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곳

by 미운오리새끼 민

다른 지구방위기사단은 아우얀 테푸이 근처에 도착했다. 멀리서 바라보는데도 아우얀 테푸이의 웅장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깎아지른 절벽은 그 어느 누구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듯 보였다. 앙헬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안개가 되어 주변 시야를 가렸다. 그들은 천천히 악마의 계곡으로 걸어갔다.

“이곳에 푸른악령들이 있는 게 맞아?”
백호가 천천히 숲을 헤치며 말했다.
“이곳에서 악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어. 그런데 너무 많아서 그게 푸른악령인지 잘 모르겠어. 일단,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보자.”

이든은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주변을 살폈다. 악마의 계곡 주변답게 악령의 기운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전사의 몸으로 다져진 지구방위기사단이었지만, 그들조차도 악령의 기운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여기에 푸른악령들만 있는 것이 아니니 다들 조심해.”

토리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숲이 햇빛을 다 머금고 있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앙헬 폭포에서 내려온 물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지구방위기사단의 눈에 빛이 났다. 숲에는 융단처럼 자주색 풀이 평탄하게 깔려 있었다. 숲 안에 펼쳐진 평평한 지대는 포근한 침대처럼 느껴졌다. 그 위에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 운치를 더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면 안 될까?”
솔찬이 힘겨운 듯 아랫배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든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솔찬이 자주색 풀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랫동안 영면해 있어서 몸도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고, 장시간 이동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눈꺼풀이 한없이 내려왔다. 그때 갑자기 넓게 펼쳐진 풀이 오므라들면서 솔찬을 삼켰다. 모두들 놀라서 솔찬을 구하려 했다. 그러자 그 주위의 모든 식물들이 지구방위기사단을 덮쳤다.

“피해! 식인 식물이야.”
백호가 풀을 가르며 말했다. 풀들이 길게 늘어났다. 풀이 이든의 몸을 감쌌다. 이든이 발버둥을 쳤지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알찬이 나서서 이든을 감싸고 있는 풀을 한 번에 끊었다. 악도리가 긴 몸을 이용하여 줄기를 감싸고 돌아 자주색 풀의 중앙으로 달려들었다. 자주색 풀의 중앙에는 붉은색 입이 촉수와 함께 벌려 있었다.

악도리도 입을 크게 벌리고 블로우건으로 촉수를 항해 침을 쐈다. 누가 누구를 잡아먹으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악도리가 촉수를 뚫고 자주색 풀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리는 강한 빛을 내뿜으며 촉수를 자극했다. 어둠에 익숙한 풀들이 곧 시들었다. 그 사이를 토리가 지나가면서 촉수를 끊어 버렸다.

솔찬을 삼킨 풀이 심한 요동을 쳤다. 그리고 풀이 죽은 듯 축 쳐져서 내려앉았다. 중앙이 뚫리면서 솔찬이 그 속을 헤집고 나왔다. 백호는 줄기들을 자르며 촉수를 공격했다. 갑자기 자주색 풀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초록 이끼가 낀 바닥이 보였다. 백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다들 무사해? 솔찬은 어디 있어?”
“난, 여기 있지.”
솔찬이 큰 배를 만지며 말했다.
“그 사이에게 그것도 먹고 있었니?”
악도리가 솔찬의 입을 보며 말했다.
“다들 조심해. 이곳은 푸른악령의 아지트라는 걸 명심해!”
도담이 말했다.
“잠깐! 기다려봐. 뭔가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어.”
이든이 귀를 쫑긋 세웠다. 앞쪽의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수리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이든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땅이 진동했다. 함성 소리가 들렸다.
“다들 싸울 준비 해.”
알찬이 나서며 말했다.

그리고 숲의 나무들을 잘라냈다. 숲이 사라지면서 어둠이 조금 걷혔다. 안개 너머로 검은 물체가 빠르게 오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저게 뭐지?”
솔찬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점점 그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됐다.
“병사들과 기마부대야!”
수리가 말했다.

