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가 아는 사랑, 내가 모르는 사랑 4-3
“엄마, 이제 우리 포기하자.”
침대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엄마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문 앞에 있는 정현이를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이제 포기 하고 싶어. 대신에 나 행복하게 살다 갈래.”
“왜 그렇게 나약하게 생각해? 너와 일치하는 사람이 나왔으니 또 나올 수도 있어.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쉬울 거야. 의사선생님도 어떤 사람은 일치자가 여러 명인 경우도 있다고 했잖아?”
엄마는 문 앞에 있는 정현이에게 와서 손을 잡고 말했다.
“아냐, 더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을 거야. 하루 종일 혼자 지내다 엄마가 올 때 느끼는 내 기분이 어떤지 엄마는 모를 거야.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내 모습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지 모르지만, 엄마 난 힘들어. 그렇게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기 싫어.”
정현이는 벽에 기댄 채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죽긴 왜 죽어! 엄마가 너 꼭 살릴 거야. 그러니 걱정 말고 지금처럼 너 몸 관리나 잘해! 알았지?”
엄마가 애원하듯 정현이를 바라봤다.
“엄마 그냥 받아들이자. 나도 그러기까지 너무 많이 힘들고 무서웠어.”
이번에는 정현이가 엄마에게 사정을 하듯 매달렸다.
“왜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해? 치료만 잘 받으면 앞으로 더 오래 살 수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치료 잘 받으면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는데? 엄마 나이만큼? 아니면 외할머니만큼?”
정현이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현아! 왜 그래?”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나 힘들어. 이제 정말 쉬고 싶어. 치료 받는 것도 너무 아프고, 고통이 밀려오는 것도 너무 두렵고 무서워.”
정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정현아, 엄마가 미안해. 잠시 너에게 너무 소원했나보다. 엄마가 더 잘할 테니 그런 맘 같지 말어.”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정현이도 그렇게 엄마를 안고 울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루하루 살아가는지 모르는 거 같아요. 항암치료를 받고 오면 며칠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통증은 더 해만 가요. 뼈를 때린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아파본 사람이 아니면 그런 말 못할 거여요.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울 때는 몸이 말을 안 듣기도 해요. 생리도 언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겁니다. 하루하루 죽음의 그림자가 제 주변에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니 제 방에 진을 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잠에서 깼을 때 한동안은 눈을 뜨지 못해요. 제 눈앞에 죽음의 그림자가 저를 바라보고 있을 거 같아서요.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지금도 한참을 눈을 못 뜨고 있어요.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찾습니다. 핸드폰을 켜고 그 불빛에 눈을 살짝 뜹니다. 이제야 좀 안심이 되네요. 조용히 이불을 걷고 방문을 열려다 멈춥니다. 희미한 불빛이 방문 틈을 비추고 있네요. 조용히 살짝 문을 열어 봅니다. 주방에 불이 켜져 있어요. 살며시 열자 엄마가 혼자서 술을 드시고 있네요. 저는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침대에 누었어요. 엄마도 많이 힘들겠죠?
엄마를 설득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어요.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자식이 없으니 모르겠어요. 부모는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다 같은 말이 아닐까 싶어요. 어차피 죽는 거잖아요. 그리고 다 가족이고. 저도 엄마가 죽으면 매우 슬플 거 같아요. 엄마도 제가 죽으면 슬프겠죠. 엄마보다 먼저 죽고 싶지 않지만 이미 저의 운명은 엄마보다 먼저 죽을 운명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아요. 하루하루 방안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은 이제는 정말 싫어요.
“엄마, 나 죽기 전에 엄마와 좋은 추억들 만들고 싶어. 이 좁은 방에서 살다가 죽기 싫어. 몇 달, 며칠이라도 좋으니 일상의 생활을 하다가 죽고 싶어. 나 기증자 나타났다고 했을 때 정말 행복했어. 이제 살아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생각해보니 나에게 행복은 다른 게 아냐. 남들이 평범하게 하는 일상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야. 그걸 일깨워 주려고 기증자가 잠깐 나타났나봐. 그러니 엄마 그런 행복을 막지 말아줘. 이렇게 살다 죽으면 너무 후회될 거 같아.”
눈물이 쏟아질 것을 참으며 정현이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정현아!”
엄마는 정현이의 손을 붙잡고 울기만 했다. 정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내렸다.
“엄마 맘 알아. 하지만 언제까지 오지 않을 희망을 붙잡고 기다리기만 할 건데? 그러다 그 희망보다 죽음이 먼저 나에게 오면 어쩌려구? 그럴까봐 무서워.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여기서 쓸쓸히 죽는 거.”
