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든 법에 목숨을 잃은 진나라 상앙

실패한 참모

by 미운오리새끼 민

상앙은 위나라 사람으로 전국시대 진나라의 법치를 확립한 사람이다. 그는 진 효공과 함께 변법 개혁을 시행함으로써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종국에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상앙은 원래 위나라 재상인 공숙좌의 식객으로 있었다. 공숙좌가 죽기 전 자신을 대신할 인물로 혜왕에게 상앙을 추천했다. 그리고 상앙을 쓰지 않을 거면 나라에 위험한 인물이니 죽이라는 말을 했다. 위나라 혜왕은 그 말을 듣고 상앙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상앙의 인물됨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상앙을 중용하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상앙은 진나라에서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나라 효공을 만나 제왕으로서의 길과 나라의 부국강병론을 역설하였다. 효공은 이에 감복하여 그를 중용하였으며, 대신들의 만류에도 상앙의 변법은 시행되었고 진나라의 중앙집권 제도를 확립하였다.


이러한 개혁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기득권 세력에게 강력한 반감을 샀다. 때마침 태자가 사형선고를 받은 왕족을 숨겨준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때에도 상앙은

"법은 모름지기 위에서부터 지켜야 그 실효성이 있다."

고 하며, 태자를 대신하여 그를 보좌하던 장공자는 코가 베이는 형에 처하고, 그의 사부 공손고의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을 가했다.


이로 인해 기존 세력과 상앙의 관계는 더욱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처음에는 백성들도 상앙의 법 집행에 대해 만족을 했지만 법이 너무 엄격하게 적용되자 점점 상앙을 원망하게 되었다. 결국 상앙을 지지했던 효공이 죽고, 그의 아들 태자 혜왕이 즉위하자 상앙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그를 모함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상앙은 모함에 휘말려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거열형에 처해져 죽음을 당했다.


상앙이 죽음을 모면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효공이 죽기 전 조량이라는 사람이 상앙에게 왕족과 백성들의 원망이 가득하니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 여생을 편안히 보낼 것을 권유했었다. 하지만 상앙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앙은 법 집행 자일뿐이지 세상을 살피고 움직이는 기획자는 아니었던 거 같다.


역사가들은 상앙의 이런 가혹한 법 집행이 귀족과 백성들의 원성을 사서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하나, 결정적인 이유는 상앙 자신의 처세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앙이 진나라에 갔을 때부터 그를 추천하거나 지지하는 세력은 없었다. 오로지 자신 혼자 단독으로 진나라로 들어갔으며, 그가 진 효공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환관 경감을 통해서였다.


진 효공에 발탁되고 나서도 그가 추진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 대신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으며, 그들의 이해시키려는 것보다는 그들의 말을 반박하며 자신의 일을 관철시키려는 데 주력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관료들과 귀족들의 반발은 극에 달했으며, 처음에 자신을 지지했던 백성들조차 상앙의 강력한 법 집행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야 법 시행 초기라 강력한 추진력을 앞세워 개혁을 이끌어 가는 것이 맞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나라가 안정화되고 자신이 추진하는 일들이 제도화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다음에는 민심을 얻고 자신의 지지 세력을 형성해야 하는데 상앙은 오로지 진 효공에 의지해서 모든 것을 처리하였다. 상앙의 뒤에 왕이라는 강력한 지지자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반론은 제시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런 연유로 상앙은 너무 자만심에 가득 차서 자신의 이상 정치를 실현하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결국 진 효공의 죽음과 동시에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은 상앙에게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고, 이틈을 타서 반대세력은 상앙을 제거하는데 모든 수단을 동원했던 것이다.


참모는 리더를 위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리더만을 위해 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참모는 리더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리더의 이름을 빌려 자기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이에 해당하는 인물이 상앙이지 않나 싶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리더를 만나서 그를 빌미로 자신의 이상 정치를 실현한 인물이 상앙인 것이다. 자신의 뒤까지 내다보지 못한 상앙의 이런 처세는 참모로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거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 효공 또한 상앙의 몰락에 일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진 효공은 상앙의 인물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앞서 위나라의 공숙좌가 상앙에 대해 인물평을 했듯이 효공 또한 인재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 사람의 인물됨을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상앙이란 존재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컨트롤이 가능한 인물이지만, 자신의 태자가 왕위에 올랐을 경우 태자가 상대하기에는 상앙이라는 존재는 벅찬 인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상앙이 대신들과 나라의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마찰을 빚는 부분에서 때로는 한발 물러서는 정치적 타협을 발휘해야 했는데, 상앙은 오로지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효공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후에도 상앙이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경우 자칫 왕위까지 위협이 될 수 있는 인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대신들과 갈등이 있을 때에도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은 것도 향후 모든 불만이 상앙에게 몰아가게 하기 위한 효공의 전략이었을 수 있다.


변법 실행 후 나라가 안정되고 국력이 강해진 상황에서 진 효공으로서는 더 이상 상앙의 존재가 불편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재를 자신의 손으로 제거할 경우 향후 진나라로 찾아오는 인재들이 발길을 돌릴 것이라는 현실적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진 효공 입장에서는 상앙에 앙심을 품는 세력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며, 자신 사후에 자연스레 정리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진 효공의 정치력이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상앙은 효공에게 이용당한 참모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앙의 입장에서는 진 효공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상 정치를 실현하였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은 진 효공이 교묘히 상앙을 이용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반대세력들을 제거하고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토사구팽 당하는지도 모르면서 토사구팽 당한 상앙을 보면서 우리는 참모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주변을 살피며,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PS :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느껴 본 적이 있었나요? 그럴 때는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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