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부활하는 푸른악령들

by 미운오리새끼 민

지구방위기사단 일행은 악마의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앙헬 폭포에서 물이 쏟아졌지만, 바닥에는 이슬이 되어서 분무기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그 위로 무지개가 선명하게 보였다. 폭포 주변으로 바람이 불 때면 이슬은 굵은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푸른악령들의 위치는 확인됐나요?”
“김찬민 부장 말로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다고 하네요.”
대간의 물음에 강태석 소장이 통화한 내용을 말했다.
“두더지도 아니고 땅 속에서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떨어지는 이슬을 맞으며 잔나비가 말했다.
“저 위로 올라가 보자.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거야.”
이든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아우얀 테푸이를 보며 말했다. 새 한 마리가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
“저 꼭대기까지 올라간다고?”

솔찬이 끝도 보이지 않는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이든이 먼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나머지 지구방위기사단과 하람도 산 정상을 향해 올랐다. 마지막으로 매디가 강태석 소장을 안고 올라갔다. 강태석 소장은 눈을 꼭 감고 의식적으로 매디의 몸을 꽉 잡았다.

산 정상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나무들과 그 주변을 흐르는 물줄기까지 이곳이 산 정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산 아래로 얕은 구름이 보였다. 신선의 나라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초현실적인 풍경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이든이 앞장섰다.

모두들 이든을 따라 악마의 계곡 쪽으로 이동했다. 군데군데 수직으로 깊게 파인 틈들이 보였다. 고대의 지진활동과 수백 만 년의 침식으로 인해 주름 잡히고 갈라져서 생긴 가파른 절벽들이었다. 그것은 빙하나 눈 골짜기에 있는 크레바스를 연상시켰다.

솔찬이 이끼가 낀 바닥에서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바람에 옆에서 걷던 강태석 소장이 떨어질 뻔했다. 매디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절벽 아래로 돌이 떨어졌는데 그 소리조차 먹어버린 듯했다. 강태석 소장이 솔찬 옆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오금이 저렸다.

“왜 악마의 계곡이라고 하는지 알겠군요.”
“조심하세요. 여기서 떨어지면 살아 돌아올 수 없어요.”
이든이 뒤를 보며 말했다. 솔찬이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악마의 계곡 근처에 다다르자 수직으로 된 절벽의 크기도 더 커졌다.

“이 아래에 푸른악령들이 있어.”
이든이 절벽 아래를 가리켰다.
“저 아래까지 어떻게 내려가지? 이곳은 땅으로부터 2,500m가 넘어. 그리고 푸른악령들은 그 보다 더 아래인 지하 깊은 곳에 있어.”
토리가 말했다.
“잔나비 분신을 먼저 아래로 내려 보내면 어떨까?”

수리가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잔나비에게 쏠렸다. 잔나비가 고개를 내밀어 끝도 알 수 없는 절벽 아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분신을 절벽 아래로 내려 보냈다. 저 멀리 탁상형 산 쪽으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아우얀 테푸이 같은 산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다. 노을과 어우러져 비치는 맞은편 산들은 성냥개비를 꽂아 놓은 듯 벌겋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런 바위산들이 이곳의 풍경을 지배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공기도 차가워졌다.

잔나비 분신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곳을 계속해서 내려갔다. 사방 위아래가 모두 컴컴한 암흑이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 내려가는 거 자체가 의미 없이 느껴지는 순간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했다. 바닥에 닿는 느낌이 났다. 촉촉한 느낌이 습기가 가득했다. 주변은 여전히 컴컴했다. 서늘한 바람이 안쪽에서 불어왔다. 동굴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까지 내려갔는데 암흑천지고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들려.”
잔나비가 분신을 통해 본 내용을 설명했다.
“우리도 내려가 보자.”
푸르미르가 말했다.
“소장님, 하람하고 여기 있어요.”
“우리 둘만 여기 있으라고요?”
대간의 말에 강태석 소장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따라가는 것도 무섭긴 하지만, 여기 있는 것은 더 무서워요.”
하람도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저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 특히 푸른악령들과 싸움이 벌어진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
대간이 하람을 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겠죠.”
강태석 소장이 말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빨리 가자.”

악도리가 먼저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 나머지 지구방위기사들도 뒤따라 내려갔다. 대간이 강태석 소장을 안고 내려갔다.

바닥에 내려앉은 지구방위기사단의 눈과 하람의 눈에서 빛이 났다. 강태석 소장은 손전등으로 안을 살폈다. 모두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걸어갔다. 동굴은 한 사람이 움직이기에도 비좁았다. 한참을 이동하자 조금 넓은 공간이 나왔다. 길은 거기서 멈춰 있었다. 주변을 살피는데 이든이 디디고 있는 바닥 아래쪽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든이 손으로 두드리자 빈 소리가 났다. 알찬이 커다란 석판을 들자 아래에 넓은 지하 통로가 있었다. 아래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모두 숨죽인 채 이든이 손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이번에는 백호가 앞장서 내려갔다. 통로는 조금 넓어져서 수월하게 이동 했다. 앞쪽에서 웅얼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든이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를 들었다. 그때 지구방위기사단 앞에 시뻘건 두꺼비 떼들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아우얀 테푸이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변종 두꺼비였다. 하지만 지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두꺼비들은 몸집도 훨씬 컸으며 곧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려고 했다. 두꺼비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독을 뿜어낼 것 같았다.

