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받는 블라인드 리더란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책임소재를 물을 때 항상 책임지는 사람은 리더이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리더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항상 리더십이나 리더를 강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 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태풍피해,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이후 세월호 침몰 사고, 신종플루 이후 메르스 사태, 지진 재난 사고 등 비슷한 유형의 사건사고들이 꾸준히 반복되고 있음에도 대책 마련이 미흡한 이유는 무엇일까? 몇 사람이 책임져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이고,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조직의 책임이 크다. 내부적으로야 문책성 인사가 따라 가겠지만 상명하복이 부른 조직의 문제일수도 있다.
살아있는 조직은 밑에서부터 활발한 의견 개진이 이루어지는 조직이라고 했다. 그래야 새로운 인재도 발굴할 수 있고, 새로운 사업이나 조직의 문제도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회사에서 직급을 단순화 하거나 없애는 노력, 회사 내에서는 직급을 없애고 예명을 부르게 하는 시도는 바로 이런 상하관계의 조직체계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이 든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경기할 때는 선수들에게 이름만 부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었다. 아마도 외국 감독의 입장에서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형’이라는 존칭과 ‘누구누구야’라는 반말이 뒤섞여 부르는 상황이 경기력 저하의 원인으로 판단했던 거 같다. 한국의 정서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울 수 있었지만 서로 협력 플레이를 통해 움직이는 축구에서 상하관계에 따른 플레이는 경직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야 나이 어린 선수도 자신의 플레이를 기죽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조직사회에서 이런 노력이 형식적인 것에만 치우친다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 즉, 직급을 단순화시키고, ‘누구누구 씨’하는 식의 호칭만 변화한다고 해서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직접 리더가 되어서 자신이 팀을 꾸리고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지원체계가 갖춰 질 때 진정한 수평관계의 조직문화, 성과에 따른 보상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이다.
리더 혼자 떠드는 조직은 이제 성공할 수 없다. 끊임없이 내부 직원들과 소통하고 권한위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참모의 역할보다는 리더 자신의 역랑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려 하는 경향이 더 많은 거 같다. 그런 조직은 여전히 리더의 입만 바라보면서 일을 한다.
어제까지 안 되던 일이 리더의 한마디에 오늘은 가능하게 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조직원들이 그동안 일을 하기 싫어서 안했던 것일까?
아니면 일을 할 줄 몰라서 그랬던 것일까?
리더가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지만 밀어 붙이기 때문에 안할 수 없으니 억지로 따라 가는 것일까?
이유야 어째 됐건 간에 문제는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조직에서 참모의 역할은 미미할 수밖에 없으며, 그저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인식이 참모들에게도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조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조직은 그런 조직인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리더의 인식 전환 없이, 그리고 참모들의 자기 주도적인 역할 없이 참모로 인정받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리더가 참모를 귀하게 여기고 참모를 동반자로 생각하고 참모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그런 모습이 이제는 필요할 때이다. 최소한 유비처럼 삼고초려는 아니더라도 정말 리더가 직접 나서 참모를 모셔오는 그런 모습이 우리 사회에도 나타났으면 싶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장관 후보자 지명이나 장관이 퇴임을 할 때 자신이 직접 나서 후보자를 왜 지명하게 되었는지, 그가 왜 장관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장관이 재임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으며, 왜 사퇴를 하게 되었는지를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참모를 귀하게 대접한다는 인식을 받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아직은 좀 먼 거 같다. 수석비서관이나 장관 인선 때 처음 연락을 받는 것은 대통령이 아닌 그 밑의 청와대 참모를 통해서라고 한다.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운영할 사람들을 모셔오는 일인데 좀 더 그 사람들을 위한 예의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니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참모 또한 공명심과 명예욕을 우선시해서 움직이는 경우라면, 이건 꼭 리더만의 문제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 폴리페서라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이 있다. 모든 분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단순히 정계나 관계의 고위직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경우라면 리더의 입장에서는 어떤 마음이 들까?
'어진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고 했다.'
참모가 될 사람이라면 자신의 공명심과 사리사욕만 갖고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전에 친한 후배가 모 단체의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대표 선거가 있었다. 꾸준하고 성실한 활동을 하는 후배를 인상깊게 봤던 한 후보가 후배에게 부대표 자리를 권했다. 나름 애정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었던 후배라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고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냥 하겠다고 할 수 없어서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그 자리가 적합한 것인지 물었다. 그 분은 후배의 성실함과 주위 평판이 좋아서 함께 하면 좋을 거 같다고 했고, 자신과 다른 간부들이 일은 알아서 할 것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그냥 나와 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말을 들은 후배가 정중히 사양을 했다고 한다.
사람을 부리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인재를 영입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들과 함께 목표를 공유하고 성취하는데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배의 경우는 앞의 부분이 빠진 것이다. 리더 중심으로 사고하였기에 이런 생각들이 나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조직에서 참모가 인정받으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조명 받지 못하는 참모들의 경우 대부분은 이렇게 리더의 인식부족이나, 너무 강력한 카리스마로 본인이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갈 때, 그리고 참모가 자신의 공명심과 사리사욕에 가득 찼을 때 참모란 의미는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참모를 자신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찾아서 영입해야 하며, 참모 또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 시킬 수 있는 존재로써 리더를 받아들여야만 서로가 상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S : 상사나 리더의 역랑이 커서 여러분의 능력이 상쇄되는 경우가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