수많은 무리의 병사들이 지구방위기사단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으며, 몸 전체가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말들도 검은색이었으며, 그런 말들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기마부대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달려오던 병사들이 좌우로 흩어졌다. 길쭉한 방패 뒤로 병사들이 일렬로 도열했다.

“저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어.”
도담이 좌우를 살피며 말했다. 앞에는 기마부대가 길게 늘어섰으며 좌우에는 검은병사들이 줄지어 도열했다. 또한 기마부대 뒤에는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북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포진해 있었고, 그 뒤로 검은 복면을 눌러쓴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북소리에 맞춰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장은 좌우를 살피며 도열해 있는 병사들의 군진을 살폈다. 좌우의 병사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돌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악령들이 어디서 저 많은 병사들을 구해온 거지?”
토리가 백호 옆에 붙어서 말했다.
“수적으로 많다고 하지만 일개 병사들이야. 우리 상대는 아니야.”
악도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 해 볼까?”

알찬이 초승달 모양의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나머지 지구방위기사들도 반원 모양으로 대오를 정비했다. 북소리가 한번 울렸다. 방패를 든 앞줄의 병사들이 앉았다. 뒤에 숨어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어 하늘 높이 활시위를 당겼다. 북소리가 한 번 더 울리자 양쪽에서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지구방위기사단은 뒤로 물러서며 화살을 피했다.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에는 화살 무덤이 생겼다. 한 번 더 북소리가 울렸다. 궁수들이 화살을 꺼내 활시위를 당겼다. 북이 또 울리자 화살비가 내렸다. 지구방위기사단은 다시 뒤로 물러섰다.

“이대로 계속 물러서기만 할 거야?”
악도리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봐.”
백호가 적의 진지를 살피며 말했다. 반달 원처럼 되어 있던 적의 진영이 기마부대를 중심으로 삼각 꼭짓점 모형으로 변했다.

“솔찬, 저 화살 좀 치워봐?”
수리가 무덤처럼 쌓여 있는 화살을 보며 말했다. 솔찬이 창을 휘젓자 화살들이 날아가 보병부대와 기마부대 위로 쏟아졌다. 그들은 방패로 하늘을 가려서 쏟아지는 화살들을 피했다. 화살 무덤이 있었던 중앙은 어느새 텅 비었다. 이번에는 북소리가 두 번 울렸다. 좌우에 있던 보병부대 병사들이 방패를 앞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악도리가 앞으로 나가려는 것을 백호가 잡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우린 아직 저들을 몰라. 그러니 먼저 덤비는 것은 위험해. 저들도 우리를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덤비지 못하고 있는 거야.”
악도리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보병부대는 천천히 한 걸음씩 방패를 앞세워서 지구방위기사단을 좁혀왔다. 기마부대도 천천히 보병부대의 걸음걸이에 맞춰 움직였다. 어느새 보병부대가 지구방위기사단 코앞까지 다가왔다.

“너무 가까이 오기 전에 공격해야 해. 안 그러면 우리가 불리해!”
알찬이 백호에게 말했다.
“모두 좌우로 공격, 솔찬과 토리는 기마부대를 맡아!”
알찬이 먼저 치고 나갔다. 뒤를 이어 백호와 악바리, 이든이 좌측의 보병부대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알찬, 도담, 수리가 우측의 보병부대를 공격했다.

다가오던 보병부대가 멈추더니 긴 창을 가진 병사들이 방패 사이로 창끝을 내밀었다. 지구방위기사단은 창끝을 피하기 위해 멈췄다. 하마터면 창끝에 백호의 눈이 찔릴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방패를 쥔 병사들이 순식간에 지구방위기사단을 에워쌌다.
“함정이야. 어서 여길 뚫고 나가!”
뒤에 있던 토리가 소리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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