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랑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5-2.
엄마랑 얼마 만에 여행을 가는지 모르겠어요. 의사선생님이 신신 당부를 해서 알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던 거 같아요.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주변 응급병원에 급히 가라고 걱정 아닌 걱정까지 하셨어요. 아마 마음 같아서는 의사선생님도 같이 가고 싶은 심정 같아 보였어요. 그게 저를 위한 것인지, 그 핑계로 바다를 보고 싶어 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의사선생님이 뭐라 얘기는 엄청 하셨는데 제 머릿속에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요. 뭐 암튼 주의하라는 얘기뿐이었어요. 전 마음이 벌써 바닷가로 가 있는데 그게 들리겠어요. 대신에 엄마가 아마 잘 기억하고 있을 거여요. 둘 중 한사람만 알고 있으면 됐죠.
엄마는 거북이처럼 운전을 하고 있어요. 주변 차들이 저희를 추월하며 씽씽 달려요. 토끼가 거북이를 놀리고 달아나듯 앞선 차들은 이미 시아에서 사라져 버렸네요.
“엄마 좀 밟아 봐.”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거북목을 하고, 앞만 보고 한 차선으로 일관되게 가고 있어요. 뭐 급할 거 없으니 천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주변 경치도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요. 햇볕이 따뜻하니 잠이 슬슬 와요. 듬성듬성 눈 쌓인 산들이 너무 멋있는데 말이죠. 스키장이 보여요.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았다가 지운 일정이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가보고 싶어요. 잠이 스르르 오네요.
“엄마, 안 졸려? 괜찮아?”
“응, 아직은 괜찮아.”
“힘들면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도 돼. 나 자도 되지?”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고 잠이 들었어요. 집에서는 잘 오지 않던 잠이 밖에 나오니 왜 이리 잠이 잘 올까요? 남들에게는 꿀맛 같은 낮잠이 저에게는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왠지 이대로 영원히 잠들 거 같아서 무서워요 그런데 그런 두려움도 잠을 이기지는 못해요. 다시 일어날 수 있겠죠? 엄마를 살짝 보고 잠이 들었습니다.
“지금 바로 탈 수 있는 표 하나 주세요?”
매표소 직원은 서영이를 힐끗 바라보고 나서 표를 하나 주었다. 서영이는 표를 받고 승차장을 확인한 후 뛰기 시작했다. 출발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영이는 떠나려는 차를 겨우 세워서 탈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목적 없이 떠나는 것도 나름 괜찮은 거 같았다. 항상 무엇을 할 때는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가서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도 필요 없었다. 아침 해가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버스는 해를 쫓듯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영이는 마음이 확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얼마마의 느껴보는 자유로움 인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너 근데 출근 안 해도 돼?”
범수가 규석이가 걱정되는지 물었다.
“응 휴가 냈어.”
규석이는 뭐가 좋은지 여전히 싱글벙글 거렸다.
“벌써 휴가도 있어?”
“한 달 지나면 휴가 하나씩 생겨.”
범수가 놀라자 규석이는 캔 커피를 따며 말했다.
“좋은 회사네. 너처럼 일 못하는 얘도 휴가 주고. 너 거기다 뼈 묻어야 겠다.”
“인마, 일 잘하니까 휴가 주는 거지.”
규석이가 범수에게 자기가 딴 캔을 주며 말했다.
“근데 뭔 바람이 불어서 바다를 보러 가자는 거야?”
범수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물었다.
“그냥, 너하고 여행 안가본지도 꽤 됐고. 가는 김에 바다 가보면 좋을 거 같더라구.”
“그럼 미리 간다고 귀띔이라도 해주면 좋잖아?”
“야, 이렇게 그냥 떠나보는 것도 추억 아니냐?”
규석이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말했다.
“동네 공원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이 달랑 몸만 가니까 이상해서 그렇지.”
범수는 자신의 모습을 훑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무슨 계획은 있는 거야?”
“계획은 무슨 그냥 일출 봤으면 됐지. 없어 일출 보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래도 일출 보고 나니 기분 좋지 않냐?”
규석이가 아이마냥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해는 어느덧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었다.
“뭐 그럼 아무런 계획도 없는 거야?”
“응. 이제 니가 뭐 할지 생각해봐.”
범수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범수는 살짝 짜증이 났다.
“야, 일단 배고프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자.”
휴게소에서 먹는 호두과자는 정말 가장 맛 좋은 간식 같아요. 여행의 별미는 역시 휴게소 음식이죠. 그런데 저는 휴게소 내 식당 음식을 못 먹어요. 엄마가 절대 일반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그러면 여행도 못 간다고 해서 일반 음식을 먹지 않는 대신에 여행을 가는 것으로 했어요. 그래도 호두과자는 먹게 해 줘서 다행이죠. 이로써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웠어요. 모카향의 부드러운 커피 향이 느껴지는 데 엄마가 제 눈치를 봅니다. 뭐 못 먹을 거 저 몰래 먹나 봐요. 오늘은 그냥 아무 말 안하고 넘어가려구요. 전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고 있어요. 차 밖을 나가고 싶은데 엄마는 바람이 너무 세다고 차안에만 있으라고 해요. 대관령 고개를 넘었으니 이제 바다에 거의 다 온 거죠? 벌써부터 맘이 너무 설레요. 가슴이 콩닥거리고 어서 빨리 보고 싶은데, 엄마는 여전히 거북이걸음으로 가고 있습니다. 버스들도 우릴 따라오다 지겨운 지 몇 대가 우리를 앞질러 갔어요. 그래도 엄마는 꿋꿋하게 앞만 보고 가네요. 강릉 표지판이 보였어요. 바다가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엄마, 바다야. 바다에 왔어.”
