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민 부장은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갔다. 그는 천체관측 프로그램인 스텔라리움을 열었다. 그리고 1만 2천 년 전 별자리의 움직임과 황도경사, 세차운동, 자기장의 변화들을 살펴봤다. 시뮬레이션 결과 마지막 자기장의 반전이 있었던 것은 1만 2,400년 전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에도 지구의 자기극이 반대로 뒤집힌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세차운동에 따른 황도 각의 최저점인 22.1도까지 내려간 시기도 이와 비슷한 시기인 1만 2,500년경에 나타났다. 그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찾았다. 학술지나 논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세차운동이 남북축의 변화를 야기 시켰으며, 이로 인해 지구자기장의 변화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만약, 당시 지구의 자전축이 각각 하늘의 북극점인 북극성, 직녀성과 일직선을 이루고, 북극성과 지구의 인력이 최대로 강해지면서 우주의 힘이 지구로 흡수됐고, 태양과 지구, 북극성이 삼각을 이루게 될 때, 지구는 북극점으로부터 유입되는 우주의 힘과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를 흡수하여 강력한 지구 에너지를 갖게 되었을 거야. 이렇게 되면 지구에서는 지진과 화산활동이 발생하고 거대한 해일과 함께 육지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재앙이 몰려왔을 수 있어.’
그는 내용을 정리하며 1만 2천 년 전의 가상의 지구 모습을 홀로그램에 재생시켰다. 연구 자료에도 지구가 우주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어마어마한 자기장의 변화가 나타나고 이는 남극, 북극이 뒤바뀔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또한 지구의 극이 바뀌는 엄청난 자기장의 변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전자시스템을 무력화시켜 원시사회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무 대륙의 소멸은 지구자기장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몰락으로 볼 수 있었다. 무 대륙과 지구자기장의 변화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어 보였다. 그는 지구자기장의 변화를 계기로 무 대륙이 다시 나타난 거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누군가의 조정에 의한 변화라면 지금껏 지구환경에 대한 연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돼. 과학은 절대 검증 가능한 것이어야 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과학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어쩌면 과학을 빙자한 비과학적 현상들이 인간들에 의해서 과학으로 포장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김찬민 부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위성사진에 나타난 무 대륙을 살펴봤다. 무 대륙 해안가는 병풍이 처진 것처럼 높은 산들이 솟아 있었다. 내부는 산맥과 협곡이 거의 없는 평편한 지반을 갖고 있어, 성산 일출봉이 몇 천배 커진 느낌이 들었다.
이 때문에 아직 바닷물이 빠지지 않고 그대로 무 대륙에 존재하는 곳이 많았다. 1만 2천 년 전 무 대륙 사람들의 발달된 문명 도시는 확인이 안 되었다. 오랜 기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세월만큼이나 역사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태석 소장은 이동 중에도 차 안에서 나머지 지구방위기사단의 그림문양을 해석하였다. 두 지구방위기사단의 해석을 통해 얻어진 자료들은 다른 지구방위기사단의 해석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황정민 박사가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통해 유사 검색기로 비교한 내용들 또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그즈음 황정민 박사에게 연락이 왔다. 경쾌한 전화 목소리를 듣고 그는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몸이 안 좋아 집에서 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빠른 목소리로 재잘대며 파손된 문화재에 대해서 쉼 없이 얘기를 했다. 이윽고 바쁜데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는 전화 감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었다.
차는 어느새 한국지구지질연구소에 도착했다. 여기도 코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있어서 이번 피해에 영향을 받은 듯했다. 바다에는 집에서 나온 생활용품 등 각종 부유물들이 떠다니고 있었으며, 해안 주변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문명이 발달해도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여전히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자 강태석 소장은 씁쓸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김찬민 부장이 나와 강태석 소장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이쪽으로 오시죠.”
문서창고 안은 각종 문서와 서류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오래된 종이 특유의 냄새가 창고에 진동을 했으며, 뿌연 먼지를 머금고 있는 책들은 사람의 손길이 오래 동안 닿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강태석 소장은 책들과 서류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문명은 고도로 발달하고 있고 모든 자료를 컴퓨터로 저장하여 보관할 수 있었으나 그에게 종이 책이 주는 매력은 여전했다. 창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작은 테이블과 편안한 안락의자 세 개가 있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워낙에 상황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김찬민 부장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이 정도면 최고죠. 참 이분을 소개 할게요 지구방위기사단 매디입니다.”
강태석 소장이 매디를 김찬민 부장에게 소개하였다.
“아, 네, 반갑습니다.”
김찬민 부장이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매디도 얼떨결에 수인사를 했다.
“부탁하신 1만 2천 년 전의 지구환경과 관련된 자료입니다.”
김찬민 부장이 정리한 자료를 강태석 소장에게 주었다.
“조사해 보니 1만 2,400년과 1만 2,500년 전 사이에 지구자기장의 변화와 세차운동에 따른 황도 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어요. 이때도 지구의 자기극이 완전히 뒤바뀐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는지 아니면 100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거의 동시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구에 지진과 해일, 화산활동 등 거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추론해 보면 무 대륙이 멸망한 시기가 이쯤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이것이 지구의 자연스러운 활동에 따른 변화인지 아니면 신의 장난인지는 알 수 없어요.”
김찬민 부장이 대간을 봤다.
“신의 장난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탐욕의 결과입니다.”
매디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온누리님은 지구 활동과 우주의 활동이 지구에 위협이 될 만하면 그것을 가만두지 않았죠. 그렇게 되면 지구에 수많은 재앙들이 계속 발생하게 되니까요. 예를 들어, 지구 과학자들은 지난 2000년 5월에 발생한 태양계 행성의 행성직렬 현상이 발생했을 때 대재앙이 발생한다고 우려했어요. 이것은 목성과 토성, 화성이 일직선이 됐을 때 단파 무선 주파수가 방해받는 것을 확인하고 그런 예측을 한 것이죠. 당시에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지구와 거의 일직선상에 있었죠.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태양을 제외한 행성들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행성 간의 끌어당기는 힘 또한 달이 지구에 미치는 힘보다 작기 때문에 행성직렬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죠.”
김찬민 부장이 머뭇거리다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단파 무선 주파수가 방해받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아직 천체물리학 이론으로는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현재 그 이유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럼 그 모든 일이 가온누리님의 보호 아래에 이루어졌다는 건가요?”
김찬민 부장의 대답에 강태석 소장이 물었다. 매디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김찬민 부장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입증된 내용은 무엇인가요?”
“그건 인간이 해석한 내용일 뿐이죠.”
대간이 매디를 대신해 말했다.
“맨 처음 당신들을 만났을 때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었죠. 인간들에게 그것이 단지 전설로만 여겨졌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사실이었고, 자연적인 현상 속에서 신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뿐입니다.”
“그럼, 지금도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지금도 다를 바 없죠. 1만 2천 년 전 사라졌던 대륙이 한순간에 솟아오른 것을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단지 지금은 가온누리님이 아닌 다이몬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 문제죠. 지금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겁니다.”
강태석 소장의 물음에 대간이 답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