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리

5. 사랑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5-1.

by 미운오리새끼 민

엄마를 졸라서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어요. 엄마는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지만, 제가 봄이 올 때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전 겨울 바다가 보고 싶은데 말이죠. 하루하루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봤습니다. 이걸 다 할 때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행복한 기분이 들어요. 최소한 이 답답한 방안에서 탈출할 수 있으니까요. 엄마는 지금도 저를 말립니다. 엄마는 절 하루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거겠죠?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운동도 열심히 해요. 그리고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 가지 걱정도 돼요. 엄마가 저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제가 없어지면 더 허전하지는 않을까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브레히트의 시가 생각나네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닌 거 같아요. 모든 슬픔을 다 겪는 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울 거 같아요.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나는 것을 본다는 것은 더 참을 수 없는 아픔이지 않을까요? 남아서 그것을 지켜보느니 먼저 가는 게 더 편할 수도 있겠어요. 정말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그래서 강한 자 인거 같아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엄마도 강한 모습으로 남아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겠죠? 한편으로는 엄마가 너무 슬퍼할까봐 엄마와 거리를 둘까 생각도 해요. 무심하고 못된 딸로 남는다면 좀 덜 슬퍼하지 않을까요?

요즘은 아침마다 기도를 해요. 엄마가 저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아직 엄마는 50도 안됐어요. 아빠와 제 몫까지 산다고 가정을 하면 한 백 살은 족히 넘게 사셔야 해요. 그런데 매일 슬픔에 잠겨 살면 너무 불행하잖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요. 아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기왕이면 아빠보다 더 멋진 남자를 만났으면 싶네요. 아빠도 이해하실 거여요. 그런데 아빠보다 멋진 남자가 있을지 사실은 좀 걱정되요. 엄마가 눈이 좀 높아서 아빠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면 성에 찰려나 모르겠어요.

오늘은 엄마랑 집 앞 공원에 가기로 했어요. 전 사실 쇼핑을 먼저 하고 싶었는데 아직 사람 많은 곳부터 가는 것이 엄마는 걱정이 되나 봐요. 어제 눈이 와서 오늘 눈을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아요. 엄마는 뭐가 불안한지 저에게 옷을 몇 겹을 입게 하는지 몰라요. 제 몸무게 보다 옷 무게가 더 나가는 거 같아요. 움직이는 거 조차 너무 힘드네요. 이렇게 해서 걸어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감기 걸리는 것 보다는 낫겠죠? 엄마에게 졌어요. 그렇게 안 입으면 절대 못나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죠. 마스크에 모자에 목도리까지 눈만 살짝 보이는 데 안경까지 써야 한데요. 그나마 고글을 안 쓰니 다행입니다.

집 앞을 나왔는데 살짝 실망했어요. 눈을 누가 벌써 다 치워 놓은 거 있죠? 저는 실망스러운데 엄마는 안심이 되나 봐요. 그러고 보니 엄마가 눈을 치웠을 수도 있겠네요. 햇빛을 느끼고 싶은데 느낄 수가 없어요. 공원까지 왔어요. 약간 힘이 드네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요. 누가 알면 마라톤이라도 뛰고 온 사람 같아요. 엄마가 제 마음을 아는지 벤치로 저를 이끌고 가네요. 그래도 전 행복합니다. 드디어 집 밖을 탈출했으니까요.

“춥지 않니? 괜찮아?”

엄마는 연신 주변을 살피며 저에게 묻습니다. 누가 저희를 훔쳐보나 봐요. 이쯤 되면 저의 훌륭한 경호원 맞죠? 엄마의 말에 전 고개만 끄덕입니다.

“추우면 얼른 들어가자?”

전 고개를 흔듭니다. 아직 춥지 않아요. 오히려 식은땀이 나서 온 몸이 축축해요. 너무 옷을 많이 입은 거 같아요. 엄마에게 가자고 손짓을 합니다. 엄마가 저를 부축해서 일으킵니다. 엄마는 절 옆에서 부축하고 걸어요. 혼자 걸을 수 있는데 말이죠. 일부러 눈이 쌓인 곳을 걸어가는 데 엄마는 자꾸 눈이 치워진 길로 저를 안내해요. 발에서 느껴지는 눈의 감촉이 너무 좋아요. 하나하나가 지금 저에게는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어요. 눈을 감고 잠시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집 앞에 도착하자 엄마는 이제 좀 안심이 되나 봐요. 긴장했던 얼굴이 조금은 풀리는 거 같아요. 오늘 무사히 동네 공원에 가는 거 성공했어요. 버킷리스트에 하나를 삭제했습니다. 이렇게 흐믓할 수가 없어요. 백점 맞았을 때보다 더 기분 좋아요. 다음에는 뭘 해볼까요?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서영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급함도 아니고 무언가에 쫓기는 것도 아닌데 마음은 불안했다. 그렇다고 설레는 마음은 더 아니었다. 예전에 준호 오빠랑은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함께 할 수 있다는 설렘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없었다.

“지원아, 너 결혼하기 전에 어땠어?”

서영이는 지원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불안하니?”

“아니, 좀 그래서.”

지원이의 말에 서영이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점점 결혼 날짜가 다가오니까 우울증도 생기고 그랬어. 불안하기도 하고.”

지원이는 서영이의 마음을 아는지 자신이 겪었던 일을 구구절절 얘기했다.

