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호자

5.

by 미운오리새끼 민

정수는 아침부터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아침 준비 하고 계시는 구나.’

정수는 이불속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뉴스는 온통 우울한 얘기뿐이었다.

‘세상에 이리도 즐거운 일이 없나?’

정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거 같지만 지나고 나면 어느새 저 멀리 가 있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 중환자실에서만 한 달이 흘렀다. 주변의 모든 일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온 듯 평온해 보였지만 정수와 아버지의 일상은 한달 전에 멈춰 있었다.

‘잊혀진다는 것이 ……. 뒤죽박죽 얽히더라도 세상은 그렇게 자기자리를 찾아서 가고 있구나.’

여전히 주방 쪽에서는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토요일이라 늦장을 부려도 될 만한데 어머니의 시계는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도 제자리를 찾아 가실까? 나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맞춰 정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갔다. 대기실 문이 열리고 한명씩 호명하는 사람들이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를 한 채 중환자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수는 대기실 입구에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면회시간 10분을 꽉 채워서 나오셨다. 연신 눈물을 흠치고 계시는 모습이 많이도 울었던 거 같다. 정수는 문 앞에서 어머니를 감싸 안고 대기실로 이동하여 의자에 앉았다. 한동안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닦고 있었다. 정수는 그냥 묵묵히 어머니의 그런 행동을 바라만 봤다.

“정수야, 합병증이 심해져서 병실에는 가지도 못한다는데 어쩌냐?”

“아버지가 알아보세요?”

“불러도 못 알아 듣는 지 가만히 있더라. 밥은 먹는지 …….”

정수는 말없이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창수의 말이 정수의 귀에 맴돌았다.

‘지금은 다른 것 보다 합병증이 더 위험할 수 있어. 중환자실에서 격리 상태에 있는 거면 괜찮을 듯싶어.’

정수는 어머니를 모시고 천천히 일어났다.

“할머니!”

소진이가 현관 문 앞에서 할머니에게 와서 안겼다. 뒤따라 덕자도 나와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시험공부는 잘하고 있니? 우리 새끼 얼굴이 반쪽이 됐네. 힘들지?”

“네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소진이가 웃으며 할머니를 모시고 거실 소파로 갔다.

“엄마는?”

“진혁이랑 마트 갔어요?”

덕자는 할머니 마음을 아는지 할머니 다리를 붙들고 안아달라고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덕자 많이 컸네.”

할머니가 웃으며 허리를 구부려 덕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덕자가 일어서서 할머니 얼굴을 핥아 댔다.

“넌, 어여 가서 공부해.”

“괜찮아요. 잠시 머리 좀 식히려고 했어요.”

소진이가 살갑게 어머니 옆에 앉아서 말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소진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정수의 아내와 진혁이가 들어왔다. 덕자가 부리나케 진혁이에게 달려갔다. 진혁이는 덕자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 할머니에게로 갔다.

“할머니.”

“우리 둘째 강아지 왔네. 잘 있었어?”

어머니는 진혁이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진혁이를 안았다.

“할머니 안 아프지? 아프면 안 돼!”

“너를 봐서라도 오래 살아야 하는데 …….”

어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 오셨어요?”

정수의 아내가 두 손에 장을 본 물건을 든 채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응, 잘 있었니?”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정수가 아내의 짐을 들으면서 말했다.

“어머니도 오신다고 하고 우리도 먹을 거사고 그러다 보니 많아졌네. 아버님은 좀 어떠셔?”

“똑같으셔.”

정수는 장 본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서 냉장고에 넣기 시작했다.

진혁이는 할머니하고 잠깐 소파에 앉았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소진이도 할머니가 공부하라는 성화에 마지못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쇼파에는 덕자와 어머니 둘만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시선은 TV를 고정하고 있었다. 주방에서 정수는 그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안가겠다고 하여 정수는 진혁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대기실에 사람들이 더 붐볐다.

“진혁아, 할아버지 만나면 힘내시라고 빨리 나아서 밖에서 보자고 해. 알았지?”

정수는 진혁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알았어, 내가 뭐 애 인줄 알아?”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한사람씩 환자 이름이 호명되었다. 정수는 진혁이를 먼저 들여보냈다. 그런데 들어간 지 2분도 되지 않아 진혁이가 나왔다.

“아빠 들어가.”

진혁이가 아무일 없다는 듯이 평온하게 말했다.

“너 왜 벌써 나와?”

“할아버지랑 얘기 다 했어.”

정수는 급한 마음에 서둘러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진혁이는 뭐 하러 이런 곳에 데리고 와?”

“아버지 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아파, 힘들어.”

아버지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잘 견뎌내시고 있어요. 빨리 나와서 진혁이도 보고 소진이도 보고, 은진이 은혁이도 봐야죠.”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정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소진이가 아버지 보여 드리라고 해서 찍어 왔어요.”

아버지는 다시 얼굴을 돌려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못 찾아가서 죄송해요. 그래도 할아버지 사랑하는 맘 알죠? 저 대학교 합격하는 거 보셔야 해요. 알겠죠?’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동영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 ‘그래’란 말을 계속 하였다. 면회시간 종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아버지 잘 계세요. 내일 또 올게요.”

“오지 마. 안와도 돼.”

아버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정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무겁게 중환자실을 나왔다. 그리고 뒤를 자꾸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을 빠져 나가는 사람들에게 어깨를 부딪치고 나서야 정수는 중환자실을 나왔다. 진혁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정수는 천천히 다가가 진혁에게 물었다.

“할아버지에게 잘 말했어?”

“응.”

진혁은 핸드폰을 보면서 말했다.

“뭐라고 했니?”

“할아버지 빨리 나아서 할아버지 집에서 보자고 했지. 나보고 할아버지가 웃었어.”

진혁은 여전히 핸드폰을 보면서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

“할아버지가 빨리 가라고 해서.”

정수는 무슨 말을 하려다 그냥 말았다. 아직 중학생인 진혁이가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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