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대륙은 컴컴한 새벽이었다. 군데군데 불빛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지구방위기사단의 눈이 밝게 빛났다.
“불빛도 많고 듬성듬성 있어서 한 번에 옮기는 게 쉽지 않아.”
매디가 하늘 위에서 무 대륙에 펼쳐져 있는 불빛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사람들을 대피시키면 푸른악령들이 공격할 수 도 있어. 그전에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대피시켜야 해.”
“푸른악령의 공격도 피하면서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방법이 뭘까?”
이든의 말에 솔찬이 곰곰이 생각했다.
“지난번에 매디가 잔나비 분신을 활용해서 우리를 찾았던 것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해서 대피시키면 어떨까?”
도담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된 건가?”
악도리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구조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구조할 수는 없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떡해?”
토리가 고민에 빠진 대간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우리가 보이는 곳으로 나오도록 해야지.”
“그니까, 그 방법이 뭔데?”
매디의 말에 토리가 다시 물었다.
“수리가 강한 빛을 내뿜으면 그 빛으로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거야. 그때 잔나비 분신들이 사람들을 찾아 이동시키는 거지. 매디는 잔나비들이 한꺼번에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면 돼. 어때 간단하지?”
모두 백호의 말에 동의했다.
“사람들을 어디에 데려다 놓지?”
“모두 한 곳에 모아 놓자.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어디지?”
매디의 말에 알찬이 대답하며 다시 지구방위기사단에게 되물었다.
“운동장 어때? 거기는 수 만 명을 수용할 수 있잖아.”
토리가 빠르게 대답했다.
“가장 가까운 운동장이 어디지?”
“소장님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하람에게 빨리 연락해봐.”
백호의 말에 대간이 하람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리고 곧 답이 왔다.
“미국이 가장 가까운데 해안가 지역은 다 침수가 돼서 그쪽 시설은 활용할 수 없데.”
“그럼, 어디로 하지?”
“잠시만.”
백호의 말에 대간이 다시 말했다.
“미국 덴버에 있는 야구장이 해발 1,600m 높이에 있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충분히 수용할 수 있데. 그곳의 위치와 사진을 보내줬어.”
“목적지를 그곳으로 하고 잔나비, 분신들을 무 대륙 전체로 흩어 보내줘. 되도록 많을수록 좋아.”
“알았어. 많을수록 좋다는 거지?”
백호의 말에 잔나비가 대답했다. 잔나비가 수백 명의 분신을 만들어 냈다. 그들이 무 대륙 곳곳으로 펴져가는 모습은 컴컴한 밤인데도 새의 군무를 연상케 했다.
“다 자리 잡았으면 말해줘.”
백호의 말에 잔나비가 오케이 사인을 냈다.
“수리! 지금이야. 빛을 뿜어 봐!”
수리가 강한 빛을 내뿜자 무 대륙 전체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잔나비 분신들이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갑자기 환한 불빛에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다. 잔나비 분신들은 그들을 안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조금 전까지 연구에 몰두하던 곳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잔나비 분신을 적으로 착각해서 공격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에 익숙한 듯 잔나비 분신들은 사람들을 그룹 형태로 모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리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매디, 다 됐어.”
잔나비의 말에 매디가 주문을 외웠다. 그룹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잔나비 분신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조사 발굴을 위해 켜 두었던 랜턴 불빛들만 있었다. 그때 멀리서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사람들이 남아 있나?”
알찬이 어둠 속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건, 푸른악령의 부하들이야.”
수리가 어둠 속에서 비추는 희미한 실루엣의 그림자들을 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사라지니 나타나는 군.”
“이제 제대로 한 판 붙어 보자.”
잔나비가 언제 왔는지 몸을 풀고 있는 악도리 옆에서 말했다.
“사람들의 기억은 다 삭제한 거지?”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대간의 말에 잔나비가 웃으며 말했다.
“자, 모두들 준비해.”
