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이 강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또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의 의미는 너무 옳곧고 강하면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친하게 알고 지내는 한 선배가 갑자기 휴직을 냈었다. 몸이 안 좋아서 휴직을 낸다고 했지만, 사정은 직장 상사와의 갈등 때문이란 얘기가 있었다. 그 후 복직은 했지만 선배는 다른 부서로 배치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모임에서 선배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상사와 기획회의를 하면서 정책의 실행방향 때문에 자주 부딪히는 일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원체 할 말을 하고 사는 분이라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얘기하다 보니 상사와 충돌이 잦았던 것이다. 선배의 대쪽 같은 성격이 상사하고는 충돌을 야기했던 것이다. 결국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난다고 선배가 회의 때마다 상사하고 부딪히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발생하자 선배가 그 상사와 마주치지 않는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어느 조직이나 발생하는 일들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상사와 실무진 간에 갭(GAP)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상사가 이론적으로 접근하거나,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답이 없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김대리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데..."
"왜 안된다고 생각하죠?"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안된다고 합니까?"
이런 식의 상사의 말을 많이 봤을 것이다. 물론 상사의 말이 무조건 틀리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소통이 안된 상태에서 상사의 밀어붙이기식 정책결정은 이후 회의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든다. 그렇다고 상사의 말에 반대적으로만 대답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금 이 인력으로는 일하기 곤란합니다."
"시장 상황이 매우 안 좋아 지금 시작하다가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경쟁업체가 너무 강하게 나와서 지금 우리 계획은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회의에서 상사도 이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참모가 리더와 갈등이 유발되는 원인은 문제에 대한 상황 인식의 차이, 그리고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경험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물론 리더와 참모 간의 성격적인 차이에서 오는 이유도 있다.
참모가 리더와 정책결정 과정에서 의견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또한 리더의 잘못된 정책결정에 대해 리더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결 방법은 유연성이다. 상황에 따라서 그에 맞는 방법으로 참모가 리더에게 설명할 수 있느냐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이런 참모가 끝까지 살아남았다. 물론 앞서 말한 선배처럼 정의심과 의협심이 가득한 참모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사느니 명예롭게 죽음을 택하거나 자리에 물러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조직을 위한 올바른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은 명예로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지만, 조직이 위태로워진다면 조직 전체로 봤을 때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아 조직을 지키는 것! 그것 또한 참모로써 지켜야 할 덕목 중 하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것이 아니라 유연성이 조직에 필요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처신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전체적인 상황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때로는 그것이 잘 못된 결정이나 행동이라 할지라도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일 때 그것을 다시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다.
유연한 참모는 리더와 의견이 대립되거나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할지라도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거나 리더를 비판하지 않는다. 참모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리더의 잘 못된 판단을 비판할 경우 리더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리더와 참모 간의 갈등의 시작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때론 서로 의견이 충돌된다 할 때는 급한 일이 아닌 이상 한 템포 쉬었다 가는 것도 좋다.
그리고 꼭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라도 명분과 원칙에 입각하여, 진심과 사랑을 담아 리더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마음이 느끼도록 표현해야 한다.
사실 참모의 중요한 요건은 원칙을 갖고 바른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말이 쉽지 리더 앞에서 매사에 원칙과 바른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리더 앞에서 바른말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는 목숨까지 내걸어야 했었다.
요즘에는 그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리더와 결별은 감수해야 한다.
바른말을 할 때에도 리더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하다. 즉, 리더를 움직일 수 있는 참모가 누구냐는 것이다.
유비가 진나라로부터 옥새를 넘겨받고, 아방궁에 머물러 있을 때, 번쾌의 말은 듣지 않았으나 장량의 말을 듣고 바로 황궁을 나온 사례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장량은 이렇게 말을 했다.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일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되고,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합니다. 우리의 목적이 진나라를 벌하는 게 아니라 천하를 얻기 위한 일임을 유념하시고 번쾌의 충언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을 듣고 나서야 궁을 나왔다.
분명 번쾌나 장량 모두 같은 의미의 말을 유방에게 하였다. 하지만 처음 번쾌의 말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장량의 말은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번쾌의 성격상 자분자분하게 유방에게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불같이 화를 내며 말하지 않았을까? 물론 유방이 번쾌의 리더지만 당시 유방의 군대는 위계가 완전히 잡혀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은 숙손통이 예법을 정리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또한 같은 동네에서 형 아우 하고 지낸 스스럼없는 감정 표현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반면 장량은 군신관계가 명확한 사이였기에 유방의 심기를 살펴가며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알고 거기에 맞는 화법을 찾아서 유방에게 알기 쉽게 간언을 한 것이다.
장량이 유방의 식사 자리에서 젓가락을 이용하여 육국의 후예들을 제후로 봉하면 안 되는 이유를 반어적으로 설득하는 장면은 참모가 리더를 설득하는 과정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대왕께서는 항우를 사지에 몰아넣어 그를 제압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소."
"지금 대왕께서는 항우의 목숨을 취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소."
"대왕께서는 성인의 묘를 다시 새로 쌓고, 현인의 덕을 칭송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소."
"대왕께서는 식량과 금품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소"
"무력의 사용을 중지하고 문치를 행하여 다시는 병장기의 사용을 금할 수 있습니까, 또한 말들을 풀어 그 말들이 다시는 전쟁에 사용되지 않도록 하며 소들이 군수품을 나르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소."