“너도 그랬구나. 너 결혼식 때 너무 좋아하는 모습만 봐서 난 너는 그런 거 하나도 못 느꼈는지 알았어.”

“아니야 나도 그때 무지 힘들었어. 이 결혼해야 하나 싶기도 했었고, 신랑하고 싸움도 많이 했어.”

“그랬구나. 다 겪는 일인가 보지? 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지원이의 말에 서영이는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얘, 너 그거 그냥 놔두면 병 생겨. 그 사람하고 바람이라도 쐬고 와.”

지원이는 서영이가 걱정되는지 조언까지 해줬다.

“바람은 무슨 곧 결혼하는데.”

서영이는 피식 웃으며 지원이의 말을 받아쳤다.

“얘는? 신혼여행 간다고 여행 안 가니? 잠깐 교외로라도 나갔다 와 봐. 결혼 준비하느라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을 텐데 그게 은근히 스트레스잖아. 이제 뭐 준비는 다 한 거 아냐?”

“그렇지, 큼직한 거는 다했으니까.”

“그럼 좀 리프레시 해야지. 내가라도 같이 가주고 싶은데 나 임신해서 힘들 거 같아.”

지원이가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임신했어? 축하해.”

지원이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서영이는 어리둥절하면서 말했다.

“응, 고마워. 암튼 좀 잠깐이라도 여행 갔다 와봐. 당일치기라도 알았지?”

지원이와 전화를 끊고 나서 서영이는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무기력함이 밀려와 서영이를 침대에 꽁꽁 묶어 놓은 것 같았다. 서영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하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원이 말대로 일시적인 거라면 다행인데 점점 결혼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준호 오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그런 걸까?’

서영이는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상황이 준호 오빠랑 비교 되는 것도 싫었다.

‘혼자 조용히 갔다 올까?’

서영이는 지원이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동안 쉴 세 없이 결혼 준비로 정신없이 달려온 거 같았다. 평일에는 일에 치이고 주말에는 결혼 준비 한다고 돌아다니고 정말 잠시라도 쉴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다 되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원이 말대로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아냐,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이제 다시는 그럴 수 없을 거잖아.’

서영이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달력을 펴들었다.



바닷가의 사람들도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말에 북적이던 사람들이 평일이 되면 덩그러니 바다만 남겨 놓고 사라졌다. 철푸덕 거리는 파도도 애꿎은 모래사장만 때리고 사라졌다.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은 혼자인 경우가 더 많았다. 겨울 바다의 풍경은 여름바다의 풍경과는 다르게 을씨년스런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의 표정을 바꿔 놓고 있었다. 때지어 몰려오던 사람들이 혼자 오는 것이 겨울바다였고, 신나게 해변을 뛰어 다니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파도를 보며 있는 것도 겨울 바다였다.

가영이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 사람들의 느낌이 고스란히 그림에 담겨지는 거 같았다.

‘이 사람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표정이나 앉아 있는 모습 속에서 각자의 사연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파도는 말없이 그들의 사연을 담아 사라지고 있었다.

규석이 오빠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가영아, 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야. 니가 말하는 순애보 같은 애야.”

범수 오빠가 규석이 오빠를 처음 만났을 때 가영이에게 소개 시켜주며 했던 말이었다. 규석이 오빠의 선한 눈빛에서 범수 오빠의 말이 느껴졌었지만 왠지 느낌이 어색했었다. 그냥 그날 기분 탓이겠거니 생각했었지만 그 후 한 번 더 만났을 때 규석이 오빠에게는 잊지 못할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애보란 뭘까?’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질 만하면 문득 범수 오빠가 생각났다. 가영이는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한 참을 바라보았다.

‘규석이 오빠가 여기에 왔다면 이런 모습일까?’

우수에 찬 눈빛으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림 속의 모습과 해변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야 밤늦은 시간에 왜 보자고 했냐?”

범수가 투덜거리며 규석이에게 말했다.

“시험은 잘 봤어?”

“시험 얘기는 그만 해라.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범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형아가 그래서 너 기분 풀어주려고 이벤트 준비했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디 한잔 하러 가.”

범수는 술이 당기는 지 규석이를 보며 술집을 가리켰다.

“가긴 갈 건데 여기서 말고 일단 가자 늦겠다.”

규석이는 범수를 끌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너 지금?”

범수가 당황해서 말했다.

“너 시험 끝나면 여행 가자고 했잖아.”

“미친놈, 야 여행을 그냥 가냐? 나 아무것도 없어?”

범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규석이에게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말했다.

“괜찮아. 나만 따라 오면 돼.”

규석이는 이미 다 예약을 했는지 범수를 데리고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 쪽으로 데리고 갔다. 플랫폼에는 기차가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 어디 가는데?”

“일단 타봐. 시간 없어. 곧 출발하겠다.”

사람들이 뛰는 바람에 덩달아 두 사람 모두 기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범수와 규석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았다. 차창 밖으로 역무원이 수신호를 하자 기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기차는 플랫폼을 서서히 벗어났다.

“너 때문에 안하던 전력질주를 하고. 그래 어디 가는데?”

범수가 헐떡이며 물었다.

“동해 바다.”

규석이가 웃으며 말했다.

“뭐? 이 밤에?”

범수가 놀라서 물었다.

“걱정 마. 한 숨 자고 나면 새벽녘에나 도착할 거야.”

규석이가 범수에게 삶은 계란을 건네며 말했다. 기차는 도심 속의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계속

이전 12화아름다운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