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해야만 했던 유비의 참모 제갈량

불운한 참모

by 미운오리새끼 민

제갈량에 대해서는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갈량이란 인물에 대해 한 번쯤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제갈량은 전략전술의 귀재이자 다방면으로 능통한 인재였다. 본인을 제나라의 관중과 연나라의 악의에 견줄 정도로 능력이 출중하다고 하였는데, 실제 삼국지를 보면 이들보다 더 뛰어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조직의 리더라면 누구나 제갈량 같은 참모가 자기 조직에 있길 바랄 것 같다.


제갈량은 삼국지에서 등장할 때부터 귀한 존재로 나타난다.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는데,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삼고초려(三顧草廬)이다. 다른 어느 인재도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등장하지는 않았다. 서서가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할 때 누가 부른다고 오는 사람이 아니니 반드시 찾아가서 모셔 와야 한다고 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던 유비에게 그만큼 매우 절실했기에 중요한 인물이었다.


제갈량은 유비를 만나 천하삼분론을 역설하고, 유비의 참모로 들어가서는 그동안 근거지가 없던 유비에게 촉 땅을 얻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유비가 조조, 손권과 함께 잠시나마 후한 말엽 시대에 삼국을 형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제갈량은 유비와 유선의 참모로 일하며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 냈는데, 그중에서도 백미는 적벽대전에서의 화공 전법과 연환계일 것이다. 그리고 남만과의 전쟁에서 맹획에게 발휘한 칠종칠금(七縱七擒)

의 전략과 사마의를 두렵게 한 사공명생중달(死孔明生仲達)의 전략일 것이다.


제갈량이 유비의 참모가 된 것은 유비가 삼고초려까지 하며 제갈량을 자신의 참모로 등용하고자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은 제갈량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인물로 유비를 선택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제갈량이 판단한 당시 후한 말엽의 상황은, 군웅이 할거하고 수많은 인재들이 자신이 모실 주군을 찾아 움직이고 있는 시기이지 군웅들이 자신을 도울 인재를 찾고 있었던 시기였다. 제갈량으로서는 이미 위나라의 조조 진영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즐비했기에 자신이 그 속에서 역량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조조의 성품이나 한황제를 휘하에 두고 조정을 자신의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조조는 유교적 관점으로 봤을 때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나라 손권도 이미 강동에서 3대째 기반을 형성하고 있었고, 손권을 따르는 무리들도 많아서 자신을 중용한다 할지라도 자신을 믿고 절대적으로 재량을 펼 칠 수 있도록 해 줄 거 같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유비였는데 유비는 세력도 없고 근거지도 없었지만, 황손의 후예여서 한왕조 재건이라는 명분도 있을뿐더러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리더였던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조건이 맞물렸기 때문에 제갈량은 유비를 선택한 것이다. 즉 유비에 의해서 선택된 것보다는 제갈량이 선택한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제갈량은 유비와 함께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에 유비도 모든 권한을 제갈량에게 주었으며,

제갈량이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초기 관우, 장비가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자 자신의 보검을 제갈량에게 주어 제갈량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 관우, 장비가 자신들보다 제갈량을 두둔하는 이유를 묻자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량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이치다.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제갈량 또한 나에게는 귀한 존재이니 더 이상 언급을 하지 말라."


이렇듯 유비는 수어지교(水魚之交)란 말로 자신과 제갈량은 단순한 의미 이상의 운명적인 관계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의 능력이 다른 누구보다도 출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을 때 제갈량에게 아들 유선을 부탁하며, 만약 유선이 촉한을 다스리기에 부족하다면 그 자리를 취해도 좋다는 유언을 남겼다. 즉, 역성혁명을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제갈량은 충성을 맹세하며 유선을 끝가지 도와 촉을 잘 이끌겠다고 말했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나라를 넘겨받아도 된다고 할 정도로 제갈량의 기량은 분명 유비, 유선을 뛰어넘었다. 유비가 이런 유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즉, 유비는 제갈량이 자신보다 능력이 출중해도 그를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들 유선의 역량으로 봤을 때 제갈량을 리드할 수 없는 리더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선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유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갈량에게 모든 권력을 물려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로서 아들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한 유언이었던 것이다. 또한 제갈량이 유교적 학자로서 충(忠)

