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언어가 아닌 하늘의 언어로 말해봐.”
강태석 소장이 하람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하람은 하늘의 언어로 주문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강태석 소장은 하람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꽉 잡아줬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이몬의 부하들이었다.
“하람아, 어서 피하자. 곧 저들이 들이닥칠 거야.”
강태석 소장이 하람의 손을 잡고 보트 쪽으로 내려가려 했다.
“아직 대간이 깨어나지 않았어요. 이대로 갈 수 없어요.”
“하람아, 잊었니? 네 임무는 부리막대 상자를 지키는 거야. 여기 있다가는 저들에게 부리막대 상자도 빼앗기고 우리 모두 죽어.”
강태석 소장이 하람을 설득했다. 다이몬의 부하들이 대왕암 근처까지 거의 접근해 왔다. 두 사람은 서둘러 보트에 탔다. 그 순간 괴물들이 보트 위로 그들을 덮치려 했다. 셋은 보트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그때 하얀 섬광이 비췄다. 모두들 죽었다고 생각했다. 강태석 소장은 강한 빛 때문에 주변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런 고통도 없었지만 죽어서 하늘나라에 온 느낌이 들었다. 하람도 얼굴을 들어 빛 속의 누군가를 봤다. 그리고 밝게 웃었다.
하얀 섬광과 함께 다이몬의 부하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밝아 있었다. 파도도 잔잔해졌으며 보트에 잔물결이 일어서 출렁일 뿐이었다. 모든 일이 한 순간에 이뤄졌다. 강태석 소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무 평온한 것이 신기했다. 대간이 보트 위로 천천히 내려왔다. 하람은 뛸 듯이 기뻐하며 대간의 품에 안겼다.
“대간!”
대간이 하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람의 몸이 예전처럼 돌아왔다. 강태석 소장도 대간의 얼굴을 보며 반갑게 악수를 했다. 그의 눈에 눈망울이 맺혀 있었다.
“방금 전 그 괴물들은 어떻게 한 거죠?”
강태석 소장은 여전히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제가 쫓아냈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대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무사한 거죠?”
황정민 박사가 일어나며 말했다.
“얼른 육지로 이동하죠. 여기서는 얘기하기도 너무 비좁네요.”
대간이 운전대로 이동하며 말했다.
보트는 경쾌한 엔진 소리를 내며 대왕암에서 벗어났다. 강태석 소장은 한 동안 대왕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 전 긴박했던 상황도 잊어버리고 대왕암에 대한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또다시 그 누구도 들어가 보지 못하는 곳이 됐군.’
강태석 소장은 문무왕이 조용히 영면하길 바라며 신라를 지켰듯이 이 지구를 지켜 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보트에서 내린 그들은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를 탔다.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췄죠?”
강태석 소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간에게 말했다.
“네, 운이 좋았어요.”
대간도 마음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정말 간발의 차이었어요. 하마터면 이 부리막대 상자도 푸른악령들에게 뺏길 뻔했다니까요.”
하람이 과장되게 몸으로 표현하며 말했다.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죠?”
황정민 박사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며 말했다.
“대간,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강태석 소장이 아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심각하게 말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대간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림문양을 해독할 컴퓨터가 고장 났어요.”
“다이몬 부하들의 습격 때 고장 난 건가요?”
대간의 부리부리한 눈이 더 커졌다. 그 눈빛에 모두들 압도당했다.
“그건 아니고, 갑자기 고장 났어요.”
강태석 소장을 대신해 하람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다른 지구방위기사의 그림문양을 해석하려면 아무래도 제 컴퓨터가 필요해요.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앞부분과 뒷부분이 같은 부분이라 다른 지구방위기사들은 장소만 해석하면 됩니다.”
강태석 소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컴퓨터를 어떻게 구하죠?”
하람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소장님, 제 것을 쓰셔도 되는데요.”
황정민 박사가 잠바를 벗으며 말했다. 웨어러블 컴퓨터는 얇은 잠바처럼 입고 벗기 편하게 되어 있었으며, 사이즈에 상관없이 신축적으로 적용되었다.
“황 박사 것으로 가능한가요?”
대간이 강태석 소장에게 물었다. 강태석 소장이 황정민 박사를 보며 우물 거렸다.
“웨어러블 컴퓨터는 옷에서 떼어낼 수가 없어요. 옷과 일체형이죠. 또한 자신의 주 사용자에게 맞게 규격화되어 기능을 하도록 초기에 저장되어 있어요. 즉, 다른 사람이 그것을 대신 사용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죠. 컴퓨터와 그것을 입는 사람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거죠. 그래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입게 되면 컴퓨터가 작동을 안 하거나 하더라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작동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니면 새로운 인가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재승인 요청이 있어야만 가능해요.”
“황 박사의 웨어러블 컴퓨터는 오직 황 박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거네요?”
대간이 황정민 박사의 웨어러블 컴퓨터를 보며 말했다.
“네, 본인만 사용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박사님은 그걸 소장님에게 사용하라고 했나요? 박사님도 그 내용을 알고 있지 않나요?”
하람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황정민 박사에게 물었다.
“그건 뭐, 재단에 변경 승인 요청하면 소장님도 쓸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한 거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그녀가 서둘러 진화해 나섰다. 강태석 소장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제 컴퓨터를 갖고 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연구실로 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강태석 소장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다른 컴퓨터는 안 되나요? 전에도 메모리 카드만 안경에 있는 컴퓨터에 입력하여 사용했잖아요.”
대간도 고민을 하면서 말했다.
“다른 컴퓨터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요. 이건 일반 컴퓨터가 아닙니다. 시스템 자체가 달라서 호환이 안 돼요. 우리 재단의 컴퓨터는 고문헌 연구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입니다. 또한 제가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는 그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방대한 자료를 분류해서 저장해 놓았어요. 그래서 대간 그림문양도 해석할 수 있었죠. 다른 프로그램이었다면 아마 힘들었을 겁니다.”
“지금 갖고 있는 서류 자료로는 안 되나요?”
“가능하긴 한데 다 수작업으로 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요.”
강태석 소장이 어려움을 토로하며 말했다.
“그럼 갑시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 해야죠.”
대간도 더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시원스럽게 말했다. 차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