푸르미르의 말에 모두 일렬로 늘어섰다. 어둠 속에 더 어두컴컴한 무리들이 어둠을 몰고 오는 듯했다. 점점 검은 무리들의 모습이 보였다. 병마용 군사와 기마부대, 마차부대가 구름처럼 몰려왔다.
“지난번처럼 방심하지 마.”
토리가 지구방위기사단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주변에 긴장감이 흘렀다.
“우리도 뭔가 수적으로 있어 보여야 하지 않을까?”
잔나비가 백호를 보며 말했다. 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잔나비가 주문을 외워 분신들로 숫자를 채웠다. 어느새 다이몬의 군사와 대등한 숫자가 되었다. 전력질주로 달려오던 다이몬의 군사들도 그 모습에 잠시 주춤했다.
“이때야, 전원 공격!”
학익진 공격을 연상시키듯 반원으로 감싼 잔나비 분신들이 양쪽 옆에서 병사들을 공격했다. 지구방위기사단이 중앙을 가르며 병사들을 양쪽으로 갈라놓았다. 양쪽으로 포위된 병사들은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어둠 속에서 사라져 가는 그들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뒤따라오던 기마부대와 마차부대가 당황한 듯 우왕좌왕했다. 마차 위에는 하몬들이 있을 뿐 푸른악령은 없었다.
“푸른악령들이 보이지 않아! 왜 졸개들만 내보낸 거지?”
중앙을 휘젓고 다니던 백호가 말했다.
“우리가 당했어. 다이몬과 푸른악령들이 시간 끌기 전략을 쓰고 있어.”
이든이 기마부대 앞쪽까지 달려가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해가 뜰 때까지 우리를 여기에 묶어 두려는 거지.”
백호의 질문에 이든이 다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여기는 잔나비 분신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다이몬의 근거지로 가야 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백호의 말에 대간이 말했다.
“잔나비! 네가 남아서 여기는 정리해줘.”
“알았어. 여긴 나 혼자서도 충분해. 어서들 가봐.”
“빨리 끝내고 와야 해!”
잔나비는 대간과 말이 끝나자 더 많은 분신들을 만들어 냈다. 지구방위기사단이 중앙을 뚫고 앞으로 나가자 하몬이 길을 막았다. 마차 위에서 하몬들이 지구방위기사단을 공격했다. 하몬의 칼이 지구방위기사단을 위협했다. 악도리의 독침이 하몬을 향해 날아갔으나 뜻 밖에도 말의 목에 맞았다. 그러자 말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달리던 마차가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쳤다. 그 때문에 마차에 타고 있던 하몬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푸르미르의 철퇴가 하몬의 등을 내리쳤다. 하몬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하몬 말고 말들을 공격해!”
악도리가 말했다. 모두들 말들을 공격했다. 지구방위기사단의 공격에 말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자 마차들끼리 서로 뒤엉키고 마차에서 튕겨져 나가는 하몬들이 많았다. 지구방위기사단이 차례로 하몬을 공격했다. 하몬들은 변칙적인 공격에 당해 새벽이슬과 함께 사라졌다. 얼마 남지 않은 하몬들이 뒤로 물러서며 달아났다.
“하몬의 뒤를 쫓아! 그들의 은신처로 달아날 거야.”
지구방위기사단은 잔나비를 빼고 모두 하몬의 뒤를 쫓았다. 달아나는 하몬의 모습을 본 병사들과 기마부대는 수장을 잃은 군대처럼 우왕좌왕했다. 전세는 어느덧 잔나비 분신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지휘관이 없어 혼란스러울 뿐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끈질긴 놈들이네.”
잔나비는 병사들의 마지막 저항에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진시황의 군사답게 끝까지 용맹했다.
‘영혼 없는 무리들······.’
잔나비는 그들이 전쟁이 있는 곳에 전쟁을 위해 바쳐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어둠은 많이 걷혔다.
‘새벽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해.’
잔나비가 표창을 던졌다. 표창은 병사들을 향해 날아가 그들의 급소를 공격하자 소리 없이 사라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