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성공으로 이끈 참모
풍도는 주군에게 말을 할 때 직언보다는 상황을 보면서 말을 하였다. 이것은 풍도가 5대 왕조 열두명의 황제를 모실 수 있었던 계기가 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를 기회주의자나 변절자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즉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직언을 안 하고 주군에 이로운 말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풍도는 사실 누구보다도 주군에게 바른말을 하였던 사람이었다. 단 앞서 이야기했듯이 상황에 따라서 말의 표현을 달리 하였을 뿐이다. 그 예로 풍도가 황제가 되려고 하는 연의 유수광에게 제왕의 도를 설명했던 내용을 보면 최소한 아첨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유수광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제가 되고자 하신다면 언제든지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진정 황제가 되고자 한다면, 황제가 된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백성을 어떻게 편안하게 살게 할 것인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단지 황제라는 허울 때문에 황제가 되려 해서는 안됩니다."
이처럼 풍도는 황제가 되려면 황제의 자리만 탐해서는 안되고, 상대방과 백성들에게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였던 것이다.
풍도는 군주에게 말을 할 때 흥분하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투는 항상 차분하였으며,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자신의 흥분을 가라 앉히고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전달 방식이 군주들로 하여 그를 죽이지 않게 했던 것이다.
절제된 감정표현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말투의 감정 변화는 상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흥분해서 말을 할 경우 대부분 같이 흥분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상대가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받아들여 이에 대해 방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가 차분하게 조목조목 얘기를 한다면 설령 내가 흥분했다 할지라도 그 감정을 누그려 뜨리고 상대의 말을 차분하게 듣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상대가 주군인 경우에 같이 흥분해서 말을 했다가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한 것이 아닐까?
풍도는 간언을 할 때에도 사람과 상황을 봐가면서 한다고 했는데 이때 비유적인 표현을 잘 활용하였다. 후한(後漢)의 유지원이 정권을 잡았을 때였다. 그의 부하들이 백성들에 대한 횡포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유지원에게 간언 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칫 잘 못 말했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풍도가 나서서 말했다.
"변랑성은 복숭아밭과 같습니다. 그 전에는 다른 사람의 것이라 복숭아를 따던 나무를 자르던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폐하의 것입니다. 복숭아를 따는 것은 관계없으나, 나무를 잘라 버리면 다음 해에는 복숭아를 먹을 수 없으니 그게 걱정이 됩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어 비록 학식은 적었지만, 풍도의 말의 의미를 알고 유지원은 부하들에게 더 이상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풍도는 이처럼 상대를 봐 가면서 말의 표현을 사용했기에 상대도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식이 부족한 사람에게 고급스러운 말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자신을 무시하고 훈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풍도는 상대방의 그런 상황까지 고려하면서 간언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상대의 마음까지 읽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한편 풍도는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신하의 억울한 죽음을 살리기 위해 간언을 하기도 했다. 후한 때 과거 우피법을 위반한 죄로 이를 집행하지 않은 하급관료와 죄인들을 죽이라는 명이 내려졌다. 이에 풍도는 유지원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런 사태가 올 정도로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 자신의 책임도 있으니 신도 함께 죽여주십시오"
이런 풍도의 노력으로 결국 그들은 살 수 있었으며,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았다는 것은 잘 못된 얘기가 아닌가 싶다.
PS : 당신의 리더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