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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02. 2020

경기 유랑 파주 편 3-1 (용미리 석불 입상)

파주로 가는 길

서울 사람들에게 파주란 도시는 어떤 의미일까? 판문점으로 대표되는 dmz의 상징성이 크기도 하고, 최근 운정신도시로 인해 부동산의 핫이슈로 회자되기도 하지만 근교 여행지로 무척 각광받고 있다.


파주 프로방스를 시작으로 헤이리 예술 마을, 출판단지 등 이색적인 명소가 많이 생긴 덕분에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바람도 쐬고 커피 한잔 하러 기분전환의 장소로 가지만, 나중에 다뤄보기로 하고 시계를 조금 앞으로 돌려서 조선시대의 파주에 대해 조금 더 탐구해 보기로 하자.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가는 주요 통로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파주를 길목으로 거쳐갔었고, 왕가의 묘택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중국 사신들이 고양의 벽제관을 지나 혜음령을 넘어서 파주로 가는 길목에 고려시대 당시 그 당시의 국립호텔이라고 할 수 있는 혜음원을 건설했다.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사신들이 여길 거쳐가면서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겨 놓았고, 주변엔 지금까지 수많은 명승고적들이 우리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먼저 가볼 곳은 그 당시 만남의 광장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던 용미리 석불 입상이다. 혜음원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자리해 교통의 요지에 있었고, 그 길을 지나다니던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무운을 빌기도 하고, 간절했던 사람들은 소원을 빌기도 했을터..... 고려시대 만들어진 불 상답게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석불의 위용이 드러난다. 지금 현재 자리하고 있는 용암사를 거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그 모습을 친견(親見)할 수 있는데 거대한 모습에 앞서 조금 투박한 느낌을 주어서 조금 실망할 수 있지만(심지어 설명문에 대놓고 투박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히려 그런 점이 뭔가 서민적이고 정이 있어 보여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마치 부부처럼 사이좋게 두 개의 석불이 나란하게 서있는데 거대한 장승처럼 오가는 길목 위에 우뚝 서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같은 여행객들을 변함없이 무사안녕을 빌었을 것이다. 이 석불에도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는데, 고려 선종의 부인인 원신 궁주가 후사가 없어서 걱정을 하고 있는데 꿈에 두 스님이 나타나 전하기를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져서 곤란을 겪고 있으니 이곳 바위에 두 불상을 새겨주십시오. 그리하면 소원을 성취할 것입니다” 원신 궁주는 사람을 보내 꿈속에서 본 곳을 찾으니 거대한 바위가 나타났고, 이때 또다시 꿈에서 본 두 스님이 나타나 “왼쪽 바위는 미륵불로, 오른쪽 바위는 미륵보살로 조성하세요” 그래서 원신 궁주는 후사를 곧 보게 되었고 이야기는 흘려갔지만 불상은 남아서 오늘날까지 우뚝 서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라는 말처럼 어떤 도시를 가던 심지어 조금만 마을을 가더라도 이야기가 얽혀있고, 아름다운 장소, 멋진 유적지를 볼 수 있다. 하나하나씩 새롭게 배워가고 있다. 석불입상에 절을 드리고는 가던 길을 재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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