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도시 안양으로 향하는 여정
서울 남부에는 기껏해야 서울의 구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경기도의 도시들이 대거 몰려있다. 군포, 의왕, 과천, 안양 등 좁은 면적의 도시들이 마치 서로를 보호하는 것처럼 붙어서 연담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 도시를 상징하는 무언가를 떠올려보면 다소 희미해 보인다. 그나마 과천은 서울대공원과 정부청사로 인해 이름 자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소개할 안양이란 도시는 어떤 이미지가 있을까? 사실 안양이란 이름 자체는 꽤 익숙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하시는 분들은 우선 예전 수원 삼성과 안양 LG의 축구경기인 지지대 더비도 떠오르고, 현재 안양을 연고로 하는 스포츠팀도 꽤 있다. 그리고 안양 출신 연예인도 어느 정도 있고, 안양예고를 나온 수많은 스타들도 매체에 나와 안양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보려고 혹은 여행을 위해 굳이 안양을 찾아갈 만한 도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나도 그런 대다수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간단하게 다른 도시들과 함께 엮어서 안양일번가만 간단하게 다룰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안양 시내 곳곳에서 시를 상징하는 색깔인 보라색 색감이 왠지 개성 있어 보였고, 심미안(審美眼)도 훌륭해 보였다. 이 도시가 가진 내공과 비전이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을게 분명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옛 안양유원지에서 안양을 상징하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은 안양 예술공원으로 향했다. 제2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광명을 지나 석수 ic로 나오면 만안교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안양은 동안구와 만안구로 나뉘어 있는데 안양 1번가, 중앙시장, 안양 예술공원 등의 명소가 만안구에 있고, 흔히 평촌신도시라 불리는 안양시청과 범계, 평촌역 인근을 동안구라고 한다. 만안교에 대한 별다른 정보는 없었지만 추측컨대 만안구의 이름으로 쓰일 정도면 단순한 다리는 아닐 것 같았다. 안양 예술공원에 가기 앞서 만안교란 곳을 한번 들르기로 했다.
▲ 조선 후기 정조시절 건축된 만안교 조선 후기 정조 시절 건축된 만안교는 정조대왕이 수원으로의 능행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변함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건너가는 살아있는 역사 유적이다.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만안교 가까이 접근해 보니 누구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고풍스러운 무지개 돌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그 다리의 연혁이 새겨진 듯한 비석이 우뚝 서있었다. 안양을 관통하는 안양천의 지류인 삼막천을 가로지르는 만안교는 조선시대 정조가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축조한 다리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 화성, 융릉을 가려면 한강을 건너 노량진을 지나 사당, 과천을 통해 가는 것이 가장 빠른 루트였지만 중간에 교량이 많고 남태령 고개를 넘어야 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금천구에 위치한 시흥행궁을 거쳐 안양으로 가는 경로를 택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조선의 인프라에서는 다리를 놓아서 건너는 게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왕이 지나가는 길에는 그래도 임시로 나무다리를 놓았다가 철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행차가 끝나고 다시 철거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정조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편히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안교라는 돌다리를 짓게 되었다.
만년 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처럼 만안교는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다리를 건너 왕래하고 있었다. 물론 원래 다리의 위치는 현재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400미터 떨어진 석수로의 교차점에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정조대왕도 이 다리를 통해 남쪽으로 향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조대왕의 겪었을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다리를 건너본다. 지금도 삼막천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다리 근처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안양에서 기대도 못한 첫 만남을 가진 후 이 도시가 가진 내공과 매력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 계곡을 따라 안양 예술공원으로 들어간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가에 자리 잡은 안양 예술공원은 여기가 안양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울창한 숲을 자랑하기에 평일에도 수많은 산객들이 여기를 방문한다. 예전에는 여기가 안양유원지라고 불렀다. 예전 서울 사람들도 안양을 몰라도 안양유원지는 알 만큼 이 유원지의 명성은 정말 대단했었다.
▲ 안양예술공원의 풍경 구 안양유원지 였던 안양예술공원은 수많은 작품들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다. 계곡을 따라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가 보자
서울에서 머지않은 곳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그 당시 슬라이드까지 갖춘 수영장도 있었다. 게다가 유원지의 길목에는 대규모 먹거리촌이 형성되었다. 당연히 수많은 인파로 붐벼서 하루에 4만 명이 방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연은 갈수록 훼손되었고, 특히 홍수로 인해 자갈 토사로 주위 환경이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시설은 점점 낙후해지고 유원지의 퇴락은 막을 길이 없었다. 안양시는 도시 전체의 브랜드 재고를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마침 안양에 자리 잡고 있던 공장들이 대거 지방으로 이전했던 상황과 맞물러 2005년에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시작하게 된다. 안양이라는 도시 전체를 미술작품으로 채우는 거대한 갤러리로 만드는 대형 시도였던 것이다. 그 프로젝트의 중심 공간이었던 장소가 바로 옛 안양유원지이며 지금의 안양 예술공원인 것이다. 공원 곳곳에 예술작품을 설치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산책을 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 안양박물관의 전경 구 유유산업 부지와 건물들을 활용해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단지로 새롭게 조성되었다. 그 중 안양박물관은 안양의 역사에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안양 예술공원의 초입에는 유유산업이 있던 공장의 건물을 그대로 활용해서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안양 박물관과 김중업 건축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유유산업이 있었던 공장의 공간은 안양의 역사에 있어서도 특별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우선 안양이라는 도시의 명칭의 유래에 잠시 짚어보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물론 다른 이설로는 조선시대에 정조대왕께서 부친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가설한 만안교의 안(安) 자와 함께, 양(養) 자는 후세 사람에게 인륜의 근본인 효의 뜻을 살리기 위해 쓰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유유산업이 있던 공장부지를 발굴 도중 안양사 명문 기와가 발굴되어 고려시대의 안양사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안양의 유래가 만들어진 곳이 바로 유유산업 부지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유산업의 공장 건물도 한국 근현대 건축의 거장인 김중업씨가 1959년 설계한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
▲ 구 유유산업 부지에 남아있는 안양사지 터 구 유유산업 부지를 발굴하던 중 안양의 유래라 할 수 있는 안양사지의 터가 발견되었다. 그 터를 보존하면서 김중업이 건축한 유유산업의 건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땅속에 숨어있는 안양 사지의 주춧돌을 꺼내기 위해서 공장 건물의 파괴는 막을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노력 끝에 공장 건물 두동은 보존하여 각각 안양 박물관과 김중업 건축박물관으로 새롭게 변모하게 되었고, 안양 사지의 건물터는 땅속으로 다시 세상에 드러나는 묘수를 찾은 것이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고대와 근현대의 문화재의 공존을 여기서 이룬 셈이다.
▲ 안양박물관에 남아 있는 안양사지 발굴 유물들 안양박물관에는 기왓장이나 초석 등 안양사지에서 나온 발굴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고대에 안양이 불교문화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우선 안양이란 도시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안양 박물관으로 들어왔다. 공장 내부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린 듯한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선사시대 유물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안양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안양 사지에서 발굴된 기와 파편들이 정말 인상 깊었다. 근대에 안양은 공업도시로서의 명성도 높았지만 동양 최대의 종합 영화촬영소인 안양 촬영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박물관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러한 내력들이 지금의 안양을 예술도시로서 가꾸게 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옥상에는 삼성산과 관악산은 물론 안양 사지 터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도 자리해 있다. 본격적으로 안양의 속살을 함께 파헤치는 여정을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