정현이는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엄마, 나도 이제 성인이야. 엄마에게 미안한데 내 삶, 내가 결정해도 되잖아? 허락해 줘. 대신에 그 때까지 엄마랑 정말 행복하게 살다 갈게. 저 방에 머물면서 오래 오래 엄마랑 살다가 가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엄마에게 행복일지는 몰라도 나에겐 행복이 아니야. 내가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 사람이 오래 살면 뭐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람같이 살지 못한다면 그건 살아 있어도 사람이 아닌 거잖아.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다 갈래.”
엄마는 정현이를 안고 계속 울기만 했다. 정현이는 엄마의 등을 어루만져줬다.
“엄마, 괜찮아. 난 정말 괜찮아. 하나도 안 두려워. 오히려 지금 이렇게 있는 게 더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더 두려워. 그러니 걱정 마.”
정현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겨울 밤바다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가영이 앞에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한줄기 하얀 줄로 시작된 파도는 가영의 앞에 와서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잡아먹을 듯 덮치려다가 발끝에서 하얀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가영이는 캔을 들어 맥주 한 모금을 입에 넣었다. 바람이 파도와 함께 밀려와 가영이의 얼굴을 때렸다. 세찬 바람에 몸이 휘청 거렸다. 주변에서 여자들의 비명과 괴성이 들려왔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고 모자와 외투를 부여잡은 그들은 파도가 밀려나면 가까이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추위에 떨면서도 그렇게 바다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범수가 내일 골수기증 하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가영이는 규석이 오빠의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았다. 고향에 온 이후로 점점 사람들과 연락을 하나둘씩 정리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혼자 조용히 산다면 굳이 서울까지 가서 일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의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 있는 게 편하고 좋았다.
일 끝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커피 한잔이나 맥주 한잔 마시는 기분은 어느 누구도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단, 같이 마셔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한 가지 아쉬웠지만 그 정도는 참아 낼 수 있었다. 검붉은 바다 위로 한줄기 빛이 보였다. 가영이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아웃오브 사이트 아웃오브 마인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거야. 그리고 지금의 거리가 딱 좋아.”
가영이는 다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괜찮아?”
“응, 아무렇지도 않아.”
범수가 규석이와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술 한 잔을 쭉 마셨다. 온 몸에서 찌릿한 전율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야, 얼마 만에 먹는 술이냐. 술이 달달하다.”
범수는 규석이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네.”
“그럼 뭐 내가 환자도 아니고.”
범수는 불판에서 고기 한 점을 들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가영이랑 같이 갈까 했는데 고향 내려가 있대. 못가서 미안하다고 대신 전해 달라 하더라.”
규석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 니가 걔 보고 싶어서 오라고 했던 건 아니고?”
“무슨 소리, 나도 혼자 가는 거 좀 그렇고 해서 그런 거였지.”
규석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암튼, 오늘 니 덕에 포식 좀 하자. 잘 먹을게.”
범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두툼한 고기를 상추에 올려놓고 한 입 크게 벌려서 먹었다.
“그래 많이 먹어라.”
규석이도 고기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둘은 다시 술잔을 부딪치고 잔을 비웠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은 거지?”
“응. 한 삼주 정도.”
범수는 규석이의 말에 남일 얘기하듯 하며 고기를 먹기에 바빴다.
“준비는 다 한 거야?”
“뭐 한다고 했는데 모르지. 한 번에 붙으면 좋은데 너무 늦게 시작한 거 같아서…….”
범수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기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떨어지면 다시 할 거니?”
“아직은 거기까지 생각 안 해 봤어. 일단 점수 나오는 거 보고. 야, 좋은 날 그런 얘기 그만하고 재미난 얘기 하자.”
범수가 규석이에게 술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규석이는 머뭇거리며 술을 한 모금 입에 넣었다.
“너 시험 끝나면 여행이나 같이 갈까?”
규석이가 범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하하 둘이서?”
범수가 농담인줄 알고 웃으며 물었다.
“다른 친구라도 껴 줄까?”
“아냐 됐어. 봐서.”
범수는 규석이의 진지한 태도에 말을 얼버무렸다.
“정현이도 백혈병이래.”
“정말? 어떻게 알았어?”
규석이의 느닷없는 말에 범수가 술잔을 비우다 말고 물었다.
“혹시나 해서 회사 합격하고 나서 정현이 학교에 한 번 가봤지. 다시 가보기도 힘들 거 같아서.”
“그런데 누가 알려줬어?”
범수는 규석이쪽으로 몸을 갖다 대며 물었다.
“정현이하고 볼 때 가끔 얼굴 봤던 친구가 있었거든. 그 친구가 조교를 하고 있더라구. 그래서 사정해서 상황 좀 알려 달라고 하니까 백혈병으로 휴학을 했다고 하더라구. 자기하고도 연락 끊은 지 오래 됐대. 친구들과 일부러 연락 안하고 있는 거 같다고 하더라고.”
