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성왕에게 안정적인 권력을 이양한 주나라 명재상 주공

아름다운 거리의 참모

by 미운오리새끼 민

주나라 초기 혼란기에 나라의 기반을 다진 주공은 중국 역사에서 명재상으로 뽑히는 인물이다. 주공은 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으로 무왕 사망 후 무왕의 어린 아들 성왕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이양받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인 공자도 주공을 귀감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후세의 신하라면 모름지기 표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주공의 정치적 업적은 3대 왕을 보좌하며 주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며 항상 겸손한 마음과, 왕을 능가하는 출중한 실력에도 제왕의 욕심을 한 번도 나타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역할에서 충실히 소임을 다했다는 데 있다.


이 대목에서는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두 사람 다 어린 조카 왕을 보필했지만 한 사람은 끝까지 그 소임을 다한 반면 한 사람은 어린 조카를 죽이고 결국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 사후 주나라는 자칫 왕권이 약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며,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나라의 존립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주변에서는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주공에게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하는 것보다 직접 권력의 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주공은 어린 성왕을 보필하는 길을 택했으며, 반란군을 진압하고, 오히려 정벌까지 감행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주공은 어린 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할 때, 정치, 사회 제도의 안정적인 기틀을 수립하는데 힘썼다. 그 결과 그가 확립한 행정조직은 중국의 다른 왕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주공은 인재의 중요성도 알고 인재를 초빙하고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썼다. 일례로 자신을 대신하여 노나라로 떠나는 아들 백금에게, “나는 어진 사람이 찾아오면 머리를 감다가도 그것을 쥔 채로 나가서 맞이하고, 밥을 먹다가도 그것을 뱉고 나가서 맞이했다. 그것은 유능한 현인에게 예를 다하기 위해서다. 너도 노나라에 가서 선비들을 예로써 대하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오만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또한 모든 사람을 인의(仁義)의 예로 대하였다.


주공은 성왕이 장성하자 섭정의 자리를 내려놓고, 성왕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갖추어 대하였다. 주공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았으며, 자신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모함을 받아 초나라로 유배 갔다가 모함이 풀려 다시 성왕의 부름을 받았을 때에도 성심성의껏 성왕을 보필하여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냈다.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던 주공은 오늘날에도 참모로써 반드시 갖춰야 할 본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있고, 주변의 권유나 유혹이 없을 수 없다. 주공이 살았던 그 시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을 거 같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고 욕심이 차면 리더를 위협하게 되는 것이고,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지금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충실히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주공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리더는 한 사람밖에 될 수 없지만 참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PS : 리더를 보면서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있나요? 그런 경우는 어떨 때인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신이 만든 법에 목숨을 잃은 진나라 상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