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만큼이나 늦게 나타난 늦깎이 사랑이었다. 남들은 사랑니를 20대 초반에 나서 뽑는다고 했는데, 상우의 사랑니는 서른이 다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즈음 지수를 만나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상우의 사랑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사랑니는 사랑처럼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사실 지수는 대학 후배였다. 지수가 대학 들어오기 전부터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그냥 친근하고 어린 후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지수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지수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수에 대한 사랑은 연민으로 출발했다. 헤어짐의 이유가 지수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했다. 지수는 말은 안했지만 실연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서 밝게 지내려는 모습을 볼 때면 상우는 왠지 가슴이 허한 느낌이 들었다. 상우는그런 지수를 보며 지수의 실연을 말없이보듬어 주었다.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감정이 조금씩 사랑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알아가게 되었다.
'그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아니 너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그렇게 상우는 자신에게 그리고 지수에게 수없이 마음속으로말하며, 지수의 힘든 여정을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지수가 필요할 때 언제라도 달려가기 위해서, 아니 지수가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줄 때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상우는 그렇게 그녀 뒤에서 조금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수는 상우가 자신에게 보내는 사랑을 알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상우를 부담스러워 하며 멀리했다.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지수의 걸음만 재촉할 뿐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 이외에 지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상우의 마음은 아팠다. 그리고 더 이상 상우는 지수 옆에 다가갈 수 없었고, 지수는 차츰 한걸음씩 상우 곁에서 멀어져 갔다. 상우는 가만히 서서 지수가 멀어지는 것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상우는 지난날 지수와의 만남을 하나 둘 떠올리며 쪼개져 나가는 사랑니의 조각들 편에 추억들을 하나씩 날려 보냈다.
미라의 얼굴이 밝아졌다. 상우도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사랑니가 빠지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큰 힘이 한번 가해지고 난 후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있었고, 턱 주위로 더 이상 힘이 가해지지 않았다.미라의 한숨 소리가 마스크를 향해 작게 들렸다.
“사랑니가 이렇게 난 것은 처음 봐요. 뿌리가 휘어져 있는 것은 많이 봤지만, 이것은 뿌리가 넓게 퍼져 있었어요. 그래서 사랑니를 빼는 것이 어려웠던 거여요.”
마스크를 벗고 나서 미라가 말했다. 미라는 상우에게 윗동이 조각난 사랑니를 보여 주었다. 하얀 비닐장갑을 낀 그녀의 손 위에는 지금껏 자신의 가슴 속에 박혀 있던 사랑가파편들과 함께 놓여 있었다.오랜 고생 끝에 나온 사랑니라 그런지 그것이 한없이 애절하게 느껴졌다. 정말 신기하게도밑동은 ‘ㅗ’ 모양을 하고 있었다.상우는 그것을 보자‘왜 나에게만’ 이란 생각이 들었다.질기다란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운 끝에는 지수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이렇게 작은 것도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아쉬운 것인데 …….’
상우는 머리를 돌렸다. 모든 것을 잊어야 된다는 생각이 다시 밀려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