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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헤드의 소회

#100일 챌린지를 읽고 뼈를 맞아버렸다.

by 오리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을 하다 반 남자 학우에게 "에그헤드"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에그헤드라 함은 지식인이나 학구적인 사람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로, 지적인 면은 있지만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을 묘사할 때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이렇게 에그헤드에 대한 자세한 뜻은 몰랐고, 어쨌든 한편으로는 똑똑하다는 의미이니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칭호라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에그헤드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비하적 의미나 폭력성(?)을 알게 되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에그헤드적인 면모가 걸림돌이 되기 시작하면서 에그헤드라는 단어는 나의 그림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종의 콤플렉스나 취약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데이터 분석가로서 그 누구보다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액션 아이템을 도출해서 조직에 기여해야 하는 미션을 갖고 있음에도, 어떤 이론을 기반으로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도출하는 내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행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고, 특히나 잘 모르는 분야를 접했을 때 무작정 실행해 보기보다는 책이나 인터넷 강의로 이론적 토대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 보니 배움의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또 다른 자기 비난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에 비해 속도가 느리지?)


챗GPT를 이용하면서도 이런 면모가 드러났는지,

챗GPT.PNG

효율과 임팩트 면에서 노력이 부족하다는 뼈를 맞기도 했다. 실행력에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보니 실행력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러나 에그헤드답게 바로 실행하기보다는 실행하는 사람의 레퍼런스를 읽는 쪽을 택했고 그러다 만난 게 오츠카 아미가 쓴 #100일 챌린지라는 책이었다.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상경대 재학생이던 "오츠카 아미" 님이 매일 100일 동안 챗GPT로 프로그래밍한 결과물을 하나씩 X(구 트위터)에 업로드하면서 배웠던 점이나 느꼈던 점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실천하는 사람의 실천하는 자세를 배우거나, 챗GPT를 잘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책을 읽기 쉽지 않았다.


책이 어렵게 쓰였거나, 번역이 이상해서 읽기가 어려웠는가? 전혀 아니다. 어려운 문장도 없고 개인의 생각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식으로 쓰여서 맘 잡고 읽으면 하루에도 쭉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어려웠던 건 나의 그림자를 책이 자꾸 건드렸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며 만들기 시작한 게임이 교수님의 관심을 받고, 이후 교수님의 지원을 받으면서 학회나 논문을 작성하던 모습이나,


교수님들 앞에서도 그닥 쫄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주인공적인 모습이나,


프로그래밍 지식은 몰랐지만 챗GPT를 사용하게 되면서 클래스와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상태 관리, 클래스 다이어그램 및 디자인 관리 등의 프로그래밍 지식을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모습이 묘하게 콤플렉스를 자극했다. 작가 본인은 본인의 재능이 썩 뛰어나지 않은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이 또한 재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매일 만들고 싶은 게임이나 프로그램이 떠오르고, 여기에만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내는 것(잡생각이 그닥 없음),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며 만든 프로그램을 교수님에게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는 패기,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매력(?)을 갖춘 것이 재능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사회에서 말하는 (고정된 관념에서의)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 묘하게 내 심술을 자극했다.


나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신 있는 건 사회에서 말하는 성실함이나 책임감인데, 그것만으로 인정을 받을 정도의 재능을 갖추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에그헤드로서의 자격지심을 건드리는 이 책에서 묘한 불편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매일 자신의 작품을 업로드하는 근성과 집중력, 실행력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작가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에그헤드"인 나에게는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졌다. 모르는 것을 바로 시도하는 것이나 풀고 싶은 문제가 계속 떠오르는 실행력이 내게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9일 오후 12_39_49.png


단초를 얻기 위해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챗GPT를 써본다. 먼저 에그헤드가 가진 장점을 살리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매우 열심히 공부하고 학문적인 사람이지만,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Egghead"는 지식인을 지칭하는 매우 비공식적이고 약간 모욕적인 이름을 의미합니다. 이런 뜻이 에그헤드인데, 에그헤드가 가진 장점이 있을까..


챗GPT는 답한다.


1. 깊이 있는 분석력 : 표면적인 정보가 아니라 근거와 원리를 이해하려고 함. 복잡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석 가능

2. 폭넓은 지식 기반 :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아 아이디어 연결 및 융합이 가능.

3. 비판적 사고력 : 논리와 근거로 판단하여 의사결정 시 위험 요소를 사전에 감지할 확률이 높음.

4. 문제 해결을 위한 추론 능력 :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능력.

5. 집중력과 자기 주도 학습 : 좋아하는 주제에 몰입하면 엄청난 학습, 연구 속도를 보임. 스스로 동기부여가 가능해 외부압박 없이 오래 탐구 가능.


문제를 찾고, 바로 실행하는 능력보다는

기존의 지식을 의외의 조합에 써먹는 것, 갖고 있는 프레임워크에 맞춰 문제를 파악하는 것,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사전에 탐지하여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좀 더 내가 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이를 살리면서 실행력을 높이는 전략을 세워야겠다.


이론을 공부하면 이걸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하여 이를 실행 가능한 행동 목록으로 번역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진행률이나 결과물을 가시화하여 내가 뭐라도 실행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

떠오른 아이디어를 최대한 작은 액션으로 쪼개서 두려움에 대한 허들을 낮추는 것

은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전략을 토대로 나도 나만의 챌린지를 이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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