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랑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5-5.
“왜 전화했는데?”
전화벨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규석이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 출발한다고. 너 뭔 일 있냐?”
“어디가는데? 아, 아냐. 잘 다녀와라.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길게 통화 못해.”
규석이의 목소리가 불안했다.
“왜? 뭔 일인데?”
“나중에 얘기해 줄게 전화 끊자.”
규석이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범수는 끊어진 수화기 너머로 규석이를 몇 번 부르다 전화를 껐다.
“짜슥, 별일이네.”
범수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다. 초봄의 햇살이 눈부셨다.
중환자실 대기실에 정현이의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규석이는 어머니 쪽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어머니! 정현이는요?”
규석이는 인사도 하지 않고 정현이부터 찾았다.
“중환자실에. 아직 의식이 없어.”
엄마는 규석이를 보자 울면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여요?”
규석이는 중환자실과 정현이의 엄마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너 만나러 가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어서 급히 병원으로 왔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중얼거리며 너만 찾았어.”
엄마는 규석이를 탓하듯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잘 될 거여요.”
“맥박도 약하고 혈압도 많이 떨어져서 위험하대.”
엄마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규석이는 자기 때문에 정현이가 위험해 진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현이 저러다 갑자기 가버리면 어쩌나.”
“어머니 괜찮을 거여요. 별일 없을 거니 너무 걱정마세요.”
규석이는 지금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뭐라고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규석이도 불안불안 했다. 마치 이 모든 일이 자기 때문에 벌어진 거 같아 괴로웠다.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규석이와 엄마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강정현 보호자이신가요?”
의사의 얼굴이 침울해 보였다.
“네. 선생님 우리 딸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엄마는 불안한 얼굴로 의사의 얼굴만 바라봤다. 의사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희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환자 몸 상태가 너무 약합니다. 현재로서는 오늘이 고비일 거 같습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의사의 손만 잡고 울었다.
“일단 오늘은 멀리 가지 마시고 병원 근처에 계시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의사는 엄마의 손을 겨우 뿌리치고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규석이는 엄마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얘기 들었지. 오늘 넘기기 힘들다고.”
엄마가 힘없이 땅을 바라본 채 말했다.
“그게 아니고 오늘이 고비라고 오늘만 잘 넘기면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어머니 너무 걱정마세요. 정현이 잘 버틸 겁니다.”
“그 말이 그 말이잖아. 버티지 못하면 오늘을 못 넘긴다는 거잖아.”
엄마는 여전히 기운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축 쳐진 어깨를 하고 땅이 꺼질 듯 말했다.
“그러진 않을 거어요. 어머니마저 나약해 지시면 어떻게 해요. 기운내세요.”
규석이는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가영이는 교대를 하고 맥주 한 캔을 들고 늘 앉던 벤치에 앉았다. 하루가 다르게 바닷바람이 따뜻해 졌다. 일을 마치고 이렇게 혼자서 벤치에 앉아 맥주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가영이에게는 가장 행복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물론 때로는 외로움이 밀려 올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바다가 위로를 해 주었다. 맥주가 목부터 갈증을 쓸어내리며 내려갔다. 바람이 가영이의 얼굴을 스치듯 지나갔다. 머릿결이 흩날리는 느낌이 좋았다.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설렘이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거 같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되는 삶이지만, 이런 설렘이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운 느낌이 드는 거 같았다. 어느 순간 찾아온 설렘, 누군가로부터 느끼는 설렘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찾아온 설렘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거리를 좁혀 오더니 이제 밀당을 하고 있었다. 가영이는 그 긴장감이 싫지 않았다. 더 가깝지도 더 멀지도 않은 그 거리가 좋게 느껴졌다. 오늘도 연인들이 가영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영의 눈이 핸드폰으로 갔다. 아직 해질 시간은 되지 않았지만 하늘이 어둑해 졌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릴 듯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끼었다. 가영이는 맥주를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고소한 맥주의 맛이 느껴졌다.
문이 열리고 급하게 의사가 나왔다. 이번에도 엄마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강정현 보호자님!”
아까와는 다른 의사였다. 의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엄마와 규석이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사 앞에 갔다.
“강정현님 보호자세요?”
“네, 깨어났나요?”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아무래도 힘들 거 같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부르십니다.”
엄마는 서둘러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규석이도 함께 들어갔다. 정현이는 무균실 안에 있었다. 의사가 나오며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우리 정현이 어떻게 되는 거여요? 깨어날 수 있는 거죠?”
“죄송하게 됐습니다. 한다고 노력을 했지만 힘들 거 같습니다. 너무 기력이 악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상태가 더 나빠져서 얼마 못 버틸 거 같습니다.”
“선생님이 살려 주신다고 했잖아요. 우리 정현이 이렇게 보낼 수 없어요. 아직 해야 할 일도 많은 아인데.”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의사에게 매달렸다. 의사는 아무 말 없이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머니, 지금 상태로는 의식이 돌아온다고 확신하기가 힘들 거 같아요. 폐 기능도 많이 약해진 상태이고, 패혈증도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예후가 너무 안 좋아요.”
엄마는 의사를 붙들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래도 뭔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제발 좀 살려주세요. 저 꼭 봐야 해요.”
규석이도 의사를 붙들고 애원하며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고개만 흔들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 보시죠.”
의사는 엄마를 위로하며 말했다.
“들어가서 볼 수는 없나요?”
“네 그건 불가능합니다.”
규석이의 말에 의사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다른 병실로 옮겨 주실 수는 없나요? 마지막인데 그래도 손이라도 잡고 싶어요.”
“그건 좀, ……. 환자가 더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엄마의 말에 의사는 입장이 난처한 듯 말했다.
