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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03. 2020

경기 유랑 파주 편 3-2 (파평 윤 씨)

파주로 가는 길

조금 멀지 않은 곳에 낮 익은 사람의 표지판이 보인다. 고려시대의 명장이자 특수부대인 별무반을 창설해서 여진족을 북쪽으로 쫓아내고 동북 9성을 설치한 업적으로 유명하다. 그냥 고려시대의 ‘무장’으로만 생각했는데, 입구에서부터 널찍하고 잘 정돈된 주차장과 사당, 그리고 거대한 묘역이 눈길을 끈다. 윤관의 뒷 배경에 무언가 있다는 직감이 뒷머리를 스쳤다. 그렇다 윤관은 “파평 윤 씨”인 것이다.

고려 시대 초 중기 유명한 무인, 장수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문관 출신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외교를 통해 북방영토를 얻은 서희를 비롯해,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도 문신 출신이고 윤관은 더군다나 개국공신인 윤신달의 후손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파평 윤 씨 출신이다. 파평 윤 씨는 고려시대에는 명문 9 가문 중의 하나로 번성했으며, 조선시대는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하기도 했고(5명) 수많은 과거 급제자와 고관대작들이 나왔다.

파주 이름 자체도 파평 윤 씨에서 유래했다. 조선 7대 왕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파평 윤 씨였는데 세조가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을 쫓아내면서 왕이 되었고, 시국이 안정됨에 따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희왕후의 고향 파주를 개창하는 데 있어 파평 윤 씨의 파(坡)와 고을 주(州)를 붙여 파주로 이름을 바꿨을 정도니 이 성씨를 거론하지 않고서는 파주를 설명하기 힘들 정도 다.

입구에는 만화로 윤관의 일생을 간략하게 설명해서 어린이도 이해하기 편하게 되어있어 좋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윤관의 업적을 조명해 본다면 무리한 작전으로 여진족의 반격을 받아 수많은 병사를 잃고 땅을 도로 빼앗겼으며(갈라수 전투), 척준경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그의 목숨도 아마 위험했을 정도니 이미지랑 실제가 꽤 간격이 큰 인물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왕릉 급으로 거대한 묘역을 살펴보며 파평 윤 씨의 위세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조선 영조 때 새로 조성한 묘역이라 낡은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푸릇푸릇한 잔디밭에 앉아 여행으로 지친 피로를 조금 풀어본다.

고개를 넘고 넘어 차로 계속 달리다 보면 길가에 있는 수많은 비석 돌덩이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비록 국토의 면적은 작아도 마을이나 계곡, 산등성이 어디를 가더라도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수많은 유물 유적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차는 어느새 깊은 산 계곡 사이를 오르고 있었고, 파주가 자랑하는 천년고찰 보광사에 도착했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서 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이 사찰이 주목받는 이유는 영조의 생모 동이, 즉 숙빈 최 씨를 모신 왕실의 원찰이기 때문이다. 한효주가 주연으로 나온 mbc 드라마 <동이>가 방영되어 최근에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그 당시 궁녀 중에서도 제일 말단직인 무수리로 있다가 숙종의 은총을 입어 영조를 낳은 인생역전의 인물로 유명하다. 영조는 효심이 지극하여 오랜 기간 동안 어머니 숙빈 최 씨를 왕비로 추승하려 노력했으며, 숙빈의 묘호를 육상궁, 숙빈 묘를 소령원으로 격상시켰다. 소령원에서 멀지 않은 보광사가 이때부터 왕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원찰로 삼아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중축하게 돼서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절이 참 정갈하다고 생각했다. 건물들의 배치가 오밀조밀하지 않고 넓은 터에 알맞게 자리했으며, 특히 뒤편의 울창한 숲이 꾸준하게 잘 관리되었구나 느끼게 해 주었다. 일단 영조의 흔적을 찾아보면 뒤편에 1칸 규모의 자그마한 어실각이란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숙빈 최 씨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곳이고 앞에 제법 우람한 향나무는 수령이 300년 되었는데 영조가 어실각을 조성할 때 함께 심은 나무라 전해진다.

정말 잘 가꾼 절이다. 특히 고색창연한 자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대웅보전은 영조가 현판에 직접 글씨를 새겼으며, 특히 외벽이 독특하다 보통 다른 사찰에서는 문을 낸 정면을 빼고는 석회를 바른 회벽이 대부분인데 나무로 만든 판벽 그대로 민화풍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뒤편의 거대한 석불상에 올라가 보광사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너무나 좋았다. 잠시 사색에 잠겨 차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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