“뭐야, 두꺼비 때문에 오도 가도 못 하는 거야?”
두꺼비 천적답게 악도리가 나섰다. 곧 달려들 것 같던 두꺼비들도 악도리가 나타나자 긴장한 듯 멈칫거렸다. 그때 한쪽 구석에 있던 두꺼비가 독을 뿜으며 악도리에게 달려들었다. 악도리가 독을 피하며 블로우건을 쏴 두꺼비를 제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러 마리의 두꺼비들이 한꺼번에 덤볐다.

다른 지구방위기사들도 다 같이 싸움에 끼어들었다. 하람과 강태석 소장은 뒤에서 이를 지켜봤다. 한꺼번에 여러 무리가 뒤엉키는 바람에 비좁은 통로가 꽉 막혀 버렸다. 두꺼비들이 워낙 많아 해치워도 끝이 안 보였다. 그때 수리가 양 날개의 칼끝에서 밝은 빛을 내뿜었다. 순간 통로가 대낮보다 더 밝아졌다. 두꺼비들이 밝은 빛에 놀라 달아났다. 일부 두꺼비는 강한 빛에 매끈거리는 피부가 타버렸다.

“푸른악령들이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아챘을 거야. 빨리 뒤쫓아 가야 해.”
이번에는 알찬이 앞장서며 말했다. 통로는 계속 아래로 향해 있었다. 통로의 폭이 좀 넓어졌다. 조금 더 가자 벽으로 통로가 막혀 있었다. 알찬이 강한 어깨를 이용하여 벽을 부수려 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알찬이 못 뚫는 벽도 있어?”
토리가 놀라며 물었다. 알찬은 토리를 힐끗 보고 나서 힘을 모아 벽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때 벽 뒤에 있던 병사들이 창을 던졌다.
“모두 피해!”

알찬과 함께 맨 앞에 있던 토리가 시간을 재빨리 정지시켰다. 알찬의 눈앞에까지 날아왔던 창들이 그대로 정지되었다. 토리가 멈춰 선 창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시간을 다시 진행시켰다. 이번엔 대간이 나서서 보호막을 쳤다. 궁수부대가 쉴 새 없이 화살을 쏘았지만 보호막에 튕겨져 나갔다. 병사들은 방패를 앞에 놓고 긴 창을 튀어나오게 한 후 통로를 막았다.

“좁은 통로라 저들을 상대하는데 한계가 있어.”
솔찬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뒤쪽에 좀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리로 저들을 유인하면 어떨까?”
잔나비가 말했다. 지구방위기사단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병사들은 바닥에 고정된 듯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우리의 작전을 눈치 챈 건가?”
도담이 한숨을 쉬며 앞쪽을 주시했다.
“저들은 시간을 끌고 있는 거야.”
“시간을 끌어서 어쩌자는 건데?”
백호의 말에 솔찬이 물었다.
“푸른악령들이 깨어날 시간을 벌어주는 거지.”
이든이 병사들 뒤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저 뒤에 푸른악령들이 있다는 거야?”
수리가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쭉 뺀 상태에서 앞을 보았다. 병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자신들의 안식처에 온 푸른악령들은 재단을 중심으로 그 앞에 길게 석상들을 세웠다. 재단 위에는 타원형의 긴 구체가 빛을 내며 약간 떠서 천천히 돌고 있었다. 내부는 벌집처럼 촘촘히 얽혀 있었다.

재단 뒤에는 뜨거운 용암이 꿈틀거렸다. 검은 망토를 두른 푸른악령들이 각자의 석상 앞에서 주술을 외웠다. 그 뒤로는 하몬들과 병사들, 기마부대, 마차부대가 있었다. 푸른악령들의 푸른 눈만 보이고 손과 발은 보이지 않았다. 망토를 걸치고 있어서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느린 저음의 북소리가 스타카토 형태로 딱딱 끊어지며 소리를 내었고, 푸른악령들은 그 북소리에 맞추어 악마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북소리와 노랫소리가 함께 뒤섞여 지하 동굴 내부에 공명처럼 울려 퍼졌다. 그들이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망토의 흔들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가운데 푸른악령이 노래를 부르면 나머지 푸른악령들이 다 같이 따라 불렀다. 뒤에 줄지어 서 있는 부하들도 북소리에 맞추어 이 세상과 상관없는 소리들을 내고 있었다. 재단 위에 있는 구체에서 푸른빛이 났다.

푸른악령들의 몸이 더 크게 흔들렸다. 주술에 이끌린 듯 병사들도 창을 위아래로 내리쳤다. 동굴 안의 공명이 더 커졌다. 재단 뒤의 용암도 크게 출렁거렸다. 금방이라도 재단과 동굴 안이 용암으로 뒤 덮일 듯 넘실댔다. 구체에서 푸른빛이 석상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푸른악령들의 눈에서도 푸른빛이 석상에 있는 자신들의 눈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푸른악령들의 모자는 벗겨져 스물네 개의 푸른빛이 각각의 석상을 향해 일렬로 이어졌다. 석상에서 하얀 연기가 나왔다. 그것은 푸른 빛줄기를 따라 푸른악령들의 영혼으로 옮겨갔다. 푸른 눈동자에 연기가 다다르자 희미하게 푸른악령들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눈동자만 있었던 것이 얼굴 형체를 하고 손과 다리와 발 그리고 긴 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은 푸른 바탕에 검은색 눈동자를 하였으며, 눈과 코 사이로 깊게 페인 주름이 보였다.

전체적인 몸 색깔은 검은색에 회색의 털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 망토는 벗겨지고 푸른악령들의 모습은 석상에 새겨진 모습 그대로 그 형체가 되살아났다. 노래와 북소리가 순간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다시 북소리가 더 빠르게 울렸다. 구체에서 마지막으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고, 용암은 뿜어져 땅 속을 뚫고 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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