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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로써의 풍도 7. 백성을 위한 참모

리더를 성공으로 이끈 참모

by 미운오리새끼 민

풍도가 살았던 시대는 어느 한 절대권력이 지속적으로 통일 왕조를 이루기에는 군왕들의 능력이 부족했었으며, 군왕을 뒷받침할 참모나 지지세력 또한 미비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풍도의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풍도는 "천하에 현명한 인재가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인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한다"라고 했다. 그만큼 인재를 알아보는 군왕들의 능력이 부족했고, 이 때문에 군왕을 보좌할 참모들이 부족했고 결국 지지기반의 약화는 왕조의 붕괴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쉽게 황제가 바뀌고 새로운 왕조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풍도 그 자신도 군왕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한 나라와 한 군왕의 신하로 지속적으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 것은 군왕이 아니라 바로 백성이었던 것이다. 그는 전란의 상황에서 아무 죄 없는 백성들이 가장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풍도의 스타일이 위기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고 안정시킬 수 있는 참모라기보다는 평시에 안정된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참모 스타일이어서 그런 거 같다.

참모의 능력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하수의 참모는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중간의 참모는 다른 것에는 관심 없고 오직 자리만 지키는 것에 만족하며 복지부동한다. 상수의 참모는 백성을 위하고 사심 없이 일을 하는 것이다. 충이란 군주에 대한 충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충인 것이다. 풍도를 욕하는 이는 군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일 뿐이다. 나라가 바뀌고 왕조가 바뀐다고 백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즉, 백성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으며, 그 사람들이 없이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풍도는 잘 알고 백성을 섬기는 정치를 했던 것이다.

이런 섬김의 정치는 그의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던 것이다. 풍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을 무시하지도, 속이지도 않았으며, 도움을 줄 때도 누구를 존경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모함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뽐내지도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화내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의 화를 돋우지도 않았다.

또한 풍도는 급여를 받으면 자신이 쓸 만큼만 갖고 나머지는 자신의 수하와 하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러한 이유는 그게에 재화란 그냥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지금 자신에게 들어온 재화는 자기 것이 아닌 잠시 자신의 수중을 거쳐가는 정도로 봤다.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재산이 있는 들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몰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재물에 욕심을 내는 것보다는 그 재물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인심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하인들은 풍도를 칭찬하였다.

풍도는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보다는 백성을 위했다. 그는 자신의 묻힐 곳을 농작물을 심을 수 없는 곳으로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예나 지금이나 묘자리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도 후손들을 위해 조상들의 묘를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명당을 찾는데 풍도의 결정은 이것과는 대조되는 결정이었다.

풍도가 있었던 5대10국 시대에 살았던 백성들은 혼란과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풍도가 있었기에 그나마 그 혼란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유 없이 죽음에 내 몰린 백성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을 위한 정치였으며, 조금이라도 백성들을 위하고자 그는 여러 명의 황제를 모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PS : 풍도의 삶은 정말 오늘날에 꼭 필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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