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일행은 푸르미르가 있는 필리핀의 푸에르토 프린세사 세인트 폴 지하 동굴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강태석 소장이 심한 구토 증세를 보였다.
“괜찮으세요?”
하람이 강태석 소장에게 다가가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괜찮아.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매스꺼워서 그래.”
“순간이동하면서 몸의 균형이 깨져서 그럴 겁니다.”
매디가 강태석 소장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얼굴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얼굴이 반쪽이 된 듯했다.
“걸을 수 있겠어요?”
하람은 강태석 소장이 걱정 됐다. 그는 말할 힘도 없는 듯 손짓으로 괜찮다고 했다.
“일단, 푸르미르가 있는 곳까지 가보죠?”
매디가 그를 부축했다. 입구는 바닷물에 잠겨 위치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선착장에 배들의 파편들이 널려 있어서 이곳이 입구라는 것만 짐작케 했다.
“푸르미르가 저 안에 있는 것은 확실한가요?”
매디가 강태석 소장을 보며 말했다.
“다른 지구방위기사단도 맞았으니 푸르미르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강태석 소장이 조금 기력이 회복되었는지 힘주어 말했다.
“물속으로 들어가서 입구를 찾아야 할 거 같아.”
대간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집 잃은 박쥐들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지하 동굴이 물에 잠겨서 박쥐들도 갈 곳이 없어 보였다. 잔나비가 부리막대를 이용해 분신을 만들었다. 분신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잔나비가 눈을 감고 분신의 움직임을 살폈다.
“물이 탁해서 앞이 전혀 안 보여요. 푸르미르가 있는 곳은 어디죠?”
잔나비가 분신의 이동 경로를 보면서 말했다.
“해석한 내용은 ‘물은 구불거리는 뱀처럼 휘어 흘러 커다란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여러 개의 불빛들이 멈춰 있다가 빠르게 움직인다. 커다랗게 벌려진 입 사이로 뾰족한 이빨이 불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푸른빛들이 모이는 곳에 편안히 쉬고 있다’라고 되어 있어요. 구불거리는 강줄기를 따라 가면 커다란 방이 있어요. 오기 전에 이 강의 내부를 살펴봤는데 120㎡ 넓이의 큰 석실이 있었어요. 그리고 여러 개의 불빛은 박쥐의 눈을 말하는 것이고, 뾰족한 이빨이라는 것은 종유석과 석순을 의미하는 겁니다. 따라서 석실 내부에 종유석과 석순이 있고, 그곳들 중 푸른빛들이 모이는 곳이 푸르미르가 있는 곳이죠.”
강태석 소장이 말했다. 잔나비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분신의 이동을 파악했다.
“이제 좀 보여요. 지하 강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여기서 한 1km까지 물이 차 있네요.”
어둠 속에서 잔나비 분신은 물줄기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종유석과 석순들이 여기저기 부러져 있어서 쓰나미 피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천장 위쪽에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박쥐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커다란 석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강줄기는 점점 폭이 좁아졌다.
잔나비 분신의 눈빛에 놀란 박쥐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동굴에서 박쥐들의 날개 짓마저 없었다면 동굴은 적막 그 자체였을 것이다. 동굴 통로는 점점 좁아졌다. 길게 늘어진 종유석과 석순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것도 힘들었다. 통로는 더욱 좁아져 이제는 한 명 정도가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강물의 흐름이 위로 올라갈수록 더 빨라졌다. 물줄기의 소리도 크게 들렸다.
물에서 나와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미끈거리는 종유석과 석순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올라갔다. 가늘고 빠르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뚫고 오르자 거대한 넓이의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연못 주변 한쪽에는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부리막대 상자에 나오는 곳이 이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석실 주변에 종유석과 석순이 함께 있는 곳을 찾았다. 평평한 평지와 수면 위로 종유석들이 보였다. 하지만 석순은 보이지 않았다.
잔나비 분신이 갑자기 자리에서 멈춰 섰다. 얼어붙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었다. 희미한 연기가 그 주변을 감싸더니 온기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윽고 대간, 매디, 강태석 소장과 하람까지 석실 안 평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잔나비 분신은 잔나비가 되어 있었다.
“석순이 안 보이는 데요?”
하람이 컴컴한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하람의 눈에서 빛이 났다. 강태석 소장도 손전등을 비춰가며 석실 주변의 석순을 찾았다. 하지만 해석한 내용과 달리 석순은 보이지 않았다.
“더 안쪽에 있는 건 아닐까요?”
