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호자

4.

by 미운오리새끼 민

“아버지 상태가 안 좋으신 거야?”

창수가 정수의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물었다.

“응 상황이 더 안 좋게 흘러가는 거 같아.”

정수는 창수가 따라준 술을 한 번에 목에 털어 냈다. 정수의 인상이 찡그러졌다. 목이 타는 느낌이 들었다. 창수는 정수의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어머니는 어떠시니?”

창수도 한잔 털어내며 물었다. 이번에는 정수가 창수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나마 버티고 계시고 있긴 한데, 지금은 어머니가 더 걱정이야. 저러다 어머니가 먼저 갈 거 같아.”

“뭔 소리야 그건, 네가 그럴수록 더 잘 모셔야지.”

창수가 정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마음의 준비해봐. 나도 아버지 보내드릴 때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서서히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아버지 편하게 보내드리는 길인가 생각했어.”

창수가 정수에게 술잔을 권했다. 정수는 말없이 창수의 술잔에 부딪혔다. 그리고 술을 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오늘따라 술이 썼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덕자가 꼬리가 끊어질 듯 흔들며 정수를 반겼다. 정수는 덕자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세상 제일 속 편한 게 너구나.”

정수는 혼잣말을 하며 덕자를 안았다. 덕자의 꼬리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내가 구박을 해도 넌 그리 내가 좋니?”

정수는 술 냄새 풍기며 덕자에게 말했다. 덕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도 꼬리는 여전히 흔들고 있었다.

정수는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반대했었다. 끝까지 돌볼 자신이 없었다. 사람은 어느 정도 지나면 스스로 알아서 하지만 동물은 죽을 때까지 돌봐줘야 했다.

“밥 주고, 씻겨 주고, 놀아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대소변도 치워주고 하는 일을 누가 할 건데?”

“누나하고 내가 할 게.”

진혁이가 애원을 하며 말했다.

“애들이 저리 원하는 데 한 번 키워 봅시다.”

아내도 못이기는 척 진혁이의 편을 들며 정수를 설득했다.

“물건이 아니야, 중간에 싫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 번 책임지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가능하겠어?”

“서로 역할 나눠서 하면 가능해요. 진혁이가 더 많이 한다고 했고.”

“사람이 아파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동물에게 그 지극정성을 쏟을 수 있을 거 같아?”

“그래도 동물이 주는 기쁨이 또 있다고 하잖아요.”

아내는 그렇게 정수를 설득시켰다.

결국 정수는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덕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수는 일부러 덕자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덕자는 그런 정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수가 혼을 낼 때 빼놓고는 언제나 정수에게 달려와 애교를 부렸다. 술 냄새가 덕자의 코를 마비시킬 만도 한데 덕자는 혀로 코를 핥으면서 정수의 손에 안긴 상태에서 꼬리를 여전히 흔들고 있었다. 정수는 멀찍이 손을 뻗은 상태에서 덕자를 안고 있었다.

‘너를 책임 지는 것처럼 아버지가 저리 아파도 끝까지 잘 돌봐 드릴 수 있을까?’

정수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자기를 나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도 잘 케어하지 못하면서 덕자에게 잘 해주는 게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푸~우~, 덕자야, 네 팔자가 상팔자다.”

정수는 꼬인 발음을 하며 덕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덕자는 정수를 따라와 다리를 붙들고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까 창수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아직 정수는 아버지를 보내드릴 맘이 없었다. 무엇보다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 그랬다.

‘우리 어머니? 혼자서도 잘 지내셔. 주간 방문 간호 활동 일도 하시고, 일 없을 때는 주변분들 만나시고 그러시는 거 같더라고. 처음에는 혼자 어떻게 계실까 걱정했는데 아버지 아프시고 나서 어머니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거든. 그때만 해도 아버지 병간호 때문에 그러시나 보다 했는데 오히려 그게 어머니의 제2의 인생살이가 됐어.’

