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일요일(춘분 3일 전)
무 대륙은 태평양을 거의 삼켜 버린 듯했다. 태평양은 더 이상 가장 큰 바다가 아닌 조그만 호수처럼 느껴졌다. 이미 태평양 연안 지역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미국의 LA와 샌프란시스코, 캐나다 밴쿠버, 일본 동경, 오사카 등 인구 밀집지역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수 천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국도 제주도 상당 부분과 작은 섬들 그리고 저지대 해안 도시들의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유엔에서는 태평양 연안 도시에 대해 재난 특별지구를 선포하고 세계 각국에 지원 요청을 하였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 구호 활동은 쉽지 않았다.
유엔 산하 국제지질기구와 각국에서는 무 대륙에 대한 조사 발굴단을 긴급히 파견했다. 하지만 대륙이 워낙 커 제대로 조사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어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정착하여 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새로운 대륙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었다. 벌써부터 무 대륙 주변 나라들에서는 영토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였다. 태평양 인근 나라들도 영토 확장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향후 지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서둘러 자국 과학자들을 파견했다. 결국 유엔에서는 남극대륙처럼 무 대륙도 국제 공동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얘기가 나왔으나, 영토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나라들은 일정 비율 이상을 무 대륙을 통해 보상받기를 원하고 있어서 전망은 불투명해 보였다.
‘이것이 다가올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면 앞으로 닥칠 위기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바닷물이 언제 빠질까? 어쩌면 영원히 빠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이미 산산이 부서졌어.’
김찬민 부장은 지구 곳곳의 참혹한 실상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와중에 서로들 영토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태평양 아래 지질 변화 상태를 주시했다. 아직 지구 내부의 큰 에너지 흐름은 없었다.
김찬민 부장은 전화기와 태평양 상황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실 뉴스보다는 다이몬과 지구방위기사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더 궁금했다. 지금은 다이몬이 힘을 안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황도경사나 지구자기장의 변화도 더 이상 없었다. 황도 각도 22.5도에서 오락가락했다. 전화가 울렸다. 그는 조용히 상황실 밖으로 나갔다.
“소장님, 중국에서의 일은 잘 마무리되셨나요?”
김찬민 부장의 목소리가 작으면서도 간결했다.
“네, 잘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가고 있어요. 그곳 상황은 어때요? 아침에 뉴스를 통해서 태평양 주변지역 나라들의 피해가 크다고 들었어요.”
강태석 소장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상황이 매우 안 좋아요. 우리나라도 저지대 침수 피해가 상당해요. 바닷물이 빠지지 않으면 저지대 지역은 영원히 바닷속에 잠겨 있을 겁니다.”
김찬민 부장이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무 대륙은 완전히 솟아올랐나요?”
“현재는 그렇게 보여요.”
“다이몬은 어때요?”
대간이 불쑥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계속 주시하고 있는데 아직 이렇다 할 변화는 없어요. 황도 각이 좀 기울기는 했지만 염려할 단계는 아닙니다.”
김찬민 부장은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부장님, 혹시 1만 2천 년 전 지구의 천체 지질환경을 알 수 있나요?”
“가능한데 무슨 일 때문에 그렇죠?”
강태석 소장의 말에 김찬민 부장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물었다.
“대간이 예전에 했던 말 기억하시죠? 인간들이 절대 권력을 가진 신이 되려고 자기들끼리 전쟁을 일삼자 가온누리가 인간 세상을 파멸시켰다는 내용이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그게 바로 무 대륙 같아요. 고문헌에 따르면 무 대륙이 사라진 것이 1만 2천 년 전입니다. 당시에도 지진과 화산 폭발이라는 대재앙이 있었고, 엄청난 양의 물이 대륙을 뒤덮어 버리는 침수가 발생하여 소멸됐다고 되어 있죠.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당시 지구에 어떤 지질학적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강태석 소장이 지난번 대간이 했던 말을 요약하며 말했다.
“지구 환경 변화에 따른 무 대륙의 침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김찬민 부장이 물었다.
“무 대륙은 아틀란티스처럼 전설 속의 대륙입니다. 전에는 각 지역의 전설이거나 그저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쯤으로 생각했죠. 당시 무 대륙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뛰어난 고도의 문명을 갖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한순간에 멸망하면서 모든 것이 사라졌죠. 그래서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거죠. 단지 오늘날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공포와 두려움으로 미친 사람이 되거나, 굶주림으로 서로를 잡아먹기까지 하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해요. 이때부터 식인 문화가 퍼졌다는 설도 있어요. 한때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던 무 대륙 사람들이 한순간의 몰락으로 가장 비참한 생활 속으로 던져진 거죠. 그런데 이런 설화적인 이야기가 무 대륙을 통해서 사실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진 겁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들이 역사가 되는 겁니다. 이를 밝히기 위해 당시 지구환경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면 무 대륙이 왜 멸망했는지 과학적으로 원인을 밝힐 수 있고, 무 대륙에 대한 접근도 더 쉬워질 수 있어요.”
강태석 소장의 목소리에 활력이 넘쳤다.
“알겠습니다. 제가 상황실에 들어가서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하나 더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요. 부장님 도움을 가까이서 받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저희가 그쪽에 있을 만한 공간이 있을까요?”
강태석 소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찬민 부장이 곰곰이 생각했다. 이곳 상황도 매우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회의도 수시로 잡히기 때문에 회의실을 사용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빌려줄 공간도 없었다. 문서 창고가 지금은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어서 적당하긴 했지만, 공간이 협소해서 괜찮을지도 미지수였다.
“괜찮으시다면 사용해도 무방한 곳이 있긴 해요. 저희 연구소 문서창고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바빠서 잘 가지 않거든요. 근대 거기에 서류들이 많이 쌓여 있어서 장소가 매우 비좁아요. 그곳이라도 사용하시겠다고 하면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어요.”
“저희는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강태석 소장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그전까지 부탁하신 내용들은 정리해 놓을게요.”
김찬민 부장이 시원스럽게 대답을 했다.
“감사합니다. 공항에서 내려 차로 이동 중입니다. 1시간 이내로 도착할 겁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