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리

5. 사랑에는시작과 끝이 없다. 5-2.

by 미운오리새끼 민

편의점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안심이 되는지 어묵을 계산하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정현이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편의점의 따뜻한 온기가 정현이의 몸을 녹였다. 엄마는 정현이가 있는 곳으로 어묵을 갖고 왔다.

“맛있겠다.”

엄마가 웃으며 정현이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바다를 바라보며 국물을 마셨다. 따뜻한 국물이 온몸으로 퍼지자 얼었던 몸이 녹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고마워.”

정현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니가 건강하고 오래 살 수만 있다면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정현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어?”

정현이가 불쑥 엄마에게 물었다.

“글쎄,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네 딸로 태어나고 싶어.”

엄마는 바다를 보다 말고 정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딸로? 왜?”

정현이는 엄마의 대답에 당황해서 물었다.

“엄마로 너와 살아봤으니 이제 니 딸로 살아봐도 좋을 거 같아서.”

“그럼 할머니 엄마로 태어나면 되잖아?”

정현이는 엄마가 자신이 딸로 태어나는 것이 부담되는지 되받아서 물었다.

“할머니보다는 니 딸로 태어나서 더 오래 살고 싶어.”

벨이 울리며 누군가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어서 오세요”

가영이는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여자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커피가 있는 진열대로 갔다.

서영이는 편의점으로 들어오자 몸이 좀 녹는 느낌이 들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해변에 앉아 있는 동안 온몸으로 한기가 스며든 듯 했다.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의 위치를 확인하고 매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배가 출출했다. 서영이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음식을 먹는 곳에는 이미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서영이는 잠시 멈칫하다가 가장자리에 앉았다. 한 여자가 서영이를 힐끗 바라봤다. 서영이는 바다를 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몸에 따뜻한 기운이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서영이는 옆의 여자들을 봤다. 두꺼운 모자를 눌러쓴 야윈 여자와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얘기를 하면서도 자신을 의식하는 거 같았다. 서영이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면서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엄마는 옆에 앉은 여자가 계속 의식이 되었다. 조금 더 따뜻한 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자리를 뜨는 게 더 안전해 보였다.

“다 먹었으면 나갈까?”

“응, 난 좋아.”

정현이는 마스크를 하고 목도리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끝에 앉아 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혼자 여행을 온 듯 보였다.

‘나도 아프지만 않으면 혼자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정현이는 엄마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편의점을 나왔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 나와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바람이 차지? 차에 가서 좀 있다 나올래?”

정현이는 이번에는 엄마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서영이 앞으로 편의점을 나온 두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딸은 엄마의 팔짱을 끼고 있었고, 그런 엄마는 어깨로 딸을 안은 채 가고 있었다. 약간 어딘가 모르게 걷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친구같이 다정해 보였다. 서영이는 문득 엄마와 둘이 여행 간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이후 줄곧 엄마와 떨어져 살아온 이후 엄마랑 어디 가본 적이 없었다. 엄마와는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았다.

가영이는 두 사람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디가 아픈 걸까?’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딸이 넘어질까 봐 불안 불안한 모습으로 부축을 하며 걷고 있었다. 딸은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조심조심 발을 내딛고 있었다. 가영이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들이 들어왔다. 가영이는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빠!”

“어? 너?”

범수는 가영이를 보고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옆에 있던 규석이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너 알고 있었어?”

범수가 규석이를 보고 말했다. 규석은 그냥 웃기만 했다.

“오빠들이 웬일이야?”

가영이는 당황스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움이 묻어난 말투로 인사를 했다.

“범수가 어제 시험 쳤거든. 바다도 보고 너 얼굴 함 보러 왔지.”

규석이는 무엇이 좋은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거야?”

범수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말투로 가영이에게 물었다.

“응 좋아. 바다도 보이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할만 해.”

가영이도 긴장이 풀렸는지 웃으며 말했다.



