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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Oct 08. 2020

경기 유랑 연천 편 2-1(은대리 성)

임진강, 한탄강가의 고구려 성곽들

나는 비교적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국내의 웬만한 절터, 성터는 물론 왜성까지 나름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고구려 성곽이 연천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연천을 답사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고구려 성곽이 연천지역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이유를 살펴보니 평양성으로 천도한 장수왕 이후 본격적인 남진정책을 시작해 여기 연천을 비롯해 한강유역을 전부 고구려의 땅으로 편입시켰다. 475년 한성까지 함락한 고구려는 한때 지금의 충청지역까지 내려갔으나 백제의 반격으로 한강지역까지 후퇴하여 아차산을 중심으로 방어막을 구축했다. 이와 더불어 한탄 임진강 유역과 한강지역을 연결하는 분지 일대에 보루군을 건설함으로써 경기 북부 일대의 지배권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그런 결과로 연천지역에 고구려 성곽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인데, 연천의 3대 성곽인 은대리성, 당포성, 호로고루가 비교적 성곽의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있고, 모두 강변 절벽에 의지하여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성곽의 형태를 강안(江岸) 평지성이라고 한다. 현무암이 풍부한 임진강, 한탄강의 특성상 높이 10~15미터의 주상절리(수직 절벽)가 형성되어 성벽의 일부분만 구축하면 적의 침입을 막기 수월하다. 전국에서 보기 드문 성벽이기 때문에 더욱 사진도 잘 받고 남아의 호연지기가 절로 나올 듯하다.

먼저 전곡읍에서 비교적 가까운(사실상 전곡읍내다.) 은대리성을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연천군 보건의료원과 주차장을 공유하고 있어 본의 아니게 옆의 사잇길로 잘못 들어가 오프로드로 달리긴 했지만 보건의료원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펼쳐진 너른 초원의 풍경은 마음을 더욱 시원하게 만들었고,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평지에 볼록 나온 토성으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한탄강 절벽에 자리 잡은 너른 들판으로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바람이 몸 사이사이를 시원하게 적셔준다. 성은 삼각형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토성의 흔적만 남은 동벽과 달리 성의 남쪽과 북쪽은 한탄강에 접한 낭떠러지라 자연적으로 요새 역할을 했을 거라고 추정해본다.

성안에는 문이 3개, 건물이 1개, 치성이 2개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경작지도 있었다는 사실로 비추어 볼 때 고구려에서는 성을 조성하며 거주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단순히 방어요새의 역할을 넘어서 고구려에서 성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중시했다는 사실도 배우고 간다. 성터는 생각보다 넓진 않았지만 오래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들과 더불어 한탄강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풍경과 더해지니 정말 아름다웠다. 이정표에 전망대 표지판이 있어, 동벽을 지나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들어가 본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솔숲길을 10여분 산책하니, 드디어 절벽으로 막힌 테크가 나타나고 치탄천과 한탄강의 합류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 한가운데 삼 형제 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가 강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는데 여기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여 있다. 한 여인과 우애 좋은 삼 형제가 있었는데, 막내를 구하기 위해 모두 강에 뛰어들어 죽게 되었고,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울부짖은 지 석 달만에 삼 형제의 형상이 바위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슬픈 전설과는 별개로 많은 사람들이 강가로 캠핑을 와 오순도순 정겨워 보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즐거운 산책과 역사를 또 한 번 배우고 다음 목적지인 당포성으로 떠난다. 두고두고 찾고 싶은 은대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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