전 코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기라도 한 듯 신나서 엄마에게 소리쳤습니다.
버스는 서영이를 터미널에 내려 준 후 어디론 가 훌쩍 떠나버렸다. 바람이 서영이의 머리를 날렸다. 서영이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분주히 터미널을 빠져 나갔다. 서영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뭐가 그리 바쁜 거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영이를 밀치고 터미널을 빠져 나갔다. 그 바람에 서영이는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 했다. 사람들은 그런 서영이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떠났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잖아.’
서영이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시간에 쫓기 듯 시계바늘의 초처럼 살아왔지만, 결국 다시 돌아 원점에서 또 시작하는 하는 되돌이표의 삶인데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까? 잠시 멈추면 삶이 보이는 데 왜 우린 삶을 보지 못하고 무엇을 쫓아가고 있었던 걸까? 행복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사랑하는 데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까?’
서영이는 천천히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타는 대신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버스 안내 표지판을 보며 어디를 갈지 생각을 했다. 노선이 많아서 무엇을 타야할지 망설여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적게 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가 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를 탔다. 뒤이어 버스가 도착했다. 서영이는 걸음이 빨라지는 자신을 보고 픽 웃으며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버스에 탄 후 천천히 노선표를 살폈다. 바닷가로 가는 버스였다. 서영이는 오늘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곳으로 운명이 이끄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서영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차창 밖에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주말을 지난 바닷가는 썰렁한 느낌마저 들었다. 간간이 청소를 하는 분들이 눈에 띨 뿐 북적대던 어제와는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가영이에게 가장 편한 하루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남들은 월요병이다 해서 출근하기 싫다고 하지만 가영이는 월요일이 일하기 가장 좋은 날이었다. 계산대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바다를 보았다. 태양이 구름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구름 뒤에 숨은 태양의 찬란한 빛은 구름을 뚫고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존재도 그럴까?’
누군가에게 잊혀 진다는 것이,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이, 정말 잊혀지는 것일까? 잊혀졌다고 생각했지만 문득문득 나타난다는 것은 잊혀진 것이 아닌 거 같았다. 어제의 복잡했던 해변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해서 지금의 한산한 해변의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의 낮과 밤은 정말 두 얼굴을 가진 거 같았다. 간밤의 세찬 바람과 집어삼킬 것 같은 파도는 사라지고, 지금은 물살도 약하고 바람도 잔잔히 불어오고 있었다. 가영이는 일상의 지루함을 자연이 보상해 주는 거 같았다. 문을 열고 손님이 들어왔다.
바다에 드디어 도착했어요. 몇 년 만에 보는 바다인지 모르겠어요.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아요.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역시 엄마도 바다에 오니 좋은가 봐요. 엄마는 저를 꼭 안고 걸어요. 바람도 잔잔하고 햇볕도 나서 춥지 않은데 엄마는 여전히 제가 걱정되나 봐요. 눈물이 살짝 맺힙니다. 누가 알면 우는 줄 알겠지만, 전 지금 너무 행복해요. 기쁨의 눈물이라고요? 아뇨 그냥 바닷바람의 영향 같아요. 해변에 사람이 거의 없어 좋아요. 저 혼자 전세 낸 기분이어요. 엄마랑 사진도 찍고 파도가 치는 바다 앞에 까지 갔어요. 발도 담그고 싶은데 그것만큼은 엄마가 말려서 못하고 있어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파도가 되고 싶어요. 그러면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겠죠?
“정현아, 엄마 춥다. 우리 좀 따뜻한 데 가자.”
“엄마, 나 더 있고 싶어.”
“좀 이따가 다시 나오자.”
엄마가 저를 끌고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따라가요. 편의점이 눈에 보이네요. 따뜻한 오뎅 국물이 생각나네요.
덩그러니 혼자 버스에 내려진 서영이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코끝으로 바다냄새가 느껴졌다. 서영이는 마음이 들떴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서영이는 어릴 때 바다를 보며 살았고, 엄마 집에 가면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었지만, 바다는 항상 설레임의 대상이었다. 확트인 바다 앞에 서는 순간 가슴이 탁 트이는 거 같았다. 서영이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기분이 좋아졌다.
“야!”
서영이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 서영이 주변에 사람들은 없었다. 저 멀리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지만 서영이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듯 했다. 한동안 파도가 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를 바라봤다.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파도는 서영이의 발 앞에까지 와서는 거품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서영이는 그런 파도를 한 움큼 쥐었다. 손에 끈적거리는 느낌이 왔다. 닿을 듯 말 듯, 잡을 듯 못 잡는 사랑처럼 느껴졌다. 두 남자가 서영이의 뒤를 지나쳐 갔다.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서영이는 가만히 있었다.
“배도 부르니 이제 뭐 할까?”
규석이가 범수를 보며 물었다.
“바다 봤으면 됐지 뭘 또 해?”
범수는 시큰둥한 표정을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만 그냥 보고 가면 서운하잖아.”
규석이는 뭔가 아쉬운 듯 했다.
“할 게 뭐 있냐?”
범수도 규석이의 마음을 아는지 되물었다.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글쎄, 그래도 주변 관광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항구에 가서 회라도 먹고 올라가야지.”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회 먹냐?”
“아니 슬슬 배 꺼지면 그러자는 거지.”
규석이는 뭐가 신이 났는지 연신 싱글벙글 거렸다.
“여기 혼자 오는 여자도 있는 거 같아?”
규석이가 해변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왜 말이라도 걸어보게?”
“아니, 그냥 혼자 온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여서.”
“니가 뭐 박애주의자도 아니고 쓸데없는 생각하고 있네. 너나 잘해 인마!”
둘은 그렇게 해변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