서영이는 계산대에서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돌렸다. 조용한 분위기가 깨진 것이 싫었다. 서영이는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겨울바다 노래가 들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바다를 바라봤다. 잔잔한 파도가 넘실대듯 자신에게로 오는 거 같았다. 커피와 따뜻한 편의점의 온도 때문에 몸은 많이 따뜻해졌다. 서영이는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나서 커피를 들고 일어났다. 입구를 나오면서 계산대를 힐끗 처다 보았다. 세 사람은 서영이가 나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그 앞에서 연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엄마, 바다가 참 아름다워. 우리 다시 올 수 있을까?”

정현이는 차 안에서 바다를 보며 말했다.

“그럼 여름에도 오고 내년에도 오고해야지.”

엄마도 바다를 보며 말했다.

엄마의 말이 왜 이리 서글프게 들릴까요? 정말 여름에도 오고 내년 이맘때 다시 바다를 볼 수 있을까요? 왜 사람들은 바다를 좋아할까요? 꽃들처럼 화려한 것도 아니고, 산처럼 사계절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같은 모습 그대로인데 바다는 왜 아름답게 보일까요? 편의점에서 봤던 그 여자가 바닷가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네요. 바람에 머릿결이 나풀거리는 모습이 이뻐 보여요.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이 오늘따라 더 서글프게 느껴지네요.

“엄마도 혼자 바닷가에 온 적이 있어?”

“음……, 글쎄, 기억이 없네.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엄마는 애써 기억을 더듬듯 생각에 잠겼다.

“혼자 오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바다가 좋아서 오는 거겠지?”

“바다는 왜 좋은 걸까요?”

“넌 왜 바다가 좋은데?”

“음, 잘 모르겠어. 그냥 안 보면 보고 싶고, 그립고, 오면 왠지 마음이 편안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그래서 지금 그런 느낌이야?”

“응, 좋아.”

정현이가 엄마를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바다는 한 가지 더 좋은 점이 있어요. 엄마에게 말은 안 했지만,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는 거 같아요. 가만히 바다를 바라만 봐도 좋지만, 그냥 있다 보면 마음속에 생각했던 것들이 스스로 정리가 되어 가는 거 같아요. 그래서 고민거리를 저 바다에 다 던져 버리고 갈 수 있는 거 같아요. 지금 이 순간 처럼요. 엄마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죠? 지금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해요. 비록 같은 공간에 있지만, 바다를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저도 바다를 보면서 그냥 이런저런 생각의 늪에 빠져 있네요. 버킷리스트에 내용들이 하나씩 지워질 때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점점 두려워 져요. 마지막 잎새처럼 버킷리스트의 내용들을 다 하고 나면 전 이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요? 참 사람은 간사해요. 처음에는 그것만 다 이루고 가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점점 그 소원이 다 이루어지려고 하니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밀려오니까요. 이제 버킷리스트에 남아 있는 것이 몇 개 안 남았어요. 다시 뭘 채워 넣어야 할까요? 뭘 더 하고 싶을까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끊임없이 욕심이 생기는 거 같아요.

여자가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네요. 잠이라도 든 걸까요? 혼자 온 느낌은 어떤 기분일까요? 여자 주위로 두 연인이 걸어가고 있네요. 부러움이 가슴에서 일어났어요. 규석이하고 같이 왔었던 바다가 생각나네요. 찌는 듯한 여름날 이곳에 와서 물놀이를 했던 추억이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에 파도와 함께 다 밀려가는 거 같아요. 옆에 엄마가 아니라 규석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서영이는 커피를 품에 안고 해변에 다시 앉았다. 커피의 따뜻한 기운이 몸으로 전달됐다. 바닷바람이 서영이의 머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서영이는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눈을 감았다. 철석 거리는 파도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서영이 앞에까지 왔다 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준호 오빠와 함께 왔던 겨울바다가 생각났다. 가슴이 아플 줄 알았는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난번 강에 갔었을 때하고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파도가 서영이의 마음을 감싸주는 듯 했다.