잔나비가 석실 끝 쪽에 뚫려 있는 통로를 보며 말했다. 푸에르토 프린세사에는 석실이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강태석 소장은 이곳에 푸르미르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손전등으로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강물은 잔잔했다. 손전등에 비친 강물은 반사되어 거울을 보는 듯했다. 그는 동굴 천장과 강물을 번갈아 비추며 빠르게 살폈다.
“이곳이 맞아요!”
그의 목소리가 석실 전체에 울려 퍼지면서 공명처럼 메아리쳤다. 그 때문에 박쥐들이 놀라 푸드덕 거리며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저기 종유석들을 보세요. 그리고 이 강물에 비치는 것을 보세요.”
모두들 동굴 천장에 있는 종유석과 그리고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에 비치는 것은 바로 종유석이었다.
“해석한 내용은 아래에 석순이 아니라 강물에 비치는 종유석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렇게 강물을 비추면 강물은 푸른빛을 띠고 있죠.”
“그렇다면 저 아래에 푸르미르가 있다는 건가요?”
대간이 물었다.
“그렇죠.”
대간이 부리막대 상자를 들고 종유석과 강물에 비치는 종유석 사이로 가서 주문을 외웠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강물 속에서 밝은 빛이 나타났다. 남아있던 박쥐들이 재빠르게 동굴 통로 쪽으로 빠져나갔다. 석실 전체가 밝은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강물이 흩어지며 물속에서 푸르미르가 나타났다.
푸르미르는 파란 머리카락에 얼굴은 흰색이고, 눈은 컸으며 노란색을 띠고 있었고, 콧수염이 양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키는 대간만큼 컸다. 석실 안을 가득 채웠던 밝은 빛은 사라지고 예전처럼 컴컴해졌다. 푸르미르가 모두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푸르미르는 밝게 웃으며 대간, 매디, 그리고 잔나비와 인사를 나눴다. 대간이 푸르미르에게 부리막대 상자를 건넸다.
부리막대 상자는 푸르미르의 손에 올려 지자 동그란 구슬로 변했다. 강태석 소장은 그 광경을 보고 아무 말도 못했다. 부리막대 상자가 여의주였던 것이다. 푸르미르는 구슬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지구방위기사단이 다 모인 거네요?”
하람이 밝게 웃었다. 푸르미르가 하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강태석 소장을 보며 대간을 바라봤다.
“아, 이분은 우리를 도와준 강태석 소장이야.”
대간이 푸르미르에게 강태석 소장을 소개하였다. 푸르미르가 놀란 눈으로 대간을 바라봤다.
“이분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 모일 수가 없었어. 그리고 지금은 다이몬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지 우리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우선은 아니잖아.”
매디가 대간을 대신해 말했다.
“인간이 우리의 존재를 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이후부터는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해.”
푸르미르가 강태석 소장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당신들만으로는 다이몬을 물리칠 수 없어요.”
“우리?”
강태석 소장의 말에 푸르미르가 험악해진 얼굴로 대간을 보았다.
“몇 사람이 더 도와줬어. 우리가 다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어.”
대간이 푸르미르에게 말했다.
“여기서 이 문제로 옥신각신할 겨를이 없어요. 다른 지구방위기사들은 푸른악령들과 싸우러 갔는데 우리도 빨리 그들을 도와야 해요.”
하람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람 말이 맞아. 우리끼리 뭐가 옳고 그른 것을 따질 때가 아니야. 지금 중요한 것은 다이몬의 출현을 막는 게 우선이야. 그다음에 가온누리님의 처분을 따르면 돼.”
잔나비가 거들었다.
“그럼 이 문제는 일을 모두 마무리 지은 다음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해. 우선 다른 지구방위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가자.”
푸르미르가 말했다.
“매디, 준비됐어?”
대간의 말에 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님, 괜찮겠어요? 이번에는 더 멀리 이동을 해서 더 힘들 겁니다.”
매디가 강태석 소장의 안색을 살폈다.
“네, 괜찮습니다.”
강태석 소장이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푸르미르도 전사로 변했다. 피부색은 파란색으로 변했으며, 눈은 더 커졌고 코 평수도 늘어났다. 머리에는 작은 사슴뿔이 솟았다. 비늘 갑옷이 그의 몸에 입혀졌다. 발톱은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으로 변해서 작은 칼을 연상시켰다. 부리막대는 철퇴 모양으로 변했으며 그 끝에 여의주가 달려 있었다. 지구방위기사단과 하람이 강태석 소장을 둘러쌌다. 매디가 부리막대를 꺼내 주문을 외웠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갑자기 사라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