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리의 참모
숙손통은 설나라 사람으로 진나라에서 박사로 임명되어 일을 하였으나, 후에는 한고조를 위해 일했다. 숙손통은 유학자였지만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리더에 따라 현실을 직시하며 대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유학자로서 책만 밝히는 고루한 이론가가 아닌 현실에 부합한 정책을 내놓을 줄 아는 현실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파악하여 거기에 맞게 일처리를 하였다. 처세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특히 참모에게 처세란 더 어렵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시류에 편승하여 묻어가는 아첨꾼이나 변절자라는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숙손통도 초기에는 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곧으면 부러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이 어지러운 전시 상황에서 강직한 성품만 갖고 옳은 말만 하고 살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재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그냥 죽임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충신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길 수는 있겠지만, 숙손통은 그 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가 강하다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주변 상황에 따라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며, 리더의 신임을 얻은 후에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이 먼 미래를 봤을 때 현명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는 참모는 리더만을 바라보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즉 구성원을 더 생각하며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로서는 백성들에게 올바른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숙손통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 예로 진나라에서 숙손통이 박사로 있을 때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호해가 신하들에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폐하 군대를 보내 역적의 무리들을 하루속히 진압하셔야 합니다."
신하들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호해는 이 말을 듣자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다. 호해가 숙손통에게 의견을 묻자 숙손통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진승과 오광은 도적의 무리에 지나지 않으니 큰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방 관리들이 알아서 잘 진압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이를 두고 숙손통이 아첨에 능한 사람이라고 하였지만, 호해가 옳은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들이었다. 숙손통의 입장에서는 진나라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바른말을 하여 죽음을 당하느니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나와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 현명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숙손통은 유방에게 인재를 천거할 때에도 현실적 처세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당시 그에게는 따르는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 제자들은 유방에게 천거되어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숙손통은 제자들 대신 유방에게 도적들과 시정잡배 등 싸움꾼들만 천거하였다. 그러자 제자들 내에서 이런저런 불만이 쏟아졌다. 숙손틍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제자들을 달랬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 전쟁터에서 유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또한 유방에게는 이미 많은 참모들로 가득한데, 너희가 그들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지 않느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너희들이 할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거라."
숙손통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생각은 평화가 찾아오면 자신과 제자들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람마다 그 쓰임 세는 분명 있다. 위기상황을 잘 극복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평화로운 안정기에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공신 세력들이 토사구팽 당하는 상황에서도 숙손통과 그의 제자들이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숙손통의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생들을 싫어했던 유방이 한나라의 통치이념으로 유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숙손통의 제자들이 벼슬을 얻어 정계에 진출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숙손통은 또한 진나라의 황실 예법이 복잡하고 어려워 이를 잘 따르지 못하는 유방을 위해 간략하게 예법을 정리하자 유방이 매우 기뻐하였다. 즉, 예법이라는 것도 따르는 사람이 불편해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예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뭐라 하면 그게 불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학문의 정통성을 무시하는 처사라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갔다. 학문이 세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거기에 맞게 예법이나 학문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학문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숙손통은 처세의 달인으로 일컬을 정도로 시대의 변화와 사람에 따라 그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고 대응했기에 결국 마지막에는 학자로서 자신의 소견을 펼칠 수 있었다. 그것을 뭐라 한다면 할 수 없다. 참모란 때론 죽음을 각오하고 리더와 싸워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죽음이 헛되이 될 걸 뻔히 알면서 죽음을 택한다면 그건 의로운 죽음이 아니다. 바로 충신(忠臣)은 될 수 있으되 양신(良臣)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때론 한 발짝 물러서기도 하고, 정 아니다 싶으면 떠나는 것도 상책이라는 것을 숙손통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PS :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처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로부터 변절자나 기회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