‘사랑이란 무얼까?’

서영이는 자신이 아직도 준호 오빠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햇갈렸다.

‘아직도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보고 싶고 그런 것이 사랑일까? 그렇다면 형준씨는?’

서영이는 형준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그는 서영이를 항상 먼저 배려하고 위해 줬다. 준호 오빠하고의 감정과는 분명 다른 느낌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럼 이 사람은 아직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싶고, 같이 있으면 기분 좋고 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 다 같은 것은 아닌 것인가?’

서영이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 속에서 두 사람에 대해 규정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복잡했던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오빠가 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항상 마음의 짐처럼 느껴졌던 준호가 잔잔한 파도처럼 편안히 다가오는 거 같았다. 하지만 파도가 더 이상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듯이 준호도 더 이상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가영이는 두 사람이 나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둘은 해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묘한 감정이 가영이의 마음을 잡아 끌었다. 여기 와서 씁쓸하고 외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두 사람이 오고 나서 그런 기분이 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잊은 줄 알고 지내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가영이는 짧지만 범수와 함께 했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규석이와의 짧은 만남도 스치듯 기억 속에서 지나갔다. 찬우와 헤어진 이후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지만, 범수는 그런 가영이에게 다정히 대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범수에게 약간의 호감은 있었지만, 결혼식장에 간 이후 범수에 대한 생각을 접었었다. 그리고 고향에 와서는 범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서서히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나만 잊는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은 아닌 걸까?’

기억 속에 사라진 사람들조차 이렇게 불쑥 자신 앞에 나타나면 그 기억은 다시 샘솟듯 떠오르는 것이었다. 가영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 한 점이 되어 버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기 잘 한 거 같지?”

규석이가 웃으며 말했다.

“가영이 본 거?”

“아니 바다 보러 온 거.”

“너 일부러 바다 핑계 대고 가영이 보러 온 거 아냐? 너 혼자 가기 뭐 하니까?”

“하하 그건 아니고 뭐 겸사겸사 그리 된 거지.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어떠냐? 가슴이 확 뚫리는 거 같지 않냐?”

규석이가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태양이 모래사장을 뜨겁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바람조차 막지는 못했다. 바람은 파도와 함께 밀려왔다. 두 사람은 모래사장 끄트머리에 서서 바다를 한동안 바라봤다.

“가영이랑 해 볼 생각은 있는 거야?”

범수가 뜬금없이 물었다.

“아니, 그런 생각 없어. 정현이를 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닌 거 같아.”

규석이가 범수를 보며 말했다.

“아직도 못 잊는 거니?”

“안 잊혀 진다고 해야겠지. 잊은 줄 알고 있으면 다시 나타나고 그래.”

이번에는 먼 바다를 보며 규석이가 말했다.

“너도 참 대단하다.”

“그만 하자. 언젠가는 잊혀지겠지. 아니면 그 전에 정현이가 불쑥 나타날 수도 있고.”

규석이가 범수를 보며 씩 웃었다.

“나타나면? 다시 할 맘은 있고?”

“그래야지.”

규석이의 시선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있었다. 범수가 규석이의 어깨에 손을 갔다 댔다.

“갈까?”

범수의 말에 규석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발걸음은 옮기지 않고 있었다. 범수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아까 편의점에서 봤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낮은 익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저 멀리 온몸을 칭칭 동여맨 한 여자를 부축하며 걸어오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규석이는 바다를 향해 대화라도 하는 듯 계속 서 있었다. 범수는 가영이가 있는 편의점 쪽을 바라봤다. 가영이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욕심만 안 부리면 괜찮아.’

범수는 다시 규석이를 봤다. 규석이는 여전히 눈 싸움을 하듯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회나 먹으러 가자. 뭐 할 거 더 있냐?”

범수의 재촉에 규석이는 그제야 걸음을 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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