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간 참모 제갈량

by 미운오리새끼 민

제갈량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참모로써 단순한 2인자가 아니라 리더와 대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면서도 리더의 위치를 넘보지 않았던 인물이다. 리더에게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참모였다.

그는 천하삼분지론을 내세우며 유비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조조와 손권이 갖지 못한 인화(人和)를 바탕으로 패업을 이룰 것을 말했다. 유비가 제갈량을 만났을 당시 유비에게는 군사도, 근거지도, 자신을 따르는 무리도 없었을 때였다. 제갈량은 그런 유비에게 자신의 계책을 설명하며 유비에게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각인시켰다.

유비의 수하로 들어갔던 초기 관우 장비 등이 제갈량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때 그는 2인자로서의 존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유비의 검을 앞세워 자신의 명령이 곧 유비의 명령임을 알림으로써 관우 장비도 제갈량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했다. 제갈량이 본격적으로 유비의 2인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는 시기였다.

제갈량은 1인자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지만 누구도 자신의 2인자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제갈량은 권력 서열의 자리를 확실하게 한 것이다. 사실 제갈량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관우가 유비 세력에서는 2인자였다. 그러나 그 틈을 제갈량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한낱 서생이 불과하다고 생각한 제갈량이 자신의 자리를 넘보았을 때 제일 불쾌하게 생각한 이가 바로 관우이다. 물론 서열 3위였던 장비도 못마땅해했지만 장비가 서서히 제갈량을 받아들일 때에도 관우는 마음으로 제갈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적벽대전 이후 상황은 역전된다.

당시 관우는 조조의 수하에 있다가 유비의 식솔을 이끌고 유비에게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제갈량은 관우가 신의가 강하고 온정적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적벽에서 조조를 잡을 마지막 싸움에 관우를 투입할지 여부를 고민하는데 이는 제갈량이 관우를 누르고 2인자의 자리를 확실히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

사실 제갈량이 조조를 잡으려고 맘을 먹었다면 그 자리에 장비를 배치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그렇게 하지 않고 관우를 배치하면서 조조를 풀어줄 것이라고 걱정하며 은근히 관우의 의협심을 자극했다. 이에 관우는 군령장까지 써가며 반드시 조조의 목을 베어 오겠다고 장담을 했다. 결국 관우는 화용도에서 조조를 풀어주었다.

이것으로 제갈량은 관우마저 확실히 자신의 수하에 둘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천하삼분의 지형을 만들 수 있었다. 적벽 싸움의 목적은 손권과 유비가 조조를 치기 위한 전쟁이었지만 사실은 유비에게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당시 상황으로 조조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유비가 한나라를 재건할 수 있는 세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제갈량은 화용도에서 조조를 죽이면 손권의 세력이 득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조조 한 사람만 죽인다고 위정자들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과거에도 동탁, 여포 등 절대권력의 한 사람이 죽었다고 모든 위정자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갈량 입장에서는 조조를 당분간 살려둠으로써 손권이 쉽게 조조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또한 유비와 공동 전선을 펼칠 명분을 만들어 줌으로써 유비의 근거지 확보에 도움이 되었다.

제갈량의 이런 행보는 그가 얼마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자기 주도로 판세를 이끌어가는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실질적 2인자였던 관우마저 제압한 상태에서 제갈량에게는 더 이상의 경쟁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황제보다 더 높은 권위를 지녔던 절대권력의 소유자였다. 제갈량은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었으며, 유비를 도와 함께 일했던 수많은 장수와 책사들과 함께 공존하며 나라를 이끌어 갔다.

어진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고 했다. 제갈량은 자신의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주군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제갈량은 항상 주군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자신의 뜻과 어긋난다 할지라도 유비가 명분을 갖고 도리에 어긋난다 하면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나중에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뒷수습을 잘 마무리했다. 또한 유비가 마음을 읽고 유비가 뭔가를 하고 싶으나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망설이는 일든은 자신이 실행하고 나서 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유비의 명분도 챙기고 자신들의 실속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제갈량은 유비를 리더로서 깊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를 대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뛰어난 2인자는 자신의 리더를 선택할 때 지금의 영화로운 모습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가 자신과 함께 이루어 나갈 업적을 바탕으로 선택해야 한다.

PS : 조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참모로써의 풍도 7. 백성을 위한 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