"천하의 유능한 인재들이 대왕을 따르는 것은 후에 그 공을 인정받아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인데 육국의 후손들을 제후의 왕으로 세운다면 그들이 대왕을 따르겠습니까?"
장량의 말을 마치자 유방은 크게 격노하며 말했다.
"하마터면 유생 놈 때문에 큰일을 망칠뻔했구나."
장량은 안 되는 이유를 직설적이거나 자신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는 유방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유방 스스로 그 해법을 찾도록 도와준 것이다.
즉 아직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게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또한 장량의 설명은 봉건제로의 회귀를 반대하고 진나라가 시행한 군현제로의 지속적인 추진을 내포하고 있었다. 장량은 먼 미래의 국가 밑그림까지 그려가며 유방을 설득했던 것이다.
반변 범증은 성격이 급했다. 그래서 항우에게 말을 할 때도 그의 위신을 세워 주며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말을 했다. 직설적 화법은 어찌 들으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명령조로 들릴 수도 있다. 항우 입장에서 범증이 아무리 아부라 하지만 자신은 왕이고 범증은 신하인데 명령조의 직설화법이었다면 그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 배격했을 것이다.
장량처럼 비유나 사례, 반어법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조조의 참모 가후처럼 자신의 고민 형식으로 의사를 전달했던 방법도 있었다.
조조에게는 조앙, 조비, 조식 등 수많은 자식들이 있었다. 조앙은 이미 전투에서 죽었기에 다음 후계를 잇는 것은 조비가 유력하였다. 하지만 조조는 조비보다는 조식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어 했으나 대신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리하여 조조는 가후에게 조비와 조식 둘 중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장차 위나라를 위해서 도움이 될 건지를 물었다.
그러자 가후는 한참을 고민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조가 답답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무슨 고민을 그렇게 오래 하느냐? 내가 물어본 말에 아직 답을 하지 않았는데,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가후는 그러고도 한참을 있다가 말했다.
"지난날 원소와 유표가 후계자를 선택했을 때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크게 웃으며 태자를 조비로 정했다. 가후는 직접적으로 '두말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당연히 서열대로 조비로 해야지, 뭘 고민합니까?'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원소나 유표가 둘째를 선택하여 결국 패망했던 얘기를 우회적으로 조조에게 표현한 것이었다.
어쩌면 조조는 가후의 대답의 의미보다는 그가 자신을 설득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가후는 조조에게 직접적으로 조비를 선택하라고 하지 않았으나, 분명 조조에게 자신의 뜻을 간접적으로 정확히 전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리더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마음 씀씀이가 탁월했던 것이다.
장량이나 가후처럼 참모는 리더에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아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갈등 없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또한 때에 따라 급하지 않다면 바로 면전에서 하는 것보다 시간이 지난 후 서면이나 전화 등 다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사로운 욕심이 없다면 원칙을 지키고 리더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래야 조직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도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하는 참모들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자리에 연연하고 개인적인 욕심이 있는 참모는 자신의 평가와 인정에 연연하기 때문에 바른말 대신 듣기 좋은 말만 한다.
참모가 리더와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갈등 해결은 필수다. 이런 갈등이 치유되지 않고 지속될 경우, 조직은 분열될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갈등이 치유되어야만 한다.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리더와 참모 간의 정기적이고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이건 꼭 업무적인 만남만이 아니라 사적인 만남을 통해서도 두 사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역할 분담을 통해 서로 간의 업무 영역을 지켜주며 권한 위임을 명확히 하여 재량권을 줌으로써 서로 간의 갈등의 소재를 없애는 것도 필요하다. 크라이슬러의 회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로버트 이튼은 로버트 러츠의 능력과 성향을 알아보고 그에게 많은 권한 위임과 역할 분담을 통해서 서로가 좋은 협력자 관계로 남을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참모와 리더가 갈등을 치유할 수 없는 상황은 의견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다.
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나 피델 카스트로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초기 두 사람의 마음과 혁명 이후 생각의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는 쿠바를 시작으로 라틴 아메리카로 혁명을 확산시키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라틴 아메리카에는 소련식 사회주의보다는 중국의 공산화 과정을 모델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혁명이 완성된 단계가 아니란 생각에 다른 나라의 혁명에 관여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으며, 쿠바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련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체 게바라가 소련을 비난하자 소련이 체 게바라의 공직 사퇴를 주장했다. 결국 체 게바라는 몇몇 지지자들과 함께 쿠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체 게바라 입장에서는 피델 카스트로와의 갈등이 자신과 쿠바의 앞날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갈등을 키우는 것보다는 자신이 떠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자신의 삶에 있어서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던 거 같다. 참모는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해야 한다.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의 자신의 역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거 같다.
참모는 꼭 강직할 필요는 없다. 물론 직언을 할 줄 아는 참모가 조직 전체를 보더라도 리더에게는 좋은 참모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고 아무리 리더를 위해 좋은 말이라도 그게 어느 순간부터 리더의 귀에 거슬린다면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까웠던 사이도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은 결별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에 참모로서는 이점을 잘 유념해야 할 것이다.
PS : 직장 상사가 싫어할 거 같은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