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보호자

3

by 미운오리새끼 민

“오늘 수술하신다고 하니 집에 계세요. 제가 병원에 있을 거니까요. 누나가 오전에 어머니에게 간다고 했어요.”

“수현이는 뭐 하러 여기와. 걔도 바쁜데 …….”

“오전에는 한가하다고 오후에 출근한데요.”

“아범이 있을 거야? 넌 괜찮아?”

“네 회사에 말하고 휴가 썼어요. 걱정 마세요. 오후에 진혁이가 할머니에게 간다고 했어요.”

“진혁이는 왜 와? 아이고 안와도 돼.”

“할머니 보고 싶다고 간대요. 저 병원가야 하니 나중에 통화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요.”

정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전화기를 끊었다. 병원 가는 길이 무겁고 멀게 만 느껴졌다. 비가 온 후라 미세먼지 없이 하늘은 맑았다. 차창 밖의 풍경과 사람들의 발걸음 또한 밝고 경쾌해 보였다. 정수는 딴 세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자신과 정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잘 못되면 어머니는 어떡하지? 아냐 괜한 쓸데없는 생각이야.’

어머니는 항상 씩씩했다. 뇌졸중 진단이후에도 어머니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했다.

‘평생을 앓고 사셨는데 …….’

정수의 마음 한켠이 쓰린 느낌이 들었다.

정수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줄 알았다. 어머니는 정말 잔병치례를 많이 했다. 정수를 낳고 나서 어머니는 계속 아팠었다. 정수의 어릴 적 어머니하고의 추억은 어머니와 함께 병원 간 기억 밖에 없었다. 때론 논과 밭을 지나 고개를 넘어서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가기도 했다. 당시 어머니의 병은 신경성 위장병이라고 했다. 신경을 쓰면 위가 아픈 병이라고 정수는 들었다. 어쩌면 지금 말로 화병일수도 있었다.

정수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같은 반찬을 두 가지로 만들었다. 짜고 맵지 않은 반찬과 양념이 다 된 반찬이었다. 의사는 어미니의 병이 평생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같은 종류의 반찬을 두 개 만들지 않고 있으며, 신경성 위장약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대신에 어머니는 다른 약들을 수없이 많이 먹고 있었다.

‘빨리 죽어야 하는데…….’

정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이 말을 항상 달고 살고 있다. 정수는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다. 반평생 넘게 약에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과거보다 지금이 더 건강하다고 정수는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어느 한군데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자식들 곁에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반면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잔병치레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정수의 기억 속에 아버지가 아픈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갑자가 안 좋아진 것은 정수가 대학을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 두 달 간격으로 아버지 형제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 뇌졸중이 오면서 시작되었다. 곁에 계시던 가까운 분들의 급작스런 죽음이 아버지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다행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오긴 했지만 아버지의 삶은 그 전과 후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하고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했어야 했는데 …….’

정수는 여전히 아버지와 술 한 잔 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정수가 술을 먹을 수 있을 즈음 아버지는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술을 끊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만 생활하는 분이 되어 갔다. TV가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이자 낙이었다. 정수가 동네 노인복지관에 나가서 친구 분도 사귀고 취미생활도 하시라고 말을 해봤지만 아버지는 마다하셨다. 정수가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아니 병들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고.”

무심코 정수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병원 입구는 오늘도 붐볐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리들 아파서 어디서 나타나는 걸까?’

정수의 차가 입구에 다가가자 차단기가 올라갔다.

중환자실에 가서 인터폰을 눌렀다.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한동필님 보호자인대요. 수술 동의서 쓰러 왔습니다.”

“네, 잠시 만요 의사선생님 불러 드릴게요.”

정수는 문 앞에서 한동안 서성거리고 있었다. 복도 저쪽 끝에서 흰 가운을 걸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정수는 천천히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한동필님 보호자죠?”

“네.”

의사는 정수에게 인사를 한 후 중환자실 옆 보안 시스템에 보안키를 갔다댔다. 문이 열리고 중간 문이 또 열렸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자료 갖고 나올 테니까요.”

정수는 의사의 말에 중간문과 보안문 사이에 서서 기다렸다. 정수는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빼곰히 들어 아버지가 있는 침대를 살폈지만 아버지는 찾을 수 없었다.

‘참 따로 격리 병상에 계시다고 했지.’

중문이 열리고 의사가 태블릿을 갖고 나왔다.

“저기 밖에 의자에 나가서 작성하시죠?”

정수는 중환자실 밖의 의자에 앉아서 수술동의서를 살펴보았다.

‘안 좋은 얘기는 다 써놨네.’

정수는 대충 훑고 나서 하단에 서명을 했다.

“아직 수술 수속은 안 밟으신 거죠?”

“네.”

“원무과 가서 수납하고 오세요. 곧 수술 들어가실 겁니다.”

정수는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수납창구 쪽으로 걸어갔다.

수술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정수는 수술현황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대형 TV가 있었지만 TV는 소리 없이 혼자 떠들고 있었다. 20개가 넘는 수술실은 호실별로 수술 중, 회복실, 수술대기, 병실 이전 등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도 많고 수술할 사람들도 많긴 많나보다.’

정수는 대기실 의자 한편에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저마다 간절한 마음을 갖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대기실에는 의자에 앉아서 조는 사람들,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사람들,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고 있는 사람들, 멍하니 수술현황판만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와서 같이 서로 위로하며 오순도순 얘기하는 사람들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버지의 수술실이 회복실로 바뀌었다. 정수는 마음이 편해졌다.

“한동필님 보호자님 수술실 앞으로 와주세요.”

스피커에서 방송 안내가 나왔다. 정수는 수술실 문 앞으로 갔다. 녹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한동필님 보호자님?”

“네, 전대요.”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고령이신데 잘 견디셨어요. 당분간은 중환자실에서 상태 보면서 일반병실로 옮길지 판단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자꾸 의사 앞으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의사는 짧게 목례를 하고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정수는 핸드폰을 들었다.

수술 이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버지는 중환자실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 사이 잠깐 일반병실로 옮겼지만 다시 감염증세가 심해져 하루 만에 중환자실로 옮겼다. 그동안 앓고 계신 병이 많다는 것이 회복의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었다.

“정수야 이러다 아버지 그냥 돌아가시는 거 아니냐?”

어머니는 정수를 볼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

“아니어요. 의사가 잘 견뎌내고 있다고 했어요. 아버지 꼭 이겨내서 다시 돌아오실 거여요.”

정수는 어머니를 위로 하며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도 어느 순간부터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매일 한 번씩 병원을 찾아가서 의사를 만났지만 의사의 말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실까 걱정이야.”

어머니는 눈물을 쏟아냈다.

수술 이후 항생제 치료를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3주가 고비라고 했지만 이미 그 3주는 한참 지난 후였다. 인공호흡기는 땠다 달았다는 반복하다 지금은 호흡기에 의존하는 상황이며, 인슐린을 계속 투여하고 있었다. 정수도 아버지를 못 본지 2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도 그 새 반쪽이 되어 있었다.

“차라리 며칠만이라도 집에서 계시게 하면 안 될까?”

어머니는 오늘도 의사도 아닌 정수를 붙들고 애원하고 있었다.

“어머니 약한 마음 갖지 마세요. 잘 될 거어요.”

정수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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