정수가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을 때 창수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창수의 어머니처럼 강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연세에 뭘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머니 또한 병자야. 겉으로는 강한 척 해보여도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환자야. 혼자 산다는 건 쉽지 않아.’

문득 어머니 혼자 계신지가 한 달이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누구랑 술을 먹었는데 떡이 돼서 소파에서 자고 있어요. 출근 안 해?”

아내가 깨우는 소리에 정수는 시계를 봤다. 7시가 넘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소파에 앉았는데 어떻게 여기서 잠이 들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는 띵하고 몽롱했지만 출근시간이 늦을 거란 생각에 부리나케 화장실로 들어갔다.

패혈증 치료는 더디기만 했다. 항생제를 바꿔가며 사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아버지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패혈증을 유발한 의심이 가는 균 배양을 통해 적절한 항생제를 찾아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 했지만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정수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사의 말이 자꾸 자신들이 책임이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정수야, 삶이란 것이 그렇다. 99%희망이 있다고 해도 1%의 희망이 있다고 해도 그 안에 아버지가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의 차이일 뿐이야. 수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의사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야. 희망이 있으니 치료를 하는 거지, 아버지도 저리 버티고 계시고, 기다려봐.”

수화기 너머로 창수가 덤덤하면서도 차분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저녁준비로 바빴다. 정수는 그런 어머니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어머니를 도와드릴까 하다가 정수는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 지금은 그게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거라 생각했다.

“온다고 말했으면 뭐라도 더 해 놓았을 텐데.”

어머니는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지 식탁과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녀요. 있는 반찬 먹으면 되죠.”

정수는 반찬들을 천천히 살폈다. 김치와 콩나물무침, 오이고추, 오래된 고등어조림이 있었다.

‘내가 지금 먹는 반찬을 어머니도 드셨겠구나.’

“식사는 하셨어요?”

정수가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생각이 없는데 약 먹어야 해서 몇 숟가락 떴어. 아버지 저런대 나라도 건강해야 니들이 고생을 안 하지.”

어머니는 여전히 자식들 걱정이었다. 오늘따라 어머니의 집이 커 보였다. 하루 종일 혼자 덩그러니 계셨을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혼자 뭐 하셨어요?”

“그냥 TV보고 아파트 주변 돌고 그랬지. 집에 있어도 맘이 불안하고. 나가도 불안하고 그래.”

어머니는 정수 앞에 앉아서 식탁만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아무도 없구나.’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두 분 다 이제는 혼자였다. 7남매인 어머니도, 5남매인 아버지도 형제들 중 살아계신 분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어머니가 의지할 곳은 자식밖에 없었다.

“아버지 보고 싶으세요?”

정수는 억지로 밥을 입에 넣으면서 물었다.

“걱정이지, 저러다 어찌 될까 싶어서 ……. 나는 아버지처럼 되면 연명치료 하지 말고 그냥 가게 둬라. 니들 고생이고 나도 고생이고 서로 고생이야.”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정수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 만큼 살았으면 됐지 얼마나 더 산다고, 너도 그렇고 수현이도 다 잘 살고 있고 애들 건강히 잘 크고 있는 거 봤으면 됐지. 더 있으면서 험한 꼴 안보고 조용히 갔으면 싶은데 …….”

어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가 없으니 허전하시죠? 지금껏 한 번도 따로 떨어져 본적이 없잖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도 한 이불에서 주무시고 일어나셨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같이 거실에서 생활했다. 두 분이 유일하게 떨어져 있는 때는 병원 갈 때와 시장에 갈 때 뿐이었다. 정수는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생전 꿈도 잘 꾸지 않는데 이틀 전엔가 고모가 나타나서 오빠 어디 갔냐고 찾더라.”

정수는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덤덤한 표정으로 있었다.

“고모님이 아버지 지켜 주려고 왔나 보네요.”

정수는 애 둘러 그렇게 말하고 허겁지겁 다시 밥 한 술을 떠서 입에 넣고 씹는 둥 마는 둥 하고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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