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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03. 2020

경기 유랑 파주 편 3-3 (한명회와 파주 삼릉)

파주로 가는 길

이번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권신 한명회의 흔적과 영조의 큰아들이자 정조의 양아버지로 진종이 된 효장세자가 묻혀 있는 파주 삼릉으로 간다. 파주 삼릉은 왕이 묻혀 있지(죽어서 왕으로 추존됨) 않는 왕릉이지만 어느 왕릉 보다도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있고, 한명회라는 인물을 살펴보면서 잘 정돈된 숲 속 길을 걸으며 왕릉의 숨은 비화들을 알아가 본다.

3개의 릉은 8대 예종의 원비인(왕비가 되기 전에 죽음) 장순왕후의 능 공릉과 9대 성종의 비 공혜왕후의 능인 순릉, 추존 왕 진종과 효순왕후의 능 영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순릉을 제외하고는 죽어서 왕이나 왕비가 된 사람들이고, 두 왕비는 한명희의 딸이다. 여기서 한명회의 권력이나 위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한명희의 인생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가져다주는데 어린 시절엔 비록 칠삭둥이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났고, 공부에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서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다가 음서(집안의 특혜로 벼슬길에 나설 수 있는 제도)를 통해 말단 관직에 머물러야만 했다.

집안의 수치와 골칫덩이로 남아있던 한명회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허세를 부리며 다니다가 친구 권람의 소개로 수양대군을 알게 되어 그때부터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다. 그의 외모와 변변치 않은 벼슬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았지만 수양대군은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심지어 한나라를 세운 책사인 장량에 비유하며 늘 의견을 구하고 중히 여겼다. 결국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책사로 활약하게 되면서 계유정난으로 큰 역할을 했고, 세조(수양대군)의 총애 속에 큰 권력을 얻었다.

하지만 한명회는 단순히 많은 공로만으로 최고 권력을 얻은 건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다지기 위해 큰딸을 세종의 사위인 영천 부원군의 며느리로, 둘째를 신숙주의 며느리로 보냈지만 세조의 태자가 병약한 걸 예견하고 둘째 아들의 부인으로 시집을 보냈던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여기서부터 한명회의 비극이 시작된다. 한명회가 바라던 대로 세조의 둘째 아들이 세자가 되었지만 셋째 딸 왕세자비는 원 세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고 원 세자 조차 얼마 안 가 죽은 것이다. 예종이 죽자 미리 넷째 딸을 시집보낸 자을 산군을 다음 왕으로 밀어붙이고 성종으로 즉위해 임금의 장인이란 타이틀을 결국 얻었지만 넷째 딸 공혜왕후 마저도 19세의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 왕실과의 인척관계가 끊긴 한명회는 권력을 조금씩 상실해갔다.

성종이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한명회는 일선에서 물러나 압구정에서 여생을 보내다 세상을 떴고 연산군 때 폐비 윤 씨의 일에 휘말려 부관참시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 걸 보면서 권력이란 참 부질없구나 생각했다.
젊어서 요절한 삼릉의 주인들을 보며 자기의 뜻 보단 어르신들의 의중으로 결혼을 하고 애를 낳다가 죽고, 생전 얼굴도 한번 본적 없는 조카를 자기의 양아들로 삼고, 역사의 희생양이 된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파주를 돌아보며 역사적 인물을 살펴보느라 한 텀 쉬어가야겠단 생각이 든다. 출렁다리로 유명한 마장 호수로 이동해 호숫가 바람을 맞아본다. 소나무 숲을 거닐며 산책도 하고, 레드브릿지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조용히 물결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몸을 맡겨본다. 파주를 거쳐간 여러 인물들을 살펴보며 장소에 가서 느낄 수 있는 교훈과 인물의 색다른 면모를 새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된 것 같다. 아직도 파주에는 가 볼 곳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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