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참모
똑똑함과 현명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의 똑똑함은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즉, 논리적 관점에 초점을 맞춘 정의이다. 반면 현명함의 의미는 지혜롭고 사리에 밝은 것을 의미한다. 즉, 감성, 처세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갈 때 똑똑한 것이 좋을까? 현명한 것이 좋을까?
물론 둘 다 갖고 있으면 좋겠지만 이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 현명한 사람은 적다고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말 뜻은 그만큼 현명한 사람을 더 선호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똑똑한 것은 노력에 의해서 될 수 있는 문제지만 현명한 것은 성품과도 관련이 있다.
리더의 입장에서 참모를 선택할 때 똑똑한 참모를 선택할까, 현명한 참모를 선택할까?
참 어려운 질문 일수 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참모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다면 똑똑한 참모와 충성스러운 참모 중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참모를 선택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 충성스러운 참모를 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충성스러운 참모가 현명한 참모는 아니기 때문에 이 선택은 좀 다음 사례들을 보면서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는 참모로써 새로운 왕조를 건설한 인물을 찾아 나설 만큼 능력이 뛰어났다. 즉 왕이 될 만한 인물을 선택하러 다닌 것이다. 왕이 신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가 왕이 될 만한 인물을 선택하러 다녔으니 정도전의 이런 기개도 참 대단하였다.
정도전이 얼마나 뛰어난 지는 그가 건국 초기에 세운 국가 시스템이 조선왕조 500여 년 기간 동안 유지됐다는 데 있다. 이런 자만심 때문일까 정도전은 조선 개국 후 술이 취하면, “한 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이 말의 뜻은 이성계의 힘을 빌려 나라를 세운 것은 자신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정도전이 생각한 나라는 왕권 중심이 아닌 민본주의와 민생정치였다. 즉 백성이 주인이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근 470년이 지난 후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주창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정도전이 꿈꾸는 이상적인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도전은 나라를 통치하는 것도 왕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와 관료가 통치하는 재상 중심의 중앙집권적 통치체계를 지향했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그가 처음부터 이성계의 간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성계를 택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왕조를 세우는데 자신은 기획자이고 이성계는 단지 이를 실행에 옮긴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다. 때문에 실질적인 왕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오늘 날로 따지면 입헌군주제와 비슷할 것이다. 왕은 존재하지 통치하지 않는다는 그의 선진적 사고방식은 세자 책봉에서도 나타났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방원이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계승한다면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는 이방원과 끊임없이 대립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어린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어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나라의 기틀을 차질 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이방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됐으니 그의 이상 정치 실현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가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그와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범증 또한 항우와 항상 독대할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이 항우의 아부(亞父)라는 자만심에 빠져 항우를 때로는 무시하고, 자신 주변에 자신을 도울 지지세력을 키우지 못한 이유로 결국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항우의 친척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이 더 큰 이유라 할 것이다.
유방과 번쾌는 같은 마을에서 형님 아우 하며 자랐지만, 번쾌도 유방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장량에게 말을 하여 유방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진나라의 궁궐을 접수했을 때 번쾌가 몇 번 만류해도 유방이 궁을 떠나려 하지 않자 이를 장량에게 알렸고 장량은 유방을 설득하여 궁을 나올 수 있게 하였다.
자만심과 공명심 하면 한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나친 자만심으로 유방 앞에서 항상 자신을 뽐내고 은근히 유방을 무시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유방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통일 후 유방에 의해 모든 권력을 잃고 죽임까지 당하게 됐다. 한신은 군사적으로는 뛰어난 판단력과 위기 상황에서 돌파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장수이자 참모였지만 정작 명예욕 때문에 2인자의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비운의 참모라고 할 수 있다.
시대 상황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함에도 한신은 한때의 공명심에 사로잡혀 한왕조 건설 이후에는 사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일례로 초나라 왕으로 갔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했던 것은 과거 자신을 보살펴 줬던 사람들에게 은덕을 베푸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치욕을 줬던 사람에게까지 후한 대접을 하였다. 이런 그의 행동은 그가 마음이 넓은 군자의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과거 못났던 한신이 이렇게 출세를 해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으니 그의 배포가 군사적인 면 이외에는 참 옹졸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자기 PR 시대라고는 하지만 참모에게 있어서 자신을 내세우는 행동은 과거나 지금이나 금기 사항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리더보다 낫다는 생각은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똑똑함과 능력 있는 참모보다는 현명함과 충성심이 리더에게 더 다가가고 신뢰할 수 있는 참모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S : 리더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참모는 조직을 떠나야 할까요, 남아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