황정민 박사가 인사를 했다.
“이제 슬슬 준비해서 나가야 해요.”
대간이 황정민 박사를 보며 말했다. 소리를 들었는지 강태석 소장이 방에서 나왔다.
“다들 잘 잤나요?”
“네, 소장님, 준비해서 가야 해요.”
하람이 말했다.
“내가 제일 늦은 모양이군. 알았다. 빨리 준비해서 나오마.”
강태석 소장이 씻으러 들어 간 사이 대간과 하람은 간단히 식사할 것을 준비했다. 황정민 박사도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유적 발굴 활동을 많이 해서 이런 일에 익숙해 보였다. 넷은 식사를 한 후 차를 타고 대간의 안식처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로 갔다. 이른 아침이라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대간이 자신의 안식처라고 가리킨 곳은 바다 위에 있었다. 하람은 암초 덩어리 같은 네 개의 바위섬만 보여 그곳이 대간의 안식처라고 생각이 안됐다.
“저기에 당신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저긴 문무왕의 무덤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발굴을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당신을 통해서 대왕암을 볼 수 있겠네요.”
강태석 소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바위섬을 보며 말했다.
“소장님은 저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어요.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나를 불러내야 해요.”
“그런데, 만약 일이 잘 못 됐을 경우 당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지 않나요? 그리고 이 그림문양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당신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해요.”
강태석 소장이 말했다.
“그럼, 내가 영면하는 곳 까지만 가는 것으로 해요. 그 안에까지는 절대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왕암은 해변에서부터 2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넷은 작은 보트를 빌려 해변에서 바라보는 반대편 대왕암 바위 쪽으로 갔다. 대왕암은 네 개의 커다란 바위가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의 십자수로 형태의 물길이 나 있어 물이 들어가고 나가고를 반복했다.
중앙에는 바깥쪽의 거친 파도 물결과 달리 물결이 잔잔한 작은 수중 못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 못 아래에 거대한 돌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중간의 작은 못은 바다 쪽 동쪽 수로에서 파도와 함께 빠르게 유입되는 바닷물을 잔잔하게 만들어 서쪽 수로를 통해 시냇물이 흐르듯 일렁임 없이 흘러나가게 했다. 대왕암의 바위들은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인 듯 칼을 들고 있는 것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네 개의 바위섬은 바다에서 바라볼 때만 그렇지 실제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섬이었다. 강태석 소장은 중앙에 놓여 있는 돌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중앙에 있는 돌을 고인돌의 덮개에 비유했다. 길이는 가로가 2m가 넘고, 세로도 4m에 가까웠다. 돌은 약간 한쪽 부분이 떠 있긴 했지만 바닥에 잘 부착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대왕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숨이 멎을 듯 긴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