과 신(信)을 우선하는 그에게 자신이 먼저 제갈량에게 권력을 넘겨준다는 말을 함으로써 제갈량에게 죽기 전 유선에게 신하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을 받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유비의 의도대로 제갈량은 끝까지 유선을 보좌했으며, 유선 또한 모든 일을 제갈량에게 의존하며 지냈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기 전까지 촉의 실질적인 권력은 제갈량이 쥐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제갈량은 유비의 유언대로 황제로 등극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미 자신이 황제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아무리 유비의 유언이 있다 할지라도 황제를 폐위하고 자신이 황제로 등극한다는 것은 처음 한왕조 재건이라는 목표로 봉기했을 때의 명분을 자기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제갈량은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상황에서 이름뿐이 황제로 등극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명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보다 능력은 뛰어났지만 황제의 자리까지 넘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승상으로서 황제의 역할까지 했던 그가 생각보다 일찍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모든 공무를 본인이 다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즉 제갈량의 죽음은 요즘 말로 하면 과로사인 것이다.


사마의가 제갈량과 오장원에서 결전을 벌일 때였다. 사마의가 싸움은 하지 않고 지구전만 펼치면서 싸움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사마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요량으로 여인네들의 옷과 장신구를 보내 사마의를 조롱했지만 사마의는 오히려 사신을 불러 제갈량의 하루 일과에 대해 묻는 대목이 있는데 사신의 말한 내용을 보면 제갈량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승상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주무십니다. 또한 상벌에 대해서는 친히 20벌 이상의 벌에 대해서는 직접 판단을 하시고 식사는 조금씩 드십니다."

사마의는 작은 일까지 모두 관여하면서 밥도 조금 먹고 잠도 조금 잔다면 얼마 있지 않아 죽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갈량은 황제 유선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고, 그 권한을 충실히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조금이라도 황제의 권위를 넘보려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충실한 신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최고의 전략가이자 유능한 재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 점에서는 훌륭한 참모는 아니었던 거 같다.


참모란 모름지기 자신만 뛰어나서는 안 된다. 참모는 리더를 보좌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인재들이 자신의 뒤를 잇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갈량은 인재 양성에서는 미흡했다.


제갈량은 유비나 유선으로부터 권한 위임을 받았지만, 그것을 자신의 부하에게는 권한 위임을 하지 않았다. 물론 황제로부터 받은 권한을 부하에게 주는 것은 불경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충성이자 자기 오만이다. 제갈량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처리해야 안심하는 성격이었다.


즉,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부하에게 권한을 위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리더의 일이 있고 참모의 일이 있듯이 각자 주어진 일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제갈량은 소소한 일까지 부하에게 지시를 하고 자기가 결정을 다 한 것이다.

부하들로서는 제갈량의 입만 바라보며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하들도 자연 어떤 일을 할 때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조직은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일은 자기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제갈량이 위임받은 권한을 자기 부하들에게 적절히 배분하여 일을 처리했다면 제갈량은 일찍 죽지 않았을 것이며, 촉은 더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갈량이 죽고 나서 얼마 후 촉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권한 위임과 인재 양성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권한 위임에는 책임이 따른다. 권한을 위임받은 부하 관리가 일을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윗사람은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책임이 무서워 권한 위임을 피한다면 인재 양성도 안되고 자신만 힘들어지게 된다.


권한을 위임하면 윗사람도 일의 부담이 줄어 다른 일이나 새로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랫사람도 자신의 부여받은 권한 내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으며, 일의 결과에 따라 조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기 때문에 조직의 성장에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권한 위임은 조직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말했듯이 권한 위임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일을 하다 보면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이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 경우 권한을 위임한 사람이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 적합하다. 이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짐으로써 권한을 위임한 사람은 끊임없이 직원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신뢰하는 분위기를 유도할 수 있다. 그리고 직원들은 윗사람의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충성을 다해 일하게 되는 것이다.


제갈량의 한계는 유비나 유선에게는 충성을 다해 일은 했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인해 자신이 모든 일을 진행함으로써 자신을 대신할 인재 양성이 안 돼 지속적인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모란 모름지기 자신의 능력만 출중하다고 뛰어난 참모는 아니다.

끊임없는 인재영입과 양성을 통해 조직이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 그래야 자신도 아름답게 물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PS : 팔방미인 참모나 리더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나라로의 통일 후 명예롭게 물러났던 장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