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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유는 왜 십족을 멸하는 형벌을 받았을까?

실패한 참모

by 미운오리새끼 민

"구족을 멸하겠다"
명나라 주체가 방효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방효유는 이렇게 되받았다.
"구족이 아니라 십족을 멸한다 해도 역적과 손잡을 수 없다"
결국 그의 이 말 한마디는 끔찍한 결과를 야기했다.
그는 그가 보는 앞에서 혈족은 물론 그의 지인과 문하생 등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죽는 것을 목격하고 마지막으로 죽임을 당했다.
주체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탓하지 말고 저승에 가서 방효유를 탓하라."
당시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한 사람이 900명 가까이 되었다고 하니 한 사람의 절개를 지키기 위한 몸값 치고는 너무 비싼 희생의 대가가 아니었나 싶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추앙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죽은 사람들까지 모두 충신으로 불리고 있을까?
그는 과연 왜 이런 극단의 선택을 했었을까?

방효유는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숙청이 빈번했던 시기에도 죽지 않고 목숨을 유지하며 회유를 받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그가 숙청을 당하지 않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상황이 그를 지탱해 주었다.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는 장남 주표가 죽자 어린 황태손의 안위를 위해 수많은 공신들을 숙청하였다. '가시 많은 나뭇가지는 손으로 잡을 수 없다'라는 유명한 일화는 홍무제가 아들 주표와 황태손을 지키기 위해 공신들을 제거하면서 나온 얘기다.

결과론적으로 수많은 공신들이 숙청을 당하게 되자 주변에 훌륭한 대신들은 모조리 사라지게 되었고 자연 황제의 지지기반이 크게 위축된 반면에 변방의 황족들의 지지기반은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공신들이 숙청을 당한 상황에서 학문적 명성과 권위를 가진 신하들이 부족하자 방효유의 입지는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다.

주체 자신을 제거하려고 했던 주역인 방효유를 죽이지 못하고 회유한 이유나 주체의 책사 도연마저도 방효유를 죽이면 학문의 씨가 말라서 안된다고 간청을 할 정도였으니 그 당시 인물이 얼마나 귀했는지 알 수 있을뿐더러 그의 명성 또한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권력을 쥔 황제마저도 그를 어려워했던 것이다.

이처럼 방효유가 숙청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결과론적으로 황제라도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란 자만심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그를 그렇게 시대가 이끌었을 수도 있다. 그의 명성은 이미 유생들과 온 나라에서 알아주는 터라 그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정당성이 결정될 수 있었다. 그래서 주체도 자신의 조카를 몰아내고 황제로 오르기 위한 정당성을 방효유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권력의 힘도 중요했지만 명분도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시대상황에서 그의 결정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당시 유생들에게 제일 덕목은 지조와 절개였다. 특히나 방효유처럼 명망가로 소문난 이들에게 지조와 절개는 목숨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결국 방효유를 죽인 것은 그가 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든 사회 상황이지 않나 싶다.

사실 방효유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끝까지 지조와 절개를 지켰던 이유도 그의 동생이 죽어가면서 방효유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의 동생이 죽어가며 방효유를 원망했다면 어땠을까?

방효유가 끝까지 포기 못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주변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을 저버리고 주체를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900여 명에 가까운 이들이 모두 방효유를 지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체도 죽어서 방효유를 원망하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했을 거 같다. 하지만 원망하는 사람들보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방효유가 끝까지 실리보다는 명분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내용이 있다.
방효유의 죽음이 주체를 황제로 등극 못하게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연 그것이 함께 죽은 이와 백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명분에서는 방효유가 맞을지 모르지만 실리적 측면에서는 그러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실리를 택해서 더 좋은 정치를 했다면 백성들의 삶은 더 좋아지지 않았었을까?
비록 한때 변절자나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욕을 먹을지언정 그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나아진다면 그게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을까?

정치는 군주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명분인 것이다. 어찌 보면 절개와 지조는 작은 명분이고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는 더 크다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방효유는 백성을 위한 충신이 아니라 건문제 한 사람의 충신이었던 것이다.

영락제의 아들 주고치는 방효유를 충신으로 평하였다.
방효유가 십족을 멸할 정도의 역적에서 바로 다음 황제 때 충신으로 바뀔 수 있는 것도 황제의 입장에서는 방효유 같은 신하가 자신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지금의 신하들에게 방효유처럼 살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즉, 황제 자신도 언제든지 건문제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방효유 같은 충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방효유가 건문제의 충신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건문제의 충신인 것이 아니라 유학의 의미에서 절개를 지킨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누구를 위한 죽음이 아닌 자신을 위한 죽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그의 죽음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자신을 위한 죽음이었으며 그 자신을 위해 9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참모는 리더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하지만 그 헌신이 조직과 리더를 위한 헌신인지 리더 개인을 위한 헌신인지는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PS : 내가 방효유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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