“여기서 더 치료 한다고 정현이가 깨어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선생님 제발요.”
의사는 엄마의 마지막 부탁에 의료진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신 1인실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괜찮으시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규석이도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가 계시면 병실 안내해 드릴게요. 일단 수속 부탁드릴게요. 간호사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규석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중환자실을 나왔다.
“오늘 정현이도 너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왔는데 …….”
엄마가 멈춰 서서 규석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1인실로 옮겨진 정현이는 마른 나무 가지처럼 뼈만 앙상히 남은 모
습이었다. 야위고 창백한 얼굴에 산소호흡기가 씌워져 있었고 손등에는 수액 바늘이 손가락에는 집게가 물려있었다. 정현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간호사들이 수액과 환자감시 모니터 등 각종 검사 장비를 점검한 후 병실을 나갔다. 엄마는 그제야 정현이 옆으로 갔다. 규석이가 의자를 갖고 와 엄마를 앉혔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정현이의 손을 잡았다.
“정현아 엄마 말 들려?”
정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규석이 왔어. 니가 계속 찾았잖아.”
엄마의 말에 규석이가 정현이 쪽으로 더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정현아 내말 들려? 나 규석이야.”
정현이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현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심장 박동이 아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어머니 정현이가 우리 소리를 듣나 봐요.”
규석이는 정현이의 얼굴과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왜 이제 연락했니? 널 얼마나 찾았는데.”
규석이는 정현이의 얼굴 앞에 앉아서 정현이에게 얘기를 했다.
“보고 싶었어 정현아. 하루도 널 잊은 적이 없었어.”
규석이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됐다.
“제발 눈 한 번만 떠서 나 좀 봐줘.”
하지만 정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냥 눈물만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베개 커버가 눈물로 다 젖었다.
“내말 들리는 거지?”
규석이는 정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정현아 엄마 한 번만 봐줘 눈 한번만 떠봐.”
엄마는 정현이의 손을 계속 문지르며 말했다. 심장 파동 소리가 아까보다는 조금 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혈압도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규석이가 직감적으로 벨을 눌렀다. 곧이어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한 간호사가 모니터를 보고 다른 간호사에게 빠르게 말했다.
“의사선생님 불러요. 전기 충격기도 준비하고. 보호자님들 잠깐 자리 좀 비켜 주세요.”
다른 간호사가 병실을 급히 빠져 나갔다. 간호사는 모니터를 보며 정현이의 가슴을 누르며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맥박과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간호사 뒤에서 정현이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곧이어 의사가 들어왔다. 모니터의 심장 박수는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기 충격기 연결해요.”
의사가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때 엄마가 의사의 팔을 붙잡았다. 의사는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울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사는 한동안 엄마의 얼굴을 처다 보다가 충격기를 내려놓고 나갔다. 곁에서 지켜보던 간호사들도 장비들을 정리하고 나갔다. 다시 병실 안은 엄마와 규석이만 남았다. 엄마는 천천히 정현이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정현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엄마는 정현이의 산소마스크를 때어 냈다. 그리고 정현이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아프지 말고 잘 살아. 나중에 엄마 딸로 다시 만나자. 사랑해.”
엄마는 정현이를 한동안 안고 펑펑 울었다. 규석이는 뒤에서 정현이의 옷을 쥔 채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결국 빗방울이 떨어졌다. 가영이는 손을 내밀어 떨어지는 빗방울의 촉감을 느끼고 있었다. 해변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산을 펴고 있었다. 미처 우산을 가지고 오지 못한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를 뜨거나 가영이처럼 비를 맞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맞을 만 해. 좋다.”
가영이는 웃으며 맥주 한 모금을 다시 마셨다. 비 내리는 바닷가는 때론 을씨년스럽게 보이지만 오늘처럼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은 풍경이 있는 그림처럼 느껴졌다. 가영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이제 제법 어수룩해졌다. 해변가 거리의 가로등 불도 하나 둘씩 들어왔다. 가로등에 비친 빗방울이 제법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은 어느 게 어둠이고 구름인지 구분이 안됐다.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가영이는 맥주 캔을 들고 서둘러 벤치에서 일어났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금방이라도 가영이의 온 몸을 적실 듯 내리기 시작했다. 가영이가 편의점 쪽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우산을 든 한 남자가 보였다. 희미한 모습이 왠지 낯익은 모습이었다. 그 사람은 천천히 가영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범수 오빠?”
가영이는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그 남자를 불렀다. 남자가 우산을 살짝 들어올렸다.
“오빠!”
가영이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비는 이미 가영이의 온 몸을 적시고 있었다. 범수가 서둘러 가영이 앞으로 왔다.
“우산도 없이 비 맞고 있으면 어떡하니?”
범수가 가영이에게 우산을 씌워 주며 말했다.
“오빠가 우산 갖고 나타날 줄 알았지.”
가영이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데 어쩐 일이야? 정말 내려 온 거야?”
“응. 나도 너처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서.”
범수가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며 말했다. 바람과 함께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우산이 휘청거리며 속살을 드러냈다. 범수가 안간힘을 썼지만 우산은 이미 젖혀진 상태였다,
“오빠, 그냥 가!”
가영이가 비를 맞으며 말했다. 범수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가영이의 머리에 씌워줬다.
“오빠 비 맞잖아!”
가영이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며 재킷을 걷어내려 했다.
“난 괜찮아. 갈까?”
범수는 웃으며 가영이이게 말했다. 가영이는 그런 범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가자.”
두 사람은 편의점을 항해 뛰기 시작했다. 그 뒤를 비바람도 함께 따라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