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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Sep 26. 2020

경기 유랑 김포 편 4-3(장릉)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김포

멀고 먼길을 돌아 드디어 김포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사우동에 도착했다. 김포 한강로를 타고 오른쪽으로 꺾자 마자 시청까지 직선으로 쭉 길이 나있는데, 신호를 받지 않고 시청까지 쭉 달리다 보면 마치 내가 시장이 되는 듯한 권위주의 의식이 일어난다. 그 당시 협소한 김포시가지였으니 예전에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건물이 더욱 위압감이 들터 모름지기 관공서는 시민이 언제든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도시 한가운데 광장에 위치해야 한다는 게 나의 주관이다. 김포는 여기저기 5일장은 열리고 있으나 이렇다 할 상설시장은 없는 편이고 사우동 자체도 말이 구시가이지 여행자의 눈으로 본 나에게도 특별하다고 싶은 장소는 없었다. 아니 축구팬이라면 조금은 관심 많을 장소가 시청 가기 전 김포 종합운동장 구석에 자리해 있다.

우리 세대는 조금 낯설지만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는 익숙한 60,70년대의 축구영웅 이회택  리가 바로 그곳이다. 소싯적에 K리그에 관심이 있던 나로서 솔직히 이회택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못하다. 전남 드레곤즈 감독 시절에 구태의연한 뻥축구를 남발해서 축구를 보다가 졸기도 했었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시절에는 이른바 꼰대 발언을 종종 내뱉는 바람에 축구계의 악의 축 이미지로 굳어져갔었다.

경기장 앞에는 축구인 이회택의 동상과 주요 활약들을 표시해 놓았고, 그의 행적을 쫒아가는 표지판도 있어서 축구영웅으로서 이회택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서 의외로 너무 좋았던 현장이 된 것 같다. 이회택은 선수 시절에는 엄청난 반항아였고, 사고를 종종 치기도 하였으나 감독 시절에는 자기를 반면교사 삼아서 덕장처럼 선수를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너무 이미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렇다고 김포 구시가에 볼 게 전혀 없는 게 아니다. 김포 여행지의 터주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김포 장릉이 시청 언덕 넘어 양지바른 뒷산에 자리하고 있어, 문화재로서 뿐만 아니라 김포시민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이지만 여기에 묻혀 있는 왕은 살아서는 왕이 되지 못하고 죽어서 왕이 된 분이다. 일명 추존왕이라고 하는데,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왕릉이다.(인조의 왕릉도 명칭이 장릉이다.) 협소한 주차장과 입구에 비해 부지가 꽤 넓었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넓은 잔디밭이 우리를 반겨준다.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존된 산림들은 백성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울창한 숲을 만들었고, 왕에서 시민들로 주인이 바뀌면서 나무 사이를 거닐면서 꽃도 감상하고 호수 주위에서 사색에 잠길 수 도 있다. 하지만 언덕 너머 봉분과 석장이 위치한 지역만 최후의 보루를 사수하듯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도심에서 언덕만 넘었을 뿐인데 이런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김포시민으론 큰 축복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중년 남성의 탄식소리가 나의 귀를 자극했다. “ 시청 뒤편에 이런 공간이 있었네 참 아깝다 아까워........” 아깝다고?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조용히 그 사내의 대화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여기를 싹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얼마나 좋아 집값도 잘 오르고 시청 뒤편이라 분양도 잘 될 텐데, 무덤 하나 때문에 여기 다 묶였네 쯧쯧... ” 순간 얼굴이 빨개 지고 가슴속에서 소리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우리나라가 아파트 공화국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조건 개발, 새로 짓는 게 능사인 물질만능, 개발주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 덕분에 종로의 피맛골이 사라지고 있으며, 특색 있는 거리들도 점차 획일적인 프랜차이즈로 도배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다행히 지정이 되어서 주변 경관이 잘 보전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조선 왕릉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이어가기로 하고, 김포의 현재와 미래라고 할 수 있는, 한강 신도시를 향해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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