규석이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다야? 뭐 사는 곳은 모르고?”
범수가 당황한 듯 물었다.
“응, 벌써 2년이 넘었으니. 아직 복학 안한 거 보면 회복이 안 된 거 같다고만 하네.”
범수의 반응과는 별개로 규석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근데 왜 그걸 이제 얘기해?”
“너 골수 기증한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맘이 있었거든. 그런데 괜히 이 사실을 너에게 알리면 니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동안 말 못했지.”
규석이가 술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내가 뭘 부담스러워 해?”
범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나 니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정현이가 못 받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야, 소설을 써라. 상대가 정현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는데 뭔 확신을 갖고 그러냐?”
범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니가 우리 또래 일거라고 말했잖아?”
“거기서 그냥 내가 물어보니까 나와 비슷한 나이라고만 말했다고 했지. 남잔지 여잔지도 안 알려줬어.”
“혹시나 만의 하나 그게 정현이일수도 있는 거잖아.”
규석이는 잦아드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아이고, 등신아.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술이나 먹어.”
범수가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규석이에게 술을 권했다.
“정말 너 대단하다. 순애보냐 뭐냐?”
“몰라, 그냥 차라리 대판 싸우고 헤어졌으면 미련이라도 없는데, 이건 그게 아니잖아. 그리고 좋은 일로 헤어진 것도 아니고 …….”
범수의 다그침에 규석이는 죄지은 사람마냥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너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참 대단하단 생각도 들고, 가영이가 정말 너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
범수가 술 한 잔을 꺾었다. 술이 썼다.
“가영인 나하고 아닌 거 같아.”
규석이가 잦아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쁘잖아?”
“그럼 니가 사귀지 왜?”
“자슥, 나하고는 아니라니까!”
범수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술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넌 왜 아직도 정현이를 못 잊는데? 정말 걔가 아파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말도 없이 헤어져서 그러는 거야?”
범수는 규석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 병 다 나았다고. 이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할 거 같아.”
규석이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메일도 안 열어 본다며?”
“사랑도 못 해본 놈이. 너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해?”
규석이의 혀가 점점 꼬여 갔다.
“뭔 또 개소리야?”
“그 사람의 슬픔도 아픔도 함께 하는 거야? 인디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진정한 친구는 친구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야 고리타분한 말 그만하고 내 슬픔이나 니 등에 지고 가라. 오늘 술 좀 자제하려고 했더니 더 땡기게 만드네.”
범수가 규석이에게 술을 권하며 잔을 벌컥 들이켰다.
“그 애가 힘들고 아파할 텐데 내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게 맘이 아프다.”
규석이가 푸념 섞인 투로 말했다.
“옆에 있으면 니가 뭘 해 줄 건대?”
“내가 같이 있어주지.”
규석이 술에 취했는지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이 자식이, 야 사랑이 그리 우습냐?”
규석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야, 그래서 정현이가 널 떠났다고 생각은 안 하냐?”
“뭐래?”
범수의 말에 규석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니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너를 만날 수 도 없고, 만나도 병실이나 집에서 얼굴이나 보겠지. 그리고 너는 시간 되면 갈 거고. 그럼 혼자 남겨지는 정현이는 어떨지 생각해 봤어?”
범수가 목청을 높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규석이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정현이가 다 사람들과 연을 끊었는지 생각해봐!”
범수는 규석이의 말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게 나 때문이라고?”
규석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짜식 이럴 때는 머리 엄청 빨리 돌아가네. 그럼 너 때문이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 하냐?”
“왜? 내가 자기 찾을까봐?”
규석이는 범수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다 연을 끊은 거야. 너 지금 하는 행동 보면 모르겠냐? 넌 정현이 맘을 좀 생각해 봤어?”
규석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동안 정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정현이가 왜 나를 피하는지, 내가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는 지, 그런 마음의 표현만 했었던 거 같았다. 정현이가 얼마나 아픈지,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됐는지 더 심해진 것은 아닌지. 정현이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넌 정현이의 사랑만도 못한 거야.”
범수의 말에 규석이는 술이 확 깼다.
“그 애가 너를 위해 세상과 등졌다고 생각 안 해 봤니?”
규석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야, 울긴 왜 울어? 누가 죽기라도 했냐? 그만하자. 술이나 먹자. 에이 더러운 세상.”
범수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 벌컥 마셔 버렸다. 규석이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니가 그렇게 노력하는데 만날 수 있지 않겠니? 정말 내 상대방이 정현이었으면 나도 좋겠다.”
규석이는 정현이가 자신을 위해서 주변 사람들을 정리했다고 생각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뭔데?’
규석이는 정현이가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니? 미안하다 니 맘도 몰라주고. 보고 싶다. 정말로. 한 번 만이라도 보